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고 여전히 배움에 목말랐다. 아메리카 드림은 접었지만 배움은 접을 수 없었다.
그러다 다시 레슨을 받게 되었다. 내가 동경했던 재즈피아니스트에게.
연락처를 알음알음 알아내고 굳이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레슨을 받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보셨고 테스트 겸 첫 레슨을 시작했다.
이전에 있었던 레슨에 대한 아픔을 조금 얘기하자마자 그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셨다.
순간 너무 친한데 내가 흉을 본 게 된 건 아닐까 하며 흠칫했지만 그 사람은 이미 이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해 학교에서는 강의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긴장이 풀리면서 안도하게 되었다.
선생님도 미국 유학을 다녀오셨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지금 시대는 꼭 유학을 가야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꿈꿨던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었는지.
알게 모르게 지난 레슨 시절을 떠올리며 미국에서 썼던 노트를 자랑했던 그 여자의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길을 잃었던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움이 아니라 '나도 미국 생활 좀 했어~' 이런 허세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동경하던 재즈 피아니스트 선생님은, 여전히 서른 중반인 지금도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니 그때의 레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배움으로 가득 찼었고 행복했다.
음악을 접근하는 방식도 달랐고 무엇보다 삶의 태도를 되짚어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레슨.. 자주 와야 하죠..?"라는 나의 물음에
"왜??? 2주 있다 와도 돼~ 너가 준비될 때 와도 되고~ 자주 오는 게 뭐가 중요해!! 혼자 연습하는 게 더 중요해!!"
라고 허를 찌르는 대답을 해주시곤 했다.
그리고 왜 레슨을 자주 받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지도 덧붙여 설명해주시곤 했다.
선생님과는 국내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입시 준비는 마냥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선생님과는 마냥 행복했다.
입시 준비를 마치 앨범 준비 하듯 했다. 어떻게 하면 연주 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지 고민했고,
관객에게(심사위원에게) 어떻게 들려야 좋은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러기에 내게 없는 기본기는 무엇이었는지 까지도 정말 끊임없이 재즈에 대해 연구하고 연습했다.
결과는 뻔했다.
당연히 척척 석사 합격이었다.
한줄기의 빛 같았던 동경하는 어른, 나의 선생님을 통해 치유받았고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