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를 합격하고 나니 2년 6개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났다.
평생 피아노를 똥땅 거리며 살아온 내게 글쓰기라는 어마 무시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고 논문을 쓰면서 인생을 배운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울며 웃으며 2년 6개월을 잘 배웠다.
논문을 최종으로 점검해주시는 교수님 께서 우릴 보시더니
"너네는 애들이 음악을 해서 그런지 다 착한데 너무 멍청해."라고 하셨다.
그땐 띠용! 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니 웃음이 났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우리는 어쩌면 세상과 아주 동떨어져 지낸 외계인 같았다. 사업계획서 한 번을 써본 적이 없고 세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엑셀을 어떻게 하는지, 종합소득세는 뭔지, 음악인들은 건강보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는 없었다.
시창청음을 잘한다고 해서, 실기가 만점이라고 해서, 석사를 졸업했다고 해서 인생을 잘 사는 게 아닌데 말이다.
석사를 하면서 한 가지 짙게 배운 것이 있다면 비즈니스 수업이었다. 음악을 가지고 '돈'이 되는 것을 찾아보았는데 알아보면 볼수록 많은 경로가 있었다.
그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추려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업계획서를 썼다.
(지금도 스타트업에서는 그 계획서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당연히 3번이나 Fail.
Cost Structure에서 자꾸 빠꾸를 먹는 것이다. 왜 이럴까 도대체!! 하면서 다른 기업 들 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왜 낙방했는지 1시간 만에 파악이 끝났다. 내가 쓴 걸 보니 형편없었다. 요즘 말로 교수님이 꼽을 주지 않으시고 그냥 fail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클로이재즈'는 그때 썼던 사업계획서 하나로 시작되었다.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사업계획서부터 사업자 등록증을 만드는 일, 부동산 계약을 하는 일 등 서류로 되는 모든 일들은 주어지면 해내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글씨를 못 읽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클로이재즈는 여성 수강생 비율이 높고 감성적인 요소가 짙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구도, 듣는 음악 등 항상 약간 앞선 듯 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티칭 방식도 특별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수업 동안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게 구성되어 있다.
프로그램을 알차게 기획하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당연히 배우는 재즈 화성학, 본격적인 재즈 피아노, 재즈 플레이 리스트, 음악 영화와 연관된 콘텐츠들과 더불어 이제는 재즈 클럽 모임까지 확대되었다.
배낭하나 둘러매고 서울에 온 부산 꼬맹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에 여전히 돌다리를 백번씩 두들겨서 건너고 있지만.
커리큘럼을 돈 주고 사겠다, 학원을 넘길 생각이 없냐 이런 제안을 받을 때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음을, 잘못된 선택은 없었음을 깨달아 간다.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삶이지만 이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