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수기 대상
“이(예비) 소장님, 내일부터 실습 나가셔야 하는데 가능하신가요?” 수화기너머 인사담당 본부장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토록 기다렸던 취업이 현실로 다가온듯한 느낌에 반가움과 설렘이 밀려왔다. 자격증 취득 후 곧 취업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구직활동에서 연이은 탈락의 쓴 맛을 보고 있었기에 발령을 예고하는 실습통보는 얼마나 반갑고 설레었는지 모른다.
첫 직장에서 퇴직하기까지 금융업의 한 업종에서만 재직했기에 주택관리 업계와 관련한 지식이나 인맥이 전혀 없었다. 공채나 개별공모에 수십 통의 지원서를 보냈으나 모두 예외 없이 탈락한지라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무렵이었다. 연말 모임에서 만난 중학동창에게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한 지 보름 만에 현장실습 근무를 통보받은 것이다.
고교 졸업 후 첫 직장에 입사하여 그 시절 대부분 직장인이 그랬듯 집보다 회사를 우위에 두었다. 좋은 상사를 만난 덕분으로 재직 중 대학, 대학원을 마쳤고 봉급쟁이 꽃이라는 임원으로 승진도 했으니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을 뿐,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있는 요즘 직장인들처럼 투잡, 쓰리잡에 신경 쓰지 않았다. IMF 시절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직장을 떠나야 했던 수많은 선배를 보며 한 눈 팔지 않고 주어진 직무수행에 충실하는 것이 남은 자의 도리이고 의무라는 생각에 몇 번의 이직 제의도 큰 망설임 없이 넘긴 후 퇴직을 맞이하였다.
임원 발령을 받은 날 "이젠 퇴직 후를 생각해야지"라는 인사 담당 선배의 말에 축하의 말을 기대했던 나로선 다소 서운하기도 했다. 수많은 선배의 퇴직 후 삶을 지켜본 선배로서 후배에게 하는 의미 있는 충고였음은 퇴직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퇴직 무렵에도 그간 체득한 관련지식과 경력이면 재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재취업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아이템을 찾아 욕심내지 않고 꾸려간다면 최소한의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는 생활을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구체성 없는 그 막연한 자신감과 기대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직한 동료, 선배를 만나 조언도 듣고 재취업 지원강좌 등을 찾아다니는 동안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IMF 이후 도입된 Compliance(준법감시) 및 Internal Control(내부통제) 분야의 책임자 경력으로 재취업을 시도하였으나 후보자 중 최연장자이며 완전치 못한 어학실력으로 모처럼의 기회를 움켜잡지 못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재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조언도 구하며 재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내가 보유한 조건과 효용은 그들이 원하는 한계효용의 범위를 벗어나 있음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아직은 가장의 권위와 자존심은 내려놓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퇴직동료와 함께 시작한 동광석 슬러지 납품사업이었다. 전국을 돌며 4개월간 공을 들여 두 군데 도로공사현장 납품을 성사시켰으나 뒤늦은 환경상의 문제를 우려한 회사 측의 입장으로 무산되어 시간낭비와 허탈감만 얻었을 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무점포 소자본 1인 창업이 가능한 점에 이끌려 시작한 자영업도 1년도 못되어 경험 없이 의욕과 꿈만으로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경험과 비싼 수업료만 치룬 셈이 되었다. 고교 선배의 권유로 무연탄 수입사업에 투자한 자금마저 회수가 요원해져 버린 그때는 정말 벼랑 끝 심정이었다. "치밀한 계획과 확실한 판단이 있기까지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 것도 현명한 투자입니다."라는 조언을 왜 새겨듣지 않았는지,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야 “사업은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며 사업의 꿈을 접었다.
그 아픔 후, 아파트관리소장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6개월간 절박한 심정으로 책과 씨름하여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 취득과 함께 곧 취업이 되리라는 희망에 관련 교육이수와 자격증을 취득하며 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부동산경기와 맞물린 주택공급의 침체로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음에 업계 진입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고 별 따기였다.
국내 유수 위탁관리사 공채에는 내부적 기준인 나이 제한에 걸려 서류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하였다. 정형화된 방식으론 취업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취업현실과 취업경로에 대한 현장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공동주택 근무자들의 카페에 가입하였다. 100여 편의 글을 게재하며 현직 근무자들이 들려주는 취업 현장의 이야기를 새겨 들었다. 그들의 조언에 따라 그간 정형화된 루트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 취업의 문을 뚫어 보겠다는 편협한 생각을 접고 내 주변의 모든 네트웤을 동원하여 연결되는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청했다. 취업에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은 이 단계에서 만난 중학 동창이었다. 건설회사 임원이었던 친구의 추천으로 불과 보름 만에 실습 통보를 받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퇴직자들의 경로를 분석해 보면 개인적 네트웤을 활용하여 재취업한 경우가 가장 많다. 본인의 보유한 역량과 스펙보다는 이러한 네트웤이 더 효과적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강사님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퇴직 후 조급한 마음에 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었으나 아픈 만큼 깨달음도 있었다. 앞으로 남은 삶이 짧지 않기에 그 경험 깊이 새겨 되풀이하진 않을 것이다. 또 남은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체득할 수 있었기에 마지막 종착지가 아닌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의 도약을 위해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잊지 않겠노라 다짐해 본다. 오늘에 이르기 까지 재취업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