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다섯 치과의사 닥터 박
치과대학원 졸업 후, NY Jamaica Hospital Medical Center서 레지던트를 했다. 45살 레지던트다. 수련의 마지막 날 내가 당직이었다. 특별할 건 없지만 진료 마감 후 마지막으로 퇴근한다. 구강외과 소속으로 응급실당직도 서는데 운 없게 이것도 나였다. 마지막 환자 진료 후, 늦은 6시 클리닉을 나왔다. 짠하지만 긴장을 놓긴 이르다. 치과 진료만 끝났을 뿐, 자정까지 응급실 당직이 남았다. 땅거미가 진다.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짐에 따라 어둠은 빠르고 가볍게 반짝이는 도시의 빛들을 생산하고, 자신은 검은 눈처럼 쌓인다. 도시가 빛과 어둠, 과거와 지금의 나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뉜다. 뉴욕서 유일하게 트라우마 센터가 있는 병원이라 JFK 공항 주위 응급은 우리 병원으로 온다. 치과의사가 웬, 응급이냐고 의아해하실수 있다. 찢어진 머리를 삼십 바늘 넘게 꿰매고, 나를 성형이나 정형외과 소속으로 착각한 환자와 보호자들한테 치과의사라는 걸 밝히면 놀란다. 당직을 두 시간 남겨 놓은 밤 10시, 설마 하고 삐삐(호출기)를 보는 순간 삐삐 삐삐삐 ~ 수련의들은 호출기를 악마라 부른다. 언제 울리더라도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잘때도 스마트폰을 옆에 두었다. 오묘하고 이상적인 조합이다. 90년대 삐삐와 2000년대 스마트폰, 과거와 현재가 일치되지 않는 모습이 지금의 나를 닮았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선 둘 다 하등 쓸모가 없다. 삐삐는 독선적이고, 스마트폰은 오래된 연인들이 식당에서 타인의 시선 속 침묵을 관리하는 데 사용될 뿐이다. 삐삐가 울리면 암흑 속에서 손에 든 도구가 내는 소리와 내 청각이 그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의 차이가 줄어들 때, 말. 하. 자. 면. 잠에서 막 깼을 때, 담배 연기가 벽난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느리지만 민첩하게 일어난다. 마음은 조급하면서도 굳이 굼뜨게 움직이는 건 “난 너희들의 노예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다. 몸은 여전히 강한 썰물에 발을 빠트리고 있는 사람처럼 조급해진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여정의 마지막인 레지던트를 끝내고 ER(응급실) 당직을 두 시간 남겨 놓고 울리는 호출, ‘으윽’, 육중한 문이 움직이기 직전 비명을 지르듯, 작지만 두터운 신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호출 번호 4436. 트라우마 응급이다. 이 시간대의 호출은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는 직감이 드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어두운 그림자가 진다. 삐삐는 늘 기묘한 고요함 속에서 울린다. 안 울리면 안 울리는 대로 선잠을 깨우는 능력이 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어, 왜 안 울리지?” “울릴 때가 됐는데?”하고 삐삐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잠을 청한다. 당직을 서는 한, 완벽하게 몸이 쉬지는 못하고 뇌는 오히려 그 긴장의 끈을 무의식의 세계까지 이어간다. 때론 꿈속에서 전화가 울려 잠에서 깨면 삐삐가 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의식은 각성을 요구하는데, 몸의 시스템은 버퍼링을 하면서 각성에 저항한다. 삐삐가 안 울리는 동안 어떻게든 쉴 궁리를 해야 했다. 그래 봤자, 반쯤 자는 거지만.
응급실에도 당직의가 있지만, 환자 종류에 따라 의사들을 호출한다. 구강외과는 뇌손상을 제외하고 목에서부터 머리까지 담당한다. 호출을 받고 다소간 늦게 도착해도 괜찮지만 전화 응답은 반드시 5분 안에 해야 한다. 미국에서 응급실은 환자, 의사, 그리고 경찰, 세 부류의 사람들이 각자의 색깔들로 분주하게 메우는 공간이다.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내원한 환자도 다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환자가 침대에 은색 팔찌를 차고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평의 랩 배틀을 한다. 억울함을 배설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누가 듣던 듣지 않던가는 중요하지 않다. 응급실은 이런 일련의 소음들이 또 다른 이유로 나오는 소리들과 불협화음을 이룬다. 마치 앵무새나 강아지, 고양이들이 한데 모여 흐느끼고 재잘거리는 듯한, 기묘한 소리의 아우성이 문을 여는 순간 달팽이관을 자극한다. Area III. 응급실은 전화를 받고 차트와 노트 정리를 부산스럽게 하는 work station이 한가운데 있고, 주위를 의료용 침대가 둥그렇게 원형으로 둘러싼 구조다. 응급의 경중에 따라 trauma minor, Area I, II, III, IV로 나뉘는데, 마치 죄수들의 감방이 둥그렇게 배열되고, 한가운데 큰 빛이 뿜어져 나오는 서치라이트를 배치해서, 간수들은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간수들을 보지 못하는 일방적 원형 감옥 같은 구조다. 다만 병원은 서치라이트 대신 “봐라! 우리가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만 좀 칭얼대시지 그래?”라는 외침을 보여주는 의도가 다분한 듯한 컴퓨터들로 채워진다
환자는 김치냉장고에 넣는 김치통만 한 사이즈의 플라스틱 의료용 바구니를 들고 응급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피로 물든 거즈가 바구니 속에 흥건하고 그중 하나를 입에 물고 있다. 거즈 밖으로 스며 나온 피는 의료용 컨테이너 위로 불규칙하게 떨어졌다. 전화상으론 입이 심하게 찢어져 봉합이 필요하다는 말만 들었다. 친구한테 반지를 낀 손으로 맞았다고 한다. 의료용 펜라이트를 비추니, 구석진 어금니 위쪽으로 혈관이 터져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검붉은 피의 점성은 마치 녹은 초콜릿을 닮았다. 당직을 서면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멍했는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입원시키고 수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일은 더 복잡해진다. 출혈의 위치가 안쪽이고, 트라우마 때문에 입을 못 벌리는 상황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특히 대기 중이던 다음 연차 병아리 수련의들 네 명이 조금이라도 배우고자 어깨너머로 지켜보고 있다. 보고만 있지 말고 뭐든 하라는 말에 갑자기 부산한 움직임들을 만들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가 원하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하지는 않느다.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달에서 걷는다고 생각하자. 사소한 과정 하나라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안 그럼, 아득하고 머나먼 우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야 충분히 배웠지만 임상을 마주할 때, 희한하게 머릿속을 맴도는 건, ER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룬 미드였다. 혈관을 응축시켜 피를 덜 돌게 하는 Epinephrine 두 개를 주사하고 Periostat (수술용 집게)으로 혈관을 잡고 주위를 실로 봉합했다. 거즈를 엇댄 후 압박을 하니 십여 분 후에 피가 멈췄다. 봉합수술의 삼 요소 보조자, 라이트, 석션 이 세 가지가 부족한 와중에 얻어진 결과라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찢어진 부위를 서른 바늘 이상 꿰매고 나니, 정확하게 밤 11시 30분. 노트와 차트 정리를 하고 당직실에 삐삐와 아이디를 반납했다. 당직실을 나오는 지하 통로는 공포 영화를 연상 시키 듯, 괴이하면서도 음산하고 초췌한 페인트 길이다 늘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인기척은 없다. 낯섦. 더 이상 이 길에 돌아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 낯설어진다. 벽돌에 마감재 없이 그냥 파란색 페인트로만 칠을 해 놓아서, 병원으로 개조한 교도소인지 교도소로 개조한 병원인지 모를 느낌에 어둡고 불쾌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마음은 살짝 들뜬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십 년,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발걸음. 십 년 전 운영하던 나이트클럽을 헐값에 팔고 새 주인에게 열쇠를 주며 이것저것 설명했을 때도 새벽이었다. 새 주인에게 열쇠 양도를 지연한 ‘이것저것’은 미련이었다. 지금의 기분을 조금 과장하면, 일주일을 지상에서 살고자 17년을 땅 속에서 지내야 했던 매미의 심정이다. 시지프스의 마지막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 희한하게 미국 국가를 입에서 흥얼 거린다. 3학년때, 첫 환자를 볼 때도 그랬다. 긴장하면 미국 국가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어딘지 모르게 위안을 주는 멜로디가 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 가장 적은 수의 청중을 위한 음악, 세레나데. 난 미국 국가를 흥얼대며 스스로를 세레나데 했다. 내 운명의 키에 맞추어 나의 노래를 연주한다. 그렇게 차안에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도시에는 내 그림자조차 흡수할 정도로 충분한 어둠이 들어차 있다. 이제 난 치과 의사, 닥터 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