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5월의 풍경

by 애기타

근무지 아파트는 700여 세대,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이웃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동북 방향으로 경기도와 맞닿고 봉화산, 망우산, 아차산이 곁에 있어 도심보다 공기도 한결 맑고 차다. 지하철 4개 노선과 철도 강릉선이 연결되는 망우역, 상봉역이 도보거리이고 6호선 봉화산역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춘 곳이다. 오십 년 전통의 우림시장이 가깝고 주위에 할인마트만 열 곳이라 세일 때마다 알뜰 주부의 발걸음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해마다 이맘때면 매화를 선두로 산수유, 목련, 개나리, 영산홍, 철쭉이 저마다 봄의 전령임을 자처하며 저만의 자태를 뽐낸다. 꽃 중의 왕 모란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앗아가고, 시샘하는 장미는 수천 송이 꽃으로 5월의 여왕은 자신임을 과시한다. 도로변 화단에 군락을 이룬 벚꽃나무는 하얀 속살을 살포시 드러내곤 가는 바람에도 온몸을 떨어댄다. 라일락 꽃향기 바람에 실려 오고 봉화산 너머로 해님 숨고 단지 내 어둠이 나리면 봄꽃들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까만 하늘 가로등 불빛 아래 봄꽃들의 춤의 향연이 펼쳐지면 꽃잎들의 춤사위에 보는 눈이 다 현란해진다. 늦은 밤, 벚꽃 엔딩 노래 속에 청춘들의 속삭임 이어지면 봄밤의 정취를 담아내는 카메라 불빛이 밤을 밝힌다.


봄소식을 전하는 게 꽃들뿐이랴. 이른 아침 관리동 앞 느티나무에 참새, 까치, 직박구리, 까마귀와 이름 모를 산새들이 번갈아 날아든다. 출석 체크라곤 해본 적이 없건만 요즘 같은 봄날에는 하루를 안 거른다. 깡충거리는 걸음으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씨앗으로 아침 요기하기에 바쁜 참새는 내 얼굴이 익은 지 겁내지도 않는다. 부레옥잠 떠있는 돌절구 고인 물로 목을 축이곤 높다란 가지 위에 삼삼오오 자리 잡고 수다 떨기에 바쁘다. 무슨 수다를 그리 떨어대는지 십 년 만에 동창 만난 여인네가 따로없다. 한참을 재잘대다 떠나간 가지 아래로 출근부 서명하듯 흔적을 꼭 남긴다. 느티나무 옹이를 화가 난 듯 쪼아대며 한 성질 보이던 외톨이 딱따구리 녀석은 자가격리 중인지 열흘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관리동 맞은편 E동 11층의 수연이 할머니가 발코니 난간대에 대나무 채반에 널어 말리던 가자미 일곱 마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물고 내뺀 직박구리 사형제는 할머니가 벼르는 줄 모르는지 또다시 기웃거린다. 직박구리 녀석들의 소행임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 놈들의 절도 행각을 꼬박 뒤집어쓸 뻔한 덩치 큰 까마귀 부부도 빼놓을 수 없다. 할머니 지팡이나 물바가지 세례를 면한 건 내 덕인 줄 모르는지 여태 고맙다는 인사도 없다.


담장 사이로 제집 드나들 듯하며 방문증 한 번 끊어간 적 없는 길냥이 녀석들도 있다. 이젠 좀 친해질 만도 하건만 늘 그러듯 빤히 쳐다보다 내빼기만 한다. 지난 달 네 마리를 출산한 얼룩냥이 녀석은 벌써 독립시켰는지 요사이 혼자 돌아다닌다. 모두가 빼놓을 수 없는 아파트 식구들이다. 도심에서 쉽게 향유할 수 없는 자연과 환경이 가져다주는 선물이자 작은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자연환경이 그러하듯 사람들의 심성인들 크게 다를게 없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하루 두 차례의 소독작업이 한창일 때 관리소와 가장 먼 A동의 주민 한 분이 찾아오셨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묻기도 전 요즘 방역작업으로 수고가 많다며 들고 온 음료수 두 상자를 내려놓고 금세 돌아서신다.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는 말에 아니라며 손사래 하며 총총히 돌아선다. 여느 단지의 풍경이기도 하나 그런 이웃들이 있어 업무의 고단함을 이겨낸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고 하듯 아파트는 경비원의 빗질 소리에 하루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대나무 빗자루로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은 물론 단지 내 구석구석을 쓸어내는 열한 명의 대원들은 아파트의 기둥이다. 빗질이 끝난 후의 정갈해진 모습처럼 오늘 하루도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상쾌한 날이 되고 이런 봄날의 정경 또한 오래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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