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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Sep 16. 2024

12. 명절이면 더욱 생각나는, 가족

추석이다. 지난 주 먼저 톡을 보내시는 법이 거의 없는 시아버지께서 시댁 단톡방을 두드리셨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추석이 되니 아들, 며느리 생각이 많이나고 보고싶다고. 늘 격한 애정표현을 하시는 시어머니와는 달리 무던하신 시아버님이셨는데, 먼저 그리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디 시아버지만의 일방적인 마음이겠는가. 자식들 -나와 남편- 또한 명절이 되니 고국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올해 초에 여동생 혼자 휴가차 독일에 놀러왔었다. 공항으로 동생을 마중 나갔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고, 10일간의 짧은 여행이 끝나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아쉽고 섭섭하고, 더 잘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공항에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면 왜이리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로도 헛헛한 마음에 혼자 집에서 조금 눈물을 훔쳤다. 어짜피 이미 출가한 지라 한국에서도 더이상 살을 부대끼며 같이 살지도 않는데, 왜 더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을까. 독일에서 마음 나눌 사람 없이 지내다가 혈육과 함께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 허전함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동생이 떠난 후 일주일은 마음이 참 힘들었다. 언제쯤이면 가족과 멀리 떨어져사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이런 모습을 본 남편은 가족들이 일주일간 머무는 것은 너무 짧은 것 같다고, 그 이후에 오시는 시부모님의 10일 일정을 좀 더 늘리는 것은 어떻겠냐며 제안했다. 솔직히 친정 가족들과 달리, 시부모님과의 2주일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나로서는 불편한 일이었지만, 남편을 생각해서 그러자고 동의했다. 가족과의 짧은 시간이 얼마나 헛헛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편 만큼은 오랜 시간 부모님과 보내길 바라는 나의 아주 큰 배려였다. 


시부모님은 20일간의 일정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다 돌아가셨다. 그런데 동생이 오는 것과 시부모님이 머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동생은 가족으로서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편하기 그지 없었다. 반면에 시부모님은 가족의 방문이라기보다는, 손님의 방문처럼 느껴져서 신경 쓸 것이 여러가지로 많았다. 중간에는 독일 남부로 다함께 여행을 다녀왔는데, 인터넷에서 한참 떠돌고 있는 '부모님 여행 십계명'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 와중에 남편과 시부모님의 오해로 약간의 다툼이 있어, 사이에서 난처하기도 했다. 시부모님도 내가 가족으로서가 아닌, 손님으로서 대하는 모습에 (티는 안 내셨지만) 못내 섭섭해하신 듯했다. 이래 저래 오랜 시간 시부모님을 모시는게 힘들어 질 때 쯤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시부모님이 떠나시는 날, 남편은 내가 여동생이 떠난 후 느꼈었던 헛헛함과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 또한 좋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결혼 이후 나에게는 큰 물음표가 하나 생겼다. 나에게 가족이란 누구인가 - 라는 질문이었다. 결혼 이후에도 나에게 아직도 가족은 친정가족이 가족이고, 남편은 좋아해서 같이 사는 사람, 시부모님은 내 남편의 부모님이라는 생각이 들 뿐, 남편과 시댁이 내 가족이란 생각이 아직까지는 잘 들지 않는다. 친정 부모님을 떠나, 남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고 결혼하였는데,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서 남편은 가족의 바운더리에 들어오기에는 뭔가 2%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친구/동거인의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그 이상인 존재임은 분명한데 말이다. 아무래도 '혈육'과 '법률'로 구성된 가족 구성에는 큰 심리적 차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신혼 초에 이런 고민을 토로했더니, 다들 자녀를 낳으면 남편과 꾸리는 가족의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고 했다. 결국 남편과도 혈육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가족으로 인식된다는 것일까. 자녀 계획이 없는 우리 부부로서는 서로 가족이라고 느끼는 끈끈한 마음이 생길 수는 있는 것일까. 


어쨌든 지금 독일에서 내 가족은 남편과 나 단 둘뿐이다. 그래서 설날, 추석 뿐만 아니라 서로의 생일, 크리스마스와 같은 독일 명절에도 친정가족과 함께 보냈던 소소한 가족문화를 비슷하게 즐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명절 음식 해먹기, 생일 날에는 꼭 미역국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밝혀 노래부르기, 크리스마스 선물 주고 받기 등... 친정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당연한 문화였는데, 남편은 본가에서 이렇게까지 챙겨본 적은 없다고 했다. 새삼 같은 한국 가정이라도 가족마다 문화가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각자 원 가족의 풍습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당연해질 때 쯤 나는 남편을 진정한 우리 가족의 범위에 들일 수 있을까 싶다. 


독일에서는 추석 명절에 쉬지 않는다. 그냥 여느 평일과 다름 없는 날이다. 그래도 나는 갈비찜을 한솥 끓이고, 김치를 담갔다. 그리고 함께 양가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드리고, 서로 고향과 원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해외에서 매년 이렇게 명절을 보내다보면, 나와 남편만의 가정의 소소하고도, 새로운 가족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명절을 맞이하여, 오늘은 조금 가볍고 짧은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 


독자분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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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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