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이 쏘아 올린 사랑의 확신
결국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1살 연상의 방송국 PD.
외로워서 용현이에게 잘못된 감정을 가졌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
뮤지컬 편곡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마지막 수정 날짜를 맞추고 있었다.
"이 날은 레슨 때문에 안될 거 같아"
"그럼 이때는요?"
"아 그때는 약속이 있어서.."
"무슨 약속이요?"
"아 뭐 내가 너한테 무슨 약속 있는지 까지 얘기해야 해?"
"아~ 나 딱 알겠다. 여자들끼리 뭐 언제 보자 해놓고 두고두고 안보는 그런 약속?ㅋㅋㅋ"
"적당히 해라.."
"아 무슨 약속이냐니까요"
"소개팅해 그날.."
"에? 소개팅? 소개팅은 무슨. 낯도 많이 가리면서 그런 걸 왜 하는데요? 어차피 별로였다고 할 거면서"
"내가 그럴지 너가 어떻게 알아!!!! 고만해 진짜!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여기 화장실 못 가실걸요?"
"못 가는 게 어딨어 그냥 가는 거지!"
홱 하고 돌아 나와서 반층 올라가 화장실 문을 호기롭게 열었다.
그러나 화장실을 가리는 나는 그 화장실을 갈 수 없었고 혼잣말로 "으.. 안 되겠다.." 하며 뒤돌아서 내려오는데
용현이가 서있었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왜 긴요. 무섭다고 부를 까봐 서 있었죠."
"헐" ('와 그냥 갔으면 정말 민망했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용현이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생각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크리스마스 때 뭐 해?"
"뭐 하긴요. 게임하죠. 왜요." (이미 시큰둥해져 있었다.)
"그때 나랑 놀래?"
"소개팅한다면서요. 그 사람이랑 어떻게 될 줄 알고 저랑 약속을 잡아요."
"음.. 크리스마스 때는 너랑 놀지 뭐!"
"저 게임할 건데요."
"아.. 그래라 그래.."
"아니 왜 한 번 더 안 물어봐요? 이 사람은 포기가 너무 빨라~"
"아 알았어. 그럼 나랑 놀자!!"
"콜!"
이걸 보고 밀당이라 그러나..? 나는 한참 멍했지만 이게 밀당이면 나는 밀당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찌어찌 소개팅을 나갔고 나는 급체를 했다. 편곡 수정을 이어서 봐야 해서 급체 한 채로 용현이 작업실로 향했다.
가자마자 혈색이 안 좋은 걸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하루종일 놀려댔다. 물론 나는 그 PD님과 이어지지 않았다. PD님은 자기가 사람을 살피는 게 습관이라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 보았는데, 미쳤구나 싶어서 마음을 크게 쓰지 않았다. (별로 쓰고 싶지도 않을 만큼 좋지 않은 소개팅이었다.) PD님과 갔던 카페에서 더티 초코 빵을 보자마자 속으로 '헐 저거 용현이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이게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소개팅 덕분에 사랑이라고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더 복잡해져 갔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에게 몹쓸 짓 (?)을 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 같은 것도 들었다. 가족들은 내가 용현이와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복잡한 생각을 가진채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