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걷힌 하늘은 선명한 하늘색을 띄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이 또 있을까..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의 문턱쯤에 왔을 때였다. 아이들과 자주 가던 집근처 카페에 들러 아이가 늘 먹던 생크림이 올려진 와플과 레몬에이드를 주문하고 사장님의 분위기가 묻어있는 카페를 둘러보며 벽에 걸려진 그림에 대해 물었다.
"혹시 이 그림들은 직접 그리신 건가요?"
"네 제가 그린거에요."
"그림 실력이 대단하세요. 저도 그림 그리는걸 좋아하는데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그림은 얼마나 그리셨어요?"
"10년 넘은 것 같아요. 지금도 쉬는 날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림 잘 그리실거같은데 배워보세요"
"언젠가는요~ 저의 버킷리스트중에 하나라서요"
사장님은 늘 예쁘게 화장을 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계셨다. 그리고 더웠던 지난 여름날엔 자주 들렀던 곳이였는데 사장님과의 스몰토크가 오고가며 내적 친밀감이 쌓여갔다. 가끔은 힘든 일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졌다.
진솔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날 사장님과의 대화중 기분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커피를 내리며 계속 나에게 이야기를 건냈던 사장님은 본인은 사람을 좋아해서 서비스업이 본인에게 맞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중에 나도 있다고 말씀해 주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지만 나 또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였기에 카페사장님의 센스와 깔끔한 모습,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친한 언니처럼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뜨거운 여름날 아이가 레몬에이드와 와플을 찾는다거나 육아에 지쳐 어른과의 대화가 필요해 질때면 찾게 되는 아지트같은 곳이 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벽에 걸린 사장님의 그림을 감상하는 일만으로도 종종 마음이 벅차올랐던 곳이었다.
어느날 아이와 함께 카페를 찾았던 날도 사장님이 보고 싶어서 아이에게 와플과 레몬에이드가 먹고 싶지 않냐며 물었다. 아이는 그날따라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먼저 카페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 오늘도 예쁜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주문을 하고 있을때 아이가 장난을 치며 카페 문밖을 나가버렸다. 바로 뒤따라 나갔을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찰나였다.
왼쪽 상가주위를 돌며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머리속은 하얘지고 눈물이 하염없어 흘러내렸다. 온갖 수많은 생각들에 둘러쌓여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뛰어 다니느라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혹시 카페에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을까하는 기대감으로 다시 카페로 갔다. 그런데 카페에는 두고 왔던 둘째 아이와 사장님 모두 보이지 않았다.
다시 카페 문밖을 나서서 반대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우는 아이와 막내딸. 그리고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매장까지 비워놓고 아이를 찾으러 나섰던 사장님은 우는 아이를 찾아서 데리고 와 주셨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쓰러질것만 같았다. 아이를 끌어 안으며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어떻게 아이를 찾았는지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분수대 앞에서 아이가 길을 잃고 울고 있는 걸, 지나가는 아이엄마가 발견해서 데리고 계셨더라구요. 아이 울음소리가 나서 가보니까 이 아이였어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나도 전에 우리 아이 잃어버렸을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 잘 알아요"
사장님의 말 하나하나가 다 위로가 되었다. 더 이상 울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우려하던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그날 이후로 장난끼 많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신경이 곤두섰다. 종종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시선 반경안에 아이가 들어와 있어야 안심이 되곤 했다.
육아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홈베이킹을 즐겼던 나는 사장님에게 고마움의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쿠키를 굽기 시작했다. 선물하는 일을 좋아해서 사두었던 개별포장지에 쿠키를 하나씩 담고 종이상자에 그것들을 가지런히 담아 리본까지 묶어 주었다. 이만하면 사장님이 좋아하시겠지?
아지트로 향하는 발걸음에 설레임과 즐거움이 가득 실려있다. 카페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사장님의 모습은 오늘도 예쁘다. 속눈썹이 더 길어진듯 했고 헤어스타일이 조금 정돈된 걸로 보아 컷트를 한 모양이다. 평소보다 뽀송뽀송한 메이크업의 상태를 보니 출근한지 얼마 안된 것 같았다.
평소처럼 커피를 주문하고 1층에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다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마자 준비한 쿠키를 건내주었다.
"사장님 덕분에 저희 아이를 찾게 되어 너무 감사해서 뭘로 보답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쿠키를 조금 구웠어요. 재료는 전부 유기농으로만 썼고 저의 정성이 많이 들어간 쿠키에요. 입에 맞았으면 좋겠어요"
"아이 찾아준게 뭐 대수라고요. 나도 옛날생각나서 같이 찾아야겠다 싶더라구요. 그 맘이 어떨지 너무 잘 아니까요"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쿠키도 구워요? 능력이 많으시네. 못하는게 뭐야.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열정적인 사람이야"
사장님은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당신의 고마움에 이 쿠키가 보답이 될지 모르겠어요.
몇일이 흘렀다. 후유증때문에 종종 놀라고 신경이 예민해질 때가 많았다. 꿈을 꾸다가 울기도 하고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다. 마음이 힘들어질땐 둘 중 하나인데 사람을 만나거나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고 동굴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사장님 생각이 나서 집을 나섰다.
바람부는 오후의 공기는 따뜻했다. 카페에서 사장님을 마주하고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 건냈다.
"베이킹 배웠어요? 전에 준 쿠키 진짜 맛있게 잘 먹었어요. 팔아도 될거같아요. 만들어서 우리 매장에 납품할 생각 없어요?"
"와우! 최고의 찬사 아닌가요..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종종 구워주는 건 재밌는데 일이 되어버리면 힘들 거 같아요. 홈베이킹 하는 사람들 너무 많잖아요. 다들 잘하더라구요. 그리고 전 더 좋아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쿠키는 종종 제가 구워드릴께요 ^^"
"재능이 아까워요. 내가 돈주고 사고 싶다니까"
"감사합니다. 부끄러워서 덥네요"
불안증이 몰려왔던 마음이 어느새 편안해졌다. 우리의 대화는 유쾌하고 즐거웠으며 행복하고 따뜻했다. 쨍하게 내리쬐는 가을하늘의 햇살처럼.
몇달 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카페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사장님을 만나면 반가웠지만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리며 우리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사를 가고 나서도 종종 들르긴 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발길이 뜸해졌다.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살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이곳은 3년전과 많이 변해 있었다. 쿠키를 굽고 싶게 만들었던 사장님의 카페자리는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다. 이제 사장님을 만날 수 없다니, 연락처도 안받았는데 이렇게 떠나버리다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어느날 적응이 되지 않던 이곳 여기저기를 거닐며 익숙해져보고 싶었다.
나의 아지트, 예쁘고 사람 좋은 사장님, 사장님을 닮았던 그림들.. 더는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장소와 사람이 되어버린.. 그 자리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예전 우리들의 미소가 떠나지 않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엇인가가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눈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