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뜨거웠던 날들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가을의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 무작정 운전대를 잡고 악셀 폐달을 밟았다. 어디든 좋으니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 달라고말했다.
윤슬로 반짝이는 서해바다를 마주보는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혼자 먹기엔 꽤 많은 양의 빵과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이어폰의 볼륨을 크게 높인 다음 첫끼니를 오후 두시쯤에야 해결하기 시작했다. 매우 배가 고파서 빵을 좀 많이 담았는데 바질토마토빵을 맛있게 먹고 두번째로 소금빵을 먹고 나서 급격히 배가 불러와 그만 먹기로 했다.
연휴에 가족단위로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이고 연인들이 사진찍으며 추억을 쌓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예뻐보였다.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 안된 순수한 영혼이 잠들어있는 유모차 속 아기의 모습은 굉장히 평온해 보였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종종걸음을 걷는 작은 아이에게 비누방울을 불어주는 아빠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 차 있었으며 노부부가 차분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 또한 더없이 좋아 보였다.저렇게 예쁘게 나이들었으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가 유모차에 잠들어 있던 순수한 영혼이 눈을 떴는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똘망똘망한 눈빛이 예쁜 아기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꺄르르 웃는 모습이 세상 예쁠 수가 없다. 넌 천사가 분명해.남의 아이를 낯선 사람이 안아본다고 하면 싫어할 법도 한데 아이엄마가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안아보는게 얼마만인지.. 다행스럽게도 내가 맘에 들었는지 아이는 연신 웃으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너 정말 예쁘구나!
통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눈이 부신 오후까지 계속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루프탑에 올라갔다가 해가 너무 뜨거워서 다시 내려오길 여러번이다. 이렇게 더운 가을이라니... 바다위에 반사되어진 빛까지 더해져 굉장히 눈이 부신 오후이지만 일몰시간이 한시간 남짓 남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연휴가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치열하게 살아갈 내일을 위해서라도 오늘만큼은 주차요금 정도 기꺼이 내주기로 했다.
분명히 두 아이의 육아가 고달팠고 혼자 있고 싶었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고 폐쇄된 공간에 갇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 왔었다. 다들 힘들게 해내는 일에 대해 유난떠는게 싫어 묵묵히 끌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되었던 오늘 아침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가져간건 아닐까 나는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주었을까 남편에게는 현명한 아내의 모습이었을까... 가라앉은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잡은 운전대였는데 출발부터 눈물바람이라니. 기분전환을 위해 정성껏 그렸던 아이라인이 왠지 번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아이 엄마가 아이 셋을 데리고 카페로 들어와 정신없이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평소 같았으면 나 역시 저런 모습이였을텐데 오늘만큼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생각이 많이 났다.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기에 다시오고 싶어졌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갈때쯤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오전의 감당이 안되었던 감정들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갔고 많은 사람들 틈에 함께 있는 것도 기분이 좋아졌다.
노을지는 하늘의 풍경과 함께 역광으로 찍힌 사람들의 모습이 예뻐보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오늘의 하루가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부렸으니 다시 한번 심기일전 해보는 걸로 결론을 내리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많이 털어내고 돌아가는 길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했다. 힘들때 숨지 말고 털어내려고 애써줘서 고마워. 난 잘하고 있고 잘 해낼거고 할 수 있어! 이겨내고 극복해 주어서 정말 멋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