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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Dec 27. 2023

나의 하나뿐인 지원군

나도 엄마입니다만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이 반갑지 않은 인간은 몇일 전 혹독한 추위를 겪서인지 오늘의 추위는 늦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저 그런 추위로 느껴진다. 패딩이 조금은 오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살갖에 스치는 바람이 굉장히 시원하고 상쾌하다. 몇일이 지나면 곧 봄이 찾아 올 것만 같은 착각에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지만 이내 또 추위가 찾아올 것을 알기에 오늘의 봄같은 겨울을 즐기기로 한다. 콧노래가 나오는 날이다.


저층에 살땐 놀이터뷰였다면 9층으로 이사한 집은 하늘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블라인드를 걷으면 다행히 앞에 높은 건물이 가리지 않아 탁트인 하늘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은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보여주는 듯한 구름을 바라보며 또 다시 콧노래를 끄집어 내곤 한다.


주말에 엄마가 오셔서 전에 살던 새집보다 구축이지만 전집보다 넓고 높은 층이 더 좋으시단다. 서서히 적응해 가는 인간도 하늘풍경에 종종 마음을 내어주며 언젠가는 이곳이 낯설지 않아 질지도 모른다.


엄마는 반찬 몇가지와 딸기 두팩 대봉 한박스를 사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자주 봉투를 건네주신다. 먹을것을 잔뜩 풀어 놓으시고 그제서야 흡족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은 내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마는 다 똑같은 건가.


주름은 깊어지고 예뻣던 손은 고생한 흔적을 남겼고 여기저기 아픈곳 투성인 엄마는 아직도 일을 놓지 않으신다. 이제는 좀 쉬시면 좋겠는데 '몇년만 더'를 이야기한게 벌써 몇년째이니 엄마의 말은 믿지 않는게 좋겠다. E성향인 엄마는 아마도 집이 더 답답할 것이기에.


든든한 지원군의 도움으로 몇일간 반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비싼 과일도 냉장고에 잔뜩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음이 풍족해졌다. 힘들게 벌어서 자식들 잔뜩 사주고 나면 받는 입장에서는 미안할때가 많지만 그 또한 엄마의 주는 기쁨이지 않을까. 나도 나이들면 비슷한 모습 것 같다.


사실 엄마와는 관계는 그리 좋은편이 아니였다. 엄마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항상 따로 볶으셨는데 소고기는 오빠쪽에 놓아주시고 돼지고기는 내쪽에 놓아주셨다. 아빠는 늘 그것으로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셨다. 엄마의 옛날마인드는 한결같았다. 늘 내편이 되어주었던 아빠덕분에 소고기를 먹지 못하더라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소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한살 터울인 남매의 대학준비도 차별을 하셨다. 오빠는 당연히 대학에 가야하기에 지원을 해주셨지만 나에겐 달랐다. 재수시절까지 눈치를 봐야 했고 내편 아빠의 응원으로 힘든 시절을 잘 이겨냈지만 결국은 한참이 지나서야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많이 담아내며 살았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엄마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다. 엄마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젠 서운함은 사리지고 안스러움과 고마움만 남았다. 엄마와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데 늘 비슷한 얘기를 하시다가 종종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면 말이 길어지시곤 한다.


엄마가 집으로 가시고  난 뒤 전화기 넘어로 말씀하신다.


 "애들 맛있는거 사주고 너도 먹고"


좀 전에 주셨던 봉투를 보니 노란빛 지폐가 몇장 들어있다.


 '내가 앤가 용돈을 이리도 챙겨주셨데'


엄마는 아직도 내가 일을 하는 것 보단 아이들을 잘 케어하는 걸 더 바라신다. 아이들을 잘 돌보면서 일도 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은 오늘도 헥헥거리며 자아를 찾기에 바쁘다.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늘 자신을 괴롭히지만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엄마는 이런 마음까지 알지 못한다. 엄마의 살아온 세월이 말해주듯이 이건 엄마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부모님 세대가 겪은 세월을 이해하는 일도 부모님의 환경을 이해하는 일도 이제 제법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 시대의 어려움을 늘 듣고 자랐기에 현재의 환경에 감사함을 가지려고 한다. 마의 헌신과 가족애에 감사하는 마음도..


 그리고 종종 금붙이와 용돈을 주시는 마음도..  엄마가 주신 금붙이를 이젠 절대 팔아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금값이 많이 올랐던데.. 가지고 있으라고 한 말을 들었어야...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로서 행복한 사람이어야 하고 내 일을 함으로서 멋진 엄마이고 싶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말을 잘 들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군이 되는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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