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사람
마을버스, 지하철, 버스로 갈아타며 출근하던 경리 주임이 월요일 오전 사직 의사를 밝힌 후 3일 만에 퇴직하였다. 고교생 아들과 유치원 졸업반 늦둥이 딸을 둔 그녀와 함께 일한 지 2년인데 사직 의사는 불과 3일 전에 들은 것이다. ‘아니,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게 해, 후임자를 뽑아야 하는데 일주일 전에는 얘기했어야지’ 지난 토요일 면접하고 결정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그녀의 말투에는 결연함과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다. 3일 만에 마땅한 적임자를 구한다는 보장도 없고 인수인계도 해야 하는데 일단 그쪽으로 출근하고 후임자가 물색될 때까지 며칠간 양해를 구할 수 없겠느냐는 말에 단호히 어렵다고 한다. 말인즉 근무 여건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 집과 가깝고 지원자도 많아 다음 달 1일부터 출근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평소 일처리가 야무지고 단단해 경리회계업무는 물론 민원 응대를 비롯한 그녀의 일 매무새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였기에 예기치 않은 사직 통보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가끔 한 시간이 걸리는 출근 거리와 늦둥이 딸의 유치원 수발에 더러는 피곤함을 넋두리하던 그녀였다.
열흘 전쯤이었다. 아침 출근을 20분가량 늦게 하면 안 되겠느냐고 불쑥 물어왔다. 그때 그녀의 복잡한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나의 미욱함 탓이리라. 출근길에 유치원에 데려다준 딸을 데리러 칼퇴근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종종걸음 하던 그녀였다. 그런 뒷모습에 이 시대 워킹 맘들의 고단한 삶을 일부나마 이해하고 측은한 마음도 들어 일이 있는 경우에는 그리하더라도 매일 늦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냐는 원론적 답변만 했었다. 경리 주임보다 3개월 늦게 부임하였기에 부임 후 전반적인 단지 사정을 파악하는데 1년 동안 세 번의 사직서를 내밀었던 과장의 경우에 비하면 그녀의 도움이 훨씬 컸었다. 야무진 성격대로 그녀의 업무처리와 민원 응대 품새는 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2년간 26년 차 단지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많은 일을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내부업무를 단단하게 받쳐준 그녀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그런 그녀가 경리 주임이라는 사실이 큰 복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역량을 동별 대표자들에게 종종 어필하곤 했었다.
그날 오전 내내 속이 끓었다. 그래도 이 시대의 워킹 맘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라 나름의 배려는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몰찬 처신에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야속함마저 들었다. 짧은 대화로나마 이직 결심이 확고한 것을 확인한 후에는 후임자 물색이 시급하였다. 구인공고로 3일 만에 그녀만 한 적임자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우선 주변의 도움을 청해 보기로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경험상 채용은 공채보다 주변의 추천과 소개에 의한 경우가 신뢰할만하고 수고를 덜게 한다. 지금의 L과장을 그런 과정으로 채용하였고 결과 또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기에 좋은 사람 소개해 준 동료가 고마웠다. 나 또한 소개로 입문하였기에 누가 되지 않으려 죽을 둥 살 둥 기를 쓰고 있지 않은가!'
■ 오는 사람
마침 주위에 추천할 사람이 있다는 지인과의 통화가 있은 지 20여 분쯤 지났을까? 첫 번째 지원자의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로 오겠다는 그녀를 가까운 곳이니 내가 가겠노라 하고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 빨리 후임자를 물색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내일까지 후임을 구하지 못하면 인수인계에 차질은 물론 업무수행에 문제가 발생할 건 자명하였다. 서울 외곽 지역 700여 세대 26년 차 단지로 지역 평균보다 다소 밑도는 급여인지라 500세대 이상의 근무경력이 최소 2~3년 아니 1~2년 차 정도면 채용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력서에 기재된 경력과 대화를 통해 받은 인상은 서울지역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 당장 부임하더라도 모든 업무가 물 흐르듯 순탄할 것 같았고, 사십 중반의 연륜과 온화한 인상은 웬만한 민원도 부드럽게 잘 처리해 낼 것 같았다. 이 정도 후보자라면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과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식사 중 간간이 말하는 그녀의 퇴직과 재취업 사유 등은 귓등으로 흘리며 머릿속은 온통 어떡하면 그녀의 승낙을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으니 커피는 자신이 사겠다는 그녀의 제안으로 부근의 커피숍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녀가 서빙해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다. 이제부터 입장이 역전되는 것이다. 내가 그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녀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한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부디 그녀의 간택을 받기를….
평균에 다소 못 미치는 급여 때문에 1년 전 겪은 아픔이 아직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누군들 높은 수준의 급여를 마다할까만 그게 관리소장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1년을 채우자마자 또 사직한다며 내미는 과장의 세 번째 사직서를 두 말도 않고 수리하고 후임자 물색을 위한 구인공고를 활동 중인 카페에 올리면서 급여가 마음에 걸렸다. 비록 미흡한 수준이나 이왕이면 카페 식구 중에서 후임자를 구하겠다는 의도였으나 곧 후회가 되었다. 공고에 달린 댓글을 보며 다시는 카페에 올리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원하는 근무조건으로 딱 맞게 취업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본인이 보유한 역량과는 상관없이 평균 수준의 급여보다 조금 낮거나, 근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더라도 개인적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왜 아니 없으랴. 또 그런 급여 수준임을 알면서 구인공고를 올리는 것도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속사정도 헤아리지 못한 채 과장 급여가 우리 반장 수준이네, 어디보다 적네 마네 등의 댓글에 기분도 상했지만 사려 깊지 않은 댓글러에게도 부아가 치밀었다. 소장인들 왜 빵빵한 금액으로 공고하고 싶지 않으며 그들인들 왜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하고 싶지 않을까? 두 번 다시 카페에 올리지 않으리라 작심하였다.’
경력이나 소양은 백 점 만점에 백 점 아니 그 이상이었던 첫 번째 그녀와의 면접은 커피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끝이 났다. 급여액을 전해 들은 그녀가 좀 생각을 정리해 본 다음 연락드리겠노라 했다. 강요할 순 없는 일이나 함께 근무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는 답으로 면접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짐작한 대로 그녀로부터 추천한 사람의 입장을 고려한 완곡한 거절 의사를 전달받았다. 서울 평균이 아닌 지역 평균에도 밑도는 급여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경력자인 그녀로선 최소한 전보다 같거나 좀 더 나은 조건으로 재취업하려 함은 당연하다.
아쉬움이 컸으나 그녀에 대한 미련은 일장춘몽으로 생각하고 몇 군데 더 도움을 청한 뒤 협회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월급여액으로 표시하였으나 지금은 포괄적인 연봉으로 표기하고 있어 심적 부담이 덜하였다. 카페에 다시 한번 올려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향후 선택받지 못한 카페 식구들을 대할 일이 부담스러워 그만두기로 했다. 퇴근 무렵 구인공고를 올려놓았다. 그날 저녁 몇 차례 메일을 조사해 보았으나 첫날이라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이튿날 열어 본 메일에는 열 통이 넘는 이력서가 수신되어 있었다. 밤늦게까지 구인광고를 검색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첫 번째 지원자에게 퇴짜를 맞는지라 눈높이를 낮추기로 했다. 경리 주임이 별도 구인공고를 낸 덕분으로 10여 통의 이력서를 추가로 건네받은 것까지 지원자는 스무 명이 넘었다. 예상보다 응모자가 많음에 취업난이 이 정도인가 생각하며 이력서를 살펴보았다. 6:4 비율의 신인과 경력자였고 현장에서 실습 중인 신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경리 주임, 과장과 함께 검토하여 오후 면접이 가능한 세 사람을 선정하고 한 시간 터울로 면접 시간을 통보했다.
오후 첫 번째 후보자에게 어제와 같은 사유로 또 퇴짜를 맞았다. 경력자의 채용에는 그에 걸맞은 수준의 급여가 제공되어야 하나 사정이 그렇지 못함에 당연한 결과이다. 관리소가 지하가 아닌 지상 1층이다. 노인정, 회의실과는 별 동의 건물이라 무시로 들락거리는 입주민이 없다. 관리주체와 대표자들과의 관계도 우호 협력적이다. 대표자들 간에 주도권 다툼도 없다. 결재 지연으로 속 끓일 일도 없다.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는 없다 등의 잡다한 사항으로는 그녀 마음속의 급여 차액의 벽을 허물지 못했다. 마지막 멘트로 장담할 순 없으나 차액 부분만큼 내년 임금 인상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사족도 말한 이의 초라함만 더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더 좋은 근무환경에서 더 나은 급여를 받았기에 그런 것들은 그녀에게 당연하였는지 모른다. 결국 '차액을 감수하며 일하기는 좀 그래요. 조금 더 쉬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겠습니다'로 끝이 났다. ‘혹시나’가 또 ‘역시나’였다.
'급여가 평균 수준을 밑돌아 직원 채용 시마다 애를 먹는 것이 어디 내 탓이랴? 2년 거푸 임금 조정 시 인근 단지 전년도 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금액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하던 회장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이 수준의 급여로는 앞으로 직원 채용 시 적임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했으나 그럴 리가 하는 표정을 짓던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단지 규모와 상황에 걸맞고 그들의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적임자를 구하려 함에 최소한 지역 평균과 동등 수준의 임금은 제공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얼마의 금액 조정에 왜 그리 인색한 것인지….'
두 번째로 퇴짜를 맞고 느낀 바가 있어 급하게 다음 면접 예정자에게 전화했다. 경리 주임 급여액이 이러하니 그럼에도 근무할 의향이 있으면 면접 오라 했다. 피차간에 시간 낭비나 괜한 수고를 하지 말자는 취지였다. 한 사람은 오지 않겠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온다 했다. 세 번째 면접한 그녀에게 낮은 임금에도 오겠다는 이유를 물었다. 대표자들 간의 알력과 주도권 다툼으로 인한 업무 외적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급여도 중요하나 마음 편하게 일할 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런 점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고 그녀의 듬직한 체격만큼 흡족한 마음으로 면접을 마쳤으나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잔여 이력서 중 한 사람을 더 선택하여 면접한 네 번째 그녀 또한 한 시간 출근 거리임에도 그런 사정으로 퇴사하였기에 근무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앞서 퇴짜 놓은 그녀들의 경력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 남의 단지 복잡한 사정이 내게 도움이 되었으니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인가 보다 하며 최종 선택을 위한 고심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대조적이었다. 전자는 넉넉한 체격만큼이나 웬만한 민원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느긋한 성품으로 판단되었고 집도 가까웠다. 후자는 차분하고 세심한 성품으로 업무처리에는 전임자 못지않게 빈틈이 없어 보였으나 한 시간 출근 거리에 체격조건도 전자와는 비교되었다. 오늘 결정해야 내일 하루 인수인계가 가능했기에 최종 몇 시간의 고민 끝에 퇴근 무렵 유들유들하고 느긋한 성품으로 판단되는 듬직녀에게 내일 출근하라 통보하였다. 한 시간 거리에 마이너스 급여도 마다하지 않고 면접에 응해 준 후자에겐 근거리 거주자를 채용하였음을 미안함을 실어 통지하였다.
■ 기다리는 사람
‘주택관리사 수첩을 받았을 때는 곧 취업이 될 줄 알았다. 취업만 되면 초임 소장으로 정말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도 많이 했다. 대형 위탁사의 공채마다 정성껏 작성한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냈건만 어디 한 군데도 합격 통지는 고사하고 불합격 문자조차 보내주는 곳이 없었다. 이 바닥이 원래 이런 곳인가, 사람이 전부인 업계의 문화라기엔 바람직하지 않다 싶었으나 곧 적응되었다. 이후 수개월 동안 개별 공고에 20여 차례의 이력서를 보냈음에도 단 한 통의 전화나 문자를 받아보지 못했기에….’
그날 퇴근 후 출근 통보한 듬직녀와 면접자를 제외한 모든 지원자에게 근거리 거주자로 채용하게 되었음을 알리며, 더 좋은 곳에 더 나은 조건으로 취업하길 바란다는 간단한 내용의 메일로 미안함을 전했다. 몇 분들에겐 기회가 닿는다면 추천해 드리겠노라는 마음도 함께 보냈다.
다음 날,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 간의 인수인계가 무난하게 진행되는 모습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관리소의 업무 중 경리회계업무는 민원 응대와 함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본이 견고하지 않으면 다른 업무에 전념할 수 없다. 예정에 없던 긴급 채용이라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겠지만 우선 발등의 불은 끈 셈이었다. 짧은 이틀간에 두 달가량 더 늙어버린 심정이었다. 새로 온 듬직녀 또한 워킹 맘이기에 단지 식구로 안착하는데 좀 더 신경 쓰고 배려해 주리라 다짐도 했다. 급작스러운 경리 주임의 사직 통고로 인해 벌어지고 겪은 일들이 가고 오는 사람 간의 업무 인수인계가 진행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기에 잊고 있었던 채용공고를 내리는 것으로 이틀간의 혼란을 마무리 지었다.
점심 식사를 다녀와 열어 본 메일에는 추가 접수된 이력서와 회신 메일이 몇 건 있었다. 어제 보낸 통지에 대한 답신으로 채용 결과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의당 알려드려야 하는 일이니 회신하지 않아도 그만이나 통지해 준 의미를 알기에 그에 대한 마음으로 답해 온 것이었다. 그날 그런 메일을 6통이나 받았다. 어떤 분들인가 이력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거의 타 지역 거주자이고 40대 후반이다. 한두 명의 중·고생 자녀를 두고 있는 분들이다. 옛날과 달리 요즘 자녀의 양육에는 만만찮은 비용이 수반되며 한 사람의 수입만으로 뒷받침하기에는 많은 절제가 요구된다. 자녀들이 원하는 만큼이나 부모로서 해주고 싶은 것을 다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그 수입원마저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가 아닌가. 그러기에 누구보다 취업을 원했고 소식을 기다렸을 분들이다. 새삼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향후 기회가 있으면 이분들을 추천하리라 생각하고 이력서를 따로 챙겨두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응해준 분들이다. 다른 일도 아닌 취업 여부에 대해 궁금함은 인지상정이니 알려드려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수년 전 이들보다 더한 기다림과 목마름의 시간이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비록 통지하는 입장이나 그게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오래지 않아 나 또한 그들처럼 기다림 속에 있을 것임에 이를 헤아려 주는 작은 배려는 결코 그들만을 위함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현직의 당신은 더 좋은 자리 기다리고, 자격증 갓 취득한 신참은 채용되길 기다린다. 관리소장은 빵빵한 급여로 구인공고 하는 날 기다리고, 월드컵 16강 진출 온 국민이 기다린다.
세상사 모두가 이런 기다림의 연속이고 우리 또한 그 기다림 속의 만남과 인연인데 그 기다림과 목마름을 헤아리고 배려함에 굳이 인색할 필요가 있을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에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살고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