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건강검진 이후 나는 회사출근을 못 했다.
나의 안위가 전부였다.
그동안 하루 8시간씩 꼬박꼬박 출퇴근을 반복하며
지냈으나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나 불편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날 수 없었고 출근을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다.
무단으로 결근이란 것을 하게 될 만큼 복잡했으나, 같은 직장에 소속되어 있던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나의 상황을 전달하며 5일의 시간을 버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는데도 의사의 말만 맹신했고 초음파 상의 모양에만 집중했다.
총 3명의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중 나이가 제일 많고 경험이 많아 보이는 한 명의 의사는 의중이긴 하지만 C코드를 내려주었다.
반쯤 정신이 나갔지만 나머지 반의 정신으로 상급병원을 예약했고 오진이었던 그 C코드로
빠른 날짜 예약에 성공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오진의 병원을 폭파시키고 싶었으나 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후에는 세상 모든 것이 용서되는 자애로움이 생겨났다.
누군가가 내 뺨을 때려도 웃음이 나고 다른 뺨 한쪽을 내어 줄 정도로 멍청하게 기분이 좋았다.
"난소암은 아니고 기형종이에요."
기형종은 첫째 아들을 낳기 전에도 한번 수술했던 이력이 있는 혹이다.
같은 혹인데도 모양과 크기가 많이 달랐다.
게다가 몇 개월 사이에 12cm나 커 버렸다.
그때서야 출근하지 못했던 회사가 보였고, 너무 황당했을 것 같은 직장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그려졌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를 그려봤다.
다른 직원이 건강검진 이후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결근을 한다. 확실한 결과를 나오기도 전에......
한 명의 직원이 결근을 하면 다른 직원들이 나눠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좋아할 수는 없지만 책임감이 없다고 비난하거나 다그치지 말자!
나는 나의 소중한 경험으로 터득했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리고 이제는 건강을 자신할 만큼 젊지 않은 나이에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흘러갔던 사건의 전말과 이후의 상황들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본다.
한 번의 복강경 수술이 필요했고,
그 해 6월까지만 가능했던 휴직 카드를 덥석 내밀었고,
결과가 나오기 전 5일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출근을 못 했고 잠만 잤다.
잠이라도 잤으니 그 시간이 지났지 멀뚱멀뚱 그랬으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속상한 이야기지만 기한이 한 달도 안 남은 육아휴직을 쓰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다소 극단적인 소문도 들려왔다.
머리들이 참 좋다.
남일에 관심들도 참 많다.
나 자신에게는 떳떳하기에 남의 일에 대한 함부로 떠드는 그들의 모습이 가여웠다.
억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인생을 잘못 산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러나
이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남일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볍잖아!
이런 일이 있어야 진정한 내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어!
맘대로 떠들어 봐라 내가 꿈쩍이나 하나!
나는 더 독해졌다.
내가 좀 더 지혜로웠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고. 똑같은 상황이 처음으로 온다 하면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그만큼 정말 놀랬고 좌절이란 것도 경험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그때는
의사의 진단보다는 좀 더 정확한 영상검사와 수술의 결과로 평가하는 단단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1년을 잘 마무리하고
일주일 뒤면 회사로 복귀한다.
휴직을 통해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 보고
또 그것을 통해 아이들을 배제한 나의 삶도 그려봤고 쉼으로 인해 뛰어갈 수 있는 에너지도 보충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재충전한 에너지를 쉽게 소진하지 않고 느리지만 천천히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걸어갈 것이다.
하여야 하므로 할 수 있다.
제2의 직장생활 시작점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