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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Sep 15. 2024

아홉개의 별똥별을 기억해

체게바라씨 감사해요!

해가 지고 어두워진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날이 있었다. 수천개의 별똥별이 떨어지 날 수많은 별똥별중에 한두개라도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동채시력으로 잡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고개가 아파와서 소파에 누워 감상하기도 했으며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다른 방향의 하늘을 막 관찰하기 시작했을때 꽤 멋진 타이밍으로 별똥별을 보기도 했다. 밤을 세워 총 9개의 별똥별을 보았고 9개의 소원을 빌었다.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눈 깜짝 할 새 운이 좋았던 아홉번의 순간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 밝 날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러길 바랐다.


별똥별이 떨어지면서 빛을 내는 모양은 다 달랐다. 수직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대각선으로 빛나기도 했으며 때로는 작은 곡선을 그리기도 했다. 짧게 빛이 나고 사라졌던 별똥별도 있었다. 벽 내내 관찰하다가 한번씩 보여지는 빛을 발견할 때마다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황홀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아홉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찰나의 섬광을 마주할 때마다 심하게 요동치는 아드레날린의 무리들 때문이 아니였을까.


빌었던 소원중에 꿈에 관한 소원이 있었다. 꽤 오랜 세월 간직하며 살아왔고 '꿈은 이루어 진다'라는 문장을 유독 좋아해서 언젠가는 내가 그린 인생을 살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의 명언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

-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 -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거나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마다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던 글이다. 


한때 무역회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단가 네고에 열을 올리며 여러 업체와 매일같이 밀당을 하고 재고가 쌓이지 않도록 일정을 잘 조율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중 하나였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단가를 이 정도에 맞춰 드릴테니 일정 조율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전에도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아 재고가 쌓였어요. 더 이상은 안됩니다"


한 인상 덕분에 늘 만만하게 보여졌던 나는 '난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를 강조하며 일할땐 말투를 조금 더 차갑고 설득력있게 바꿔야 했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말투로 바꾸려 애를 썼던 20대의 나는 착하고 여렸지만 겉으론 차갑고 도도했다. 그래야 업무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은 나름 재미도 있었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으며 업체 사람들은 나를 꽤나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좋게 기억해 주는 것 만으로도 지나온 나의 회사생활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이 몸에 익으면서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대표님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꼭 하고 싶어요. 해야만 해요. 인수인계 확실히 하겠습니다. 후임자를 뽑아주세요"


"1년만 더 다닐 생각은 없어? 우리 회사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수익 대박날거 같은데. 그럼 상여도 많이 챙겨주고 연봉도 올려줄께. 그 돈 받고 나가지 그래"


이런 제안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비현실주의자였다. 아니 이상주의자라고 해야하나.


무모하고 용감하고 열정만 가득했던 나는 조금도 대표님의 제안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통보를 했던 터라 고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해야 하고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한 공부를 해야 했다.


겁조차 나지 않았던 용감한 인간은 체게바라의 명언을 다시 한번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홉개의 별똥별중에 제일 반짝이고 길게 섬광을 냈을 때 빌었던 소원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꼭 성공하겠어!


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이상주의자는 조금 비현실적이긴 했어도 용기가 있었고 추진력이 있었다. 그리고 많이 무모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꽃향기가 나는 듯 했지만 조금 전에 뿌린 향수 냄새였다. 기분전환용으로 자주 뿌리는 향수가 오늘따라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무선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머리속엔 쓸데 없는 생각까지 포함해서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있어 늘 정신이 없고 정리가 안되지만 대신 향수냄새와 들려오는 음악에 미래를 위해 고심하는 나의 모습을 담기로 했다.


[오늘도 생각이 많은 나.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니 기대가 됨

그리고 설레고 벅참

난 꼭 성공할 자신 있다구!

미래에 이렇게 살고 싶음

꽃향기가 은은하고 기분이 좋음

oshio kotaro - twilight ]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지면서 몇일 전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력서를 냈던 곳에서 인터뷰 제의가 왔다. 


"안녕하세요 디자인팀 이사 ○○○입니다. 이 홈페이지를 리뉴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브리핑해 보세요"


".... 일단...메인 이미지에 무엇을 취급하는 회사인지 정보를 나타내는 아이덴티가 부족해 보입니다. 단락을 구분하는 그라데이션은 시선을 분산시키고 깔끔해 보이지 않습니다. 레이아웃 정렬은 정리가 필요해 보이고 폰트를 일정하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 회사는 AI를 취급하는 회사입니다. 그럼 메인 화면에 어떤 이미지를 넣으면 좋겠습니까?"


"..... AI하면 기계나 로봇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나 컴퓨터 언어가 배경에 깔려도 좋을 것 같고,  그래픽적인 이미지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획서도 없는 상태에서 브리핑이라니..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최대한 자신있게 도도하게 아는 척을 하기로 했다. 있는 지식은 모조리 끄집어 내어 잘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어 내고 표정 변화없이 브리핑했다. 긴장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 회사의 자료입니다. 읽어 보시고 리뉴얼이 가능하시겠습니까? 신입이 만든 메인 시안이 통과가 되지 않았어요. 경력있으시니 잘 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한참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해보고 싶어졌다.


"일정이 촉박하여 주말에 작업해서 월요일 오전까지 보내야 하는데 주말작업이 가능하실까요?"


"잘 해보겠습니다."


이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을 했다. 잘 하고 싶고 해보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몇일 전 꾸었던 꿈이 암시했던 해몽의 내용과 딱 들어맞아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꿈을 선명하게 꾸면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도 꿈을 꾸면 메모를 하곤 했다.


"메인 시안 두개 보내드렸습니다"


오랜만에 회사원이 되고 맡은 첫 프로젝트의 첫 작업물이였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자신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통과가 되지 못하고 다시 수정사항이 전달되었다. 디자인팀 회의가 시작되고 여러 의견을 반영하여 꼼꼼하게 메모를 했다. 꼭 해내겠어!!


"헤더부분 수정하고 폰트 수정하고 전체적으로 리디자인하고 스타일 가이드 새로 전달드렸습니다"


"고생했어요. 컨펌오면 전달할께요"


일주일간의 길고 길었던 시간들이 흐르고 드디어 통과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클라이언트 디자인 담당자로부터 뜻밖의 메일을 받았다.


'까다로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정사항도 많고 생소한 분야라 어려움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점점 좋아지는 시안을 보며 조금만 더 서로 맞춰가면 원하는 시안이 나올 것 같아 기대를 했던 게 사실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휴일을 반납하고 칼퇴근은 꿈도 못꾸었지만 통과가 되었다는 기쁨과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간의 스트레스는 이미 없어져 버렸다. 시작하길 잘했다. 아홉개의 별똥별중에 제일 빛났던 별이 내 소원을 들어준 것이 분명했다. 리고 체게바라씨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의 명언은 나의 인생에 날개를 달아 주었네요. 저는 계속 꿈을 꾸기로 했답니다^^"


퇴근을 하고 야간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자주 가는 한강으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의 도로에는 많은 차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고 제법 선선해진 가을 저녁의 바람은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멀리 데려가 주었다.


 "고마워 바람아"


바람결에 물줄기가 치는 한강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렇게 멋진 날의 풍경도 음악에 담고 싶어 졌다.


[ 프로젝트의 메인 시안이 5일만에 통과가 되어 기쁜 날.

클라이언트 디자인 담당자의 편지를 읽고 눈물남.

가을저녁의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음

반포대교에서 보는 건물들의 조명이

퇴근 후 야간 드라이브

뿌듯함

불금

거봐 할 수 있을거라고 했잖아!

한강의 조명이 예쁜 분수쇼

스타벅스 프로모션 조명도 이쁨

아홉개의 별똥별중에서 가장 빛났던 별

나의 멘토. 체게바라씨.

Cigarettes after - Apocalypse]


앞으로 빛날 인생의 순간들을 아홉개의 별똥별이 기억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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