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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04. 2023

우리 집에 온다고??너가?

갑자기 부탁하게 된 편곡 때문에 매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봐야 했다.

이미 멜로디는 다 나왔고 이제 트랙(반주)이 만들어져야 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 만났다.


현장에서 음악이 나와야 싱크를 (손 모양) 맞추기 좋다고 해서 빠르게 작업에 들어갔는데 끝내 지를 못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케치를 마쳤다. 어쨌든 완전히 끝내지 못한 찝찝함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어차피 저 내일 쌤 집 근처로 가야 하는데. 제 일정 끝나면 쌤 집으로 갈게요. 거기서 마무리하시죠?"


"우리 집에 온다고?? 너가?? 왜?? 굳이??"


"아니, 딱 봐도 이거 지금 다 못 끝내서 전전긍긍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일 끝내자고요."


"아.. 알았어;; 너 일정이 몇 시에 끝나는데?"


"8시 반쯤 끝날걸요?"


"? 너무 늦는 거 아니니? 아침은 아닐 거 아니야"


"8시 반이 뭐가 늦어요."


"아... 그래 알았어."




저녁 9시 반이 다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와 무슨 오늘의 집에 나오게 생겼네요 집이ㅋㅋ"


"조명 때문에 그런가"


"저 배고픈데요"


"뭐냐 니 할 말만 하냐? 뭐 먹을래?"


"배 안 아픈 거요"


간단히 저녁을 먹고 밤 10시 반이 다되어서 시작한 작업은 새벽 1시에 끝이 났다.

그래도 작업을 끝낸 것에 감사했고 얼른 연출팀에 넘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안도했다.


"아 뭐 타고 가지"


"뭘 뭐 타고 가. 너 갈 생각 없었잖아. 여기 이불 펴줄 테니까 자고 가."


새벽에 주로 다니는 녀석이 '뭐 타고 가지'라는 말을 하다니. 하며 깔깔 웃었다. 집에 갈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바로 택시 잡았을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날 헤치지 않을 녀석이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이불을 펴준다고 했었다.


이불도 펴주고 칫솔도 새 걸로 내줬다.




밤새도록 누워서 깔깔거리면서 얘길 나눴다. 너무 웃겨서 웃다가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웃으면서 잠이 들었다. 수련회 간 중학생들 마냥 천진함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편했다고 얘기했다.

어떻게 남녀가 오밤중에 같이 있는데 아무 일이 없을 수 있냐고 친구는 노발대발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냐고 자기한테만 말해보라고 했다.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이 있는 게 이상한 거라며 나는 친구를 나무랐다.




근데 이때부터 작업을 같이 하는 게 영 불편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이가 된 것 같았고, 뭔가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지금 애한테 의지 하는 게 정상인가? 미친 거 아닌가? 나 외로워서 돌은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1년 6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외로울 리가 없잖아!! 하며 스스로를 채근했다.


그래, 외로울 거면 차라리 소개팅을 하자 싶어서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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