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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Sep 22. 2023

집밥

밥그릇에 담긴 엄마의 마음

  아들은 영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취업을 마다하고 작업실을 얻어 뮤직비디오 제작을 시작으로 영상제작업을 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졸업을 앞둔 무렵 여느 부모와 같이 취업하길 바랐다. 후일 해당 분야의 사업을 하더라도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과 절차를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개인이 장만하기 쉽지 않은 고가의 첨단 장비도 다뤄보고 기업이 축적하고 있는 제작, 마케팅기법 등도 익힌 후 독립하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를 오롯이 담은 작품을 할 수 있는 지위까지 가려면 족히 십 년은 걸려야 할 것 같다며 취업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직하고 허름한 건물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독립하였다.


  이 직업의 특성이 밤낮이 바뀐 생활과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것이었다. 기획, 제작, 섭외, 촬영, 편집 과정 등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따로 정해 놓은 작업시간이나 밤과 낮의 구분이 없었다. 작업 효율 때문인지 올빼미 같은 생활이 일상이고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했다. 남들이 곤히 잠든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까지 밤샘 촬영이나 작업을 다음 날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모습이 이제 그리 생경하지도 않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요즘은 제법 알려진 방송국 프로그램에 부분적이나마 참여하는 빈도가 늘고, 관련 잡지에 떠오르는 신인 감독으로 소개되기도 했으며 얼마 전부터 전문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본인이 좋아하고 아직 젊기에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없어 보이나 부모의 관점에서 아들의 불규칙한 생활이 걱정되고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이다 보니 집에서 밥 먹는 것도 일정치 않고 세 식구가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하는 일도 드물다. 어쩌다 주말에 함께 있더라도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느라 부자지간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도 흔치 않다. 그렇기에 매일 출퇴근이 일정한 나와 달리 불규칙한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는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항상 짧기만 하다. '요즘 일은 어떠냐, 힘든 건 없어, 자금 사정은 어때, 밥은 챙겨 먹도록 해라' 등의 짧은 몇 마디가 주고받는 대화의 전부다. 어쩌다 주말 아침, 함께 목욕이라도 함께 갈 요량으로 자는 아들의 어깨를 흔들면 피곤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다 어느새 나보다 더 건장한 아들의 등짝을 보며 이제 잔소리할 단계는 지났구나 했던 게 언제였던가. 본인의 독자적인 삶을 위해 결혼시켜 독립시켜야 하나, 교제 중인 여자 친구도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부모 생각만으로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


  생활방식이 그러하니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하루 한 끼 정도에 불과하다. 집에서 밥 먹는 경우 아내는 신혼 시절 내가 받은 밥상 이상의 정성으로 아들 밥상을 차린다. 그런 엄마의 밥상에 대해 아들의 생각이 담긴 뮤직비디오가 한 편 제작되었. 아들의 관점에서 풀어낸 엄마의 밥상에 대한 해석은 수십 년간 밥상을 받은 남편이 깨닫지 못한 아들만의 해석이 담겨 있었다.


  엄마가 차려내는 밥상과 관련한 장면이 나온다. 영상 그 의미를 간파하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아들에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는 항상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이 있는 장면이다. 엄마의 따뜻한 밥상이라는 정도로 이해했으나 아들의 연출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항상 밥그릇이 맨 나중에 놓인다. , 아들이 밥상에 앉은 후에야 밥그릇이 놓인다. "와서 밥 먹어라"라는 엄마의 부름에 아들이 밥상 앞에 앉고 나서야 밥솥의 밥을 퍼 아들의 밥그릇에 담아낸다. 가장 따뜻한 밥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어 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라 해석하여 김이 나는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다.

오랜 결혼 생활 동안 남편으로서 간파하지 못한 아내의 마음을 아들은 그런 해석으로 엄마의 마음을 담아낸 것이었다.


  대학 입학 후 입대 전까지 2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주말에야 하루 또는 이틀 집에서 묵고 갔다. 학교 식당 밥과 사 먹는 밥에 질렸다며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가장 맛있고 최고라며 아내의 기분을 곧잘 업시켰다. 아내도 그런 아들의 반응에 행복해하며 갖은 솜씨와 정성으로 밥상을 차려주었. 결혼 생활 40년 동안 평소 무딘 남편에게 못 들었던 칭찬에 대한 갈증을 아들에게 보상받는 느낌이었으리라. 나 또한 주말이면 그런 아들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더 풍성해진 밥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이면 아버님 밥그릇을 항상 온돌방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두셨다. 아버님 밥상은 이불속 밥그릇이 상위에 놓이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지 않았던가. 무덤덤에 무심함이 더해져 밥그릇에 담아내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언제부터인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들 밥상 차림에 대한 아내의 마음은 졸업 후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아들에게 한 수 배운 그때 이후, 식탁 위에 밥그릇이 놓여있지 않아도 시장함에 아내에게 부렸던 짜증 대신 그런 마음일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내가 담아주는 밥그릇에는 항상 내 정량보다 많은 양의 밥이 담긴다. 매번 덜어내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인 것 또한 아들을 대하는 마음처럼 조금이라도 더 먹게 하려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쩌다 주말에 집에 있는 아들에게 슬쩍 묻는다. ‘오늘도 촬영 있어? 오늘도 나가니?’ 내가 그리 묻는 이유를 아들이 온전히 알기까진 앞으로도 한 이십 년은 더 걸리리라 생각하며 혼자만의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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