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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Jan 20. 2024

비오는 날 드라이브와 탕진잼

슬기로운 방학생활

느즈막히 오후가 지나고 있는 시점 돌봄교실마저 방학을 맞이한 아이와 왜 어린이집은 방학이 없냐며 언니만 방학이냐고 투덜되는 막내의 평등권을 조금이라도 부여해주기 위해 하루를 재낀다. 늘 하루 주말처럼 부대끼며 잘 지내보자라는 심산이였지만 오전 시간은 이미 휘리릭 지나가버리고 난 늦은 오후였다.


영상매체를 이용하는 시간에 제한을 두니 권의 책까지 모두 읽어 심심해진 아이는 반려견 산책을 제안한다. 공동현관문 앞에 맴도는 어두운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공기를 풍긴다. 비가 꽤 많이 쏟아지고 있는 바깥풍경에 실망감 가득한 아이의 표정은 다른 방법을 찾도록 도한다.


아이는 엄마가 방법을 찾지 못하는 동안 반려견들과 산책대신 드라이브를 제안한다. 갑자기 목적지를 정해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가까운 마트근처나 예전 살던 동네를 한바퀴 돌고 들어올 생각으로 나갔는데 비오는 풍경과 회색빛 하늘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기에 충분했고 좀 더 장시간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해 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반려견을 쓰다듬어 준다.


아빠를 찾아 뵙고 올겸 진로를 변경해 본다. 비오는 날 똥강아지들 넷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지만 드라이브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점점 더 많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아이들은 잊지 않고 캐치한다. 반려견이 무서워 할까봐 담요도 덮어주는 작은 손길의 따스함이 차안 가득 퍼져 오늘의 운전자는 매우 친절모드로 분하게 똥강아지들을 이끈다.


30분정도 달려 자주가던 도서관에 다다르자 길게 줄지은 차들로 진입이 어려워 보인다. 어차피 회차해서 갈 생각이였으므로 그 옆에 체육관으로 들어가본다. 아이들 안전벨트도 점검하고 반려견들이 힘들어 하진 않는지 체크하고 잠시 한숨 돌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연화장에 들러 아빠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인사를 한다. 비가 와서 더 생각나는 날이라고. 보고싶어서 왔다고. 사랑한다고 몇마디 건네고 나니 눈물이 흐른다. 우는 모습은 좋아하지 않을 거야.. 웃자.


 퇴근시간인걸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들의 행렬은 더딘 속도와 저기압의 하늘은 차분하다 못해 피곤해지는 컨디션을 주기에 이른다. 재잘재잘 떠들썩했던 두 아이의 대화소리는 어느새 들리지 않고 반려견들마저 고이 잠들어버린 적막이 다 할 뿐이다.


다음 날의 아침은 드라이브의 노곤함을 잊지 않은 채 몸에게 흔적을 남긴다. 일어 날 수가 없다.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2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는 아이의 우쿨렐레 수업을 위해 5분만을 대여섯번쯤 중얼거린 뒤에야 몸을 일으킨다. 늘어져 있어서 컨디션이 안좋은 것보단 조금 피곤해도 움직였다는 증거를 남긴 몸상태가 좋다. 기분좋은 피곤함으로 시작하는 아침 여전히 바삐 움직여 본다.


지하주차장에서 흘러 나오는 곡은 마침 한 인간이 그토록 열광하며 듣던 Maksim Mrvica의 Croatian Rhapsody로 가득 차있다. 이토록 분위기좋은 지하주차장이라니.. 하주차장이 있는 아파트를 떠나온 건 잘한 선택이였지만 비오는 날 지하주차장이 없다는 건 별로 좋지 않다. 다시 이사오고 싶었던 날이다.


우쿨렐레 수업이 끝날때까지 분위기좋은 지하주차장(?)에서 끄적여본다. 생각날때 메모해두는 건 좋은 습관이다. 초고에서 여러번의 퇴고를 거치겠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간다. 주차장에서 글을 쓰다니 흥미롭다.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라고 여긴다.


예상 시간보다 10분정도 수업이 빨리 끝난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는 차를 기다리는 대신 걸어서 여기까지 오는 방법을 택한다. 아이를 마중나가봐야 겠다. 핸드폰을 들고 엄마와 신나게 떠드는 아이의 표정은 엄마의 모습이 보이자 미소뛴 표정으로 바뀐다.


우리의 계획은 오늘 온누리상품권으로 시장쇼핑을 하는 것이다. 추운 날씨에 눈에 띄는 건 무인카페이다.


"핫초코 먹고 갈까?"


무인카페에서 몸을 녹이며 오늘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엄마는 살 것을 메모해 왔어. 온이도 사고 싶은게 있으면 메모해 둬. 그럼 사줄께"


한시간 여를 카페에서 일어나지 못한 엄마와 딸은 이제 결심을 해본다. 일어나보자!!


왜 이런날 목도리와 장갑을 챙겨오지 않았는지 궁시렁거리며


"우리 시장 내일 갈까?"


기다렸다는 듯이 끄덕이는 아이는 시장나들이를 따라 나서긴 싫었던 모양이다.


벌써 두번째 미루고 있는 중이다. 다음날 드디어 우리는 시장투어를 시작한다. 과일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세가지를 사고 채소가게에서는 메모해둔 재료들을 거의 다 담았다.


"감자 조금만 사실거  같더니 많이 사시네요"


사장님은 동그래진 눈으로 들고 갈 수 있겠느냐며 한마디 건네신다.


'온누리상품권 탕진잼을 하러 왔거든요 히힛'


큰 길을 건너 차가 있는 곳까지 들고 가는 동안 낑낑거리며 손이 너무 아파오면 잠깐 내려 놓았다가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해서 겨우겨우 주차장에 도착했다. 과일봉지 하나를 들어주는 아이는 무겁다는 말을 반복하며 엄마가 든다고 하면 그럴순 없다며 끝까지 과일봉지를 건네지 않는다.


탕진잼은 근육통을 낳았다. 어깨의 근육이 뭉친게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피씨를 장시간 들여다 봐도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짐이 무겁긴 무거웠던 모양이다. 냉장고는 꽉 찼으니 방학동안 아이들의 먹거리 걱정은 한동안 덜  수 있는 것으로 근육통쯤이야 한다. 운동했다 치자구!!


다음주엔 헬스장에서 운동할 수 있기를..


길고 긴 겨울방학을 아이와 재미있게 보낼 궁리를 매일매일 하다가 겨울방학이 지나가버릴 것만 같기도 하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그 모든 일들을 해내길 바란다. 눈썰매장 가기, 여행, 이사간 친구네집 방문하기, 도서관가기, 영화보기, 공연보기, 엄마랑 놀기 읭?ㅎㅎ


슬기로운 방학 보내기 다음편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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