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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Sep 01. 2024

눈 내리는 날

나의 정신적 지주

솜털처럼 흩날리는 굵은 눈을 바라보고 있다. 날이 추워서 아무래도 이상태로만 눈이 계속 온다면 분명히 쌓일 것이다.  현실적인  보 이상주의성향이 강N이지만 오늘은 타이어 점검을 해놓아야 할 것 같다. 옷깃을 한껏 여미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거리의 사람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에 두 손을 갖다 대었다. 피향이 닿은 콧가를 잔에 가까이 가져가니 뜨거운 온기가 전해진다.


카페 안을 가득  음악은 지난 날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잊고 있었다. 꽤 자주 왔던 익숙한 장소, 포근한 분위기, 친절한 말투.. 일하는 스타일은 안맞지만 단지 사람이 좋다는 이유로 날 챙겨주었던 주임은 출근전 종종 가벼운 아침식사를 제안하곤 했다. 잔잔한 음악으로 채워진 카페의 모습은 아직 나의 과거 따뜻했던 순간을 담고 있다. 따뜻한 커피와 목막힐 듯 퍽퍽한 플레인스콘으로 오전의 에너지를 채워주었던 지난 순간들에 입가의 미소가 번진다.


그날도 눈이 소복히 쌓이고 머플러를 동여매야 할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였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히스테리를 쏟아고 나름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지만 누적되는 시간들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마 주임이 일주일만 더 늦게 발령받아 왔어도 난 벌써 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키가 165는 족히 넘어 보였고 또렷한 눈빛과 위풍당당해 보이는 모습에 압도되어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낭랑한 목소리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단발 정도 길이의 머리카락이 여성스러움과 커리어우먼의 멋을 살려주었다. 그녀가 내 곁으로 와준 것은 인생의 행운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히스테리가 심한 동료에게 시달렸던 나는 새 주임의 등장으로 늘 그녀의 지지와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히스테리동료보다 나이가 적었고 나보단 한 살 많았다. 중요한건 그녀는 히스테리동료보다 직급이 높다는 것이였다. 그녀는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주여! 이제서야 저를 구원해 주시는 겁니까? 좀 오래 기다리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번이었다.


우리는 일하는 스타일이 달랐다. 경력직의 상사는 이미 숙련되어 빠릿하고 익숙했지만 어리버리하고 많은 일들을 쳐내기엔 아직 역부족이라 여긴 탓에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나는 종종 주임과 부딪혔다. 그녀는 그때마다 히스테리로 사람을 나무라는 대신 어린아이 달래듯 친절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며 자주 안심시켜 주었. 그리고 그녀는 열심히 설명한 뒤엔 늘 응원의 메세지로 화이팅을 외쳐주는 멋지고 친절한 사람이였다.


묵직한 구름이 차가운 공기를 몰고 오는 아침. 그녀의 반가운 문자에 눈이 떠졌다.


[일어났어? 오늘 같이 아침먹으러 가자. 그 카페에서 출근 한시간전에 봐^^]


그녀의 따뜻한 말투가 깨운 아침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의 시작을 채워줄 식사를 위해 분주히 준비를 하는 모습이 신이 나있다. 오늘은 꼭 내가 아침식사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당신만큼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20대의 풋풋하고 여렸던 나는 정신적 지주인 그녀에게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경력직인 그녀는 내가 대접하는 아침식사에 고마워했지만 자주 사지는 말라고 이야기했다. 보호해주고 싶다던 나에게 아침식사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내가 전생에 과연 나라를 구한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내게 온 것일까?내가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괜찮은 사람인가?그녀는 내가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처럼 언제나 나를 상냥하고 세심히 대해주었다.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자 그녀도 같이 흥얼거리며 웃었다. 같은 음악으로 서로 다른 추억들을 쏟아내는 우리는 출근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워질 지경이였다. 한 시대를 비슷하게 살았던 두 사람의 뒷모습은 들썩이는 어깨와 바빠보이는 손짓으로 얼마나 신이 나있는지 말해주었다. 오늘은 빵을 좀 더 많이 주문했는데 그녀가 배불리 먹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 맛은 있는지 아침업무를 볼만한 에너지가 채워졌는지 확인하는 일로 나의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에너지를 충전한 아침이 하루를 꽉 채워주는 일로 종종 멋진 하루를 보장받은 것 같은 날들이 많아졌고 업무에도 점점 자신감이 붙어갔다. 칙칙했던 안색에는 활기가 돌았고 눈빛은 그녀를 닮아 당당하며 힘이 생겼다. 이제 더 이상 히스테리에 당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히스테리동료는 그녀의 기에 눌려 더이상 활개를 치지 못했다. 고마운 그녀가 방패막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20대 사회초년생의 어리숙한 사회생활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뻔 했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녀는 살아가는 동안에도 늘 마음속에 영웅처럼 멋지게 자리잡고 있었고 시련이 닥쳐올때마다 나는 마음속의 영웅을 찾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멋진 영웅!! 


세찬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일고 쌓였던 눈이 얼어서 도로가 엉망이 되었다. 문밖을 나서기가 꺼려지는 날이였지만 지난 기억속에서 희망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음속 영웅에게 말했다.


"오늘도 힘을 내어 보겠어요. 지난 날 너무 고마웠고 여전히 고마운 당신이 그리운 날이네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날이기도 해요. 나의 롤모델이 되어 주었던 당신은 평생 나의 영웅일거에요 "


아무도 밟지 않은 눈쌓인 거리에 발자국을 내며 걸었다. 발자취 위로 다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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