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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13. 2023

어후 내가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많아서 미안합니다.

첫 상담 땐 따님이 오셨다.


"음.. 저희 엄마가 배울 건데 괜찮을까요? 피아노를 쳐보신 적은 있어요."




어르신은 갑상선암 완치 판정을 받고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젊은 날들을 떠올리셨다. 예전 기억을 거슬러 가다 보니 피아노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시절엔 피아노라는 악기는 부잣집 고명딸만 배울 수 있는 악기였다며 당신은 그것이 부러워 사는 내내 찔끔찔끔 피아노를 배우러 기웃거렸다고 했다. 그렇게 찔끔찔끔 배우던 것이 체르니 30번까지 배운 기억을 갖고 계셨다.


손가락 마디마다 꺾인 각도를 보면 젊은 시절 꽤나 고생하셨나...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것에 내 시선을 돌리기보다 어르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드리는 것에 시선을 두고 싶었다.


암을 완치받고 살아내는 삶은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는가. 인생 2회 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테니까.




혹시나.. 임영웅 노래 좋아하는데 말 못 하실 까봐 먼저 선수 쳤다.

"어머니, 연주하고 싶은 노래 있으세요?? 임영웅 곡도 괜찮아요~~"


"선생님 나는 임영웅이 보다는 째즈가 하고 싶은데.. 어후.. 내가 나이가 많아서 주책맞지요 이 나이에 째즈 찾고..."


"헐!! 아니요!!! 너무 좋아요 어머니!!!! 무슨 곡 하고 싶으세요 제가 다 찾아드릴게요!!!"


"그..째즈에 베사메 무쵸.. 그거 있잖아요"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 Michel Petrucciani의 Besame Mucho를 틀어드렸다.

"어머니 이거 한 번 보고 수업할게요"


어머니는 영상을 틀자마자,

"아이고 저 사람 아픈 사람이에요?? 나도 많이 아팠는데.."


"네, 오래 아팠어요 저 사람. 근데 연주를 계속 끝까지 했더라구요..어머니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많이 도와드릴게요."


어르신은 곧 잘 연주하셨다. 기본기도 있으셨고 심지어 코드를 배우신 적도 있으셨기 때문에 베사메 무쵸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고, 매 수업마다 따님이 동행해야 하는데 따님은 직장이 있는 분이라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간 우리는 열심을 다했다. 굽어진 손가락으로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눌렀다.

우리의 Besame Mucho는 피아니스트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담백하고 울림이 넘치게 완성되었다.


마지막 수업날이 다가왔다.


"선생님 내가 나이가 많아서 가르치기 힘들었지요. 나이가 많아서 미안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셔요.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매주 뵐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고 계속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어르신."




어르신이 가시고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뒤로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베사메 무쵸 보다 그 어르신이 연주하는 베사메 무쵸가 가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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