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에필로그
8월은 어느 해보다 뜨거웠지만, 어느 해처럼 지나갔다
여행 이후 우리 가족의 일상도 지나가고 있다.
"아빠, 아빠... 그래도 내가 스스로 잘했다고 한 건,
끝까지 고개 숙이지 않았어! 아래 안 보고 앞을 봤어"
딸 또또는 체육 댄스 수행평가를 마치고 와서
드라마 대사 같은 말투로 스스로를 칭찬했다.
속초 해변의 댄스 공연 외에도,
청소년들의 치어리더 성장기 영화 <빅토리>를
재차 주입했고, 효과를 발휘했던 거 같다.
생각보다 큰 체육관 강당에서 진행된 수행평가에서
또또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댄스를 모두 소화해 냈다.
박자에 몸을 맞추고, 청중에 시선을 맞춘 또또는
아니나 다를까, 쭈뼛쭈뼛하는 친구들과 확연하게
달라 보였다. 동영상을 남겨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오빠, 나 부서를 옮기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아"
와이프는 부서를 옮기기로 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빌런의 악행은
사내 위아래를 막론하고, 부서안팎을 무시한 채
악명을 떨칠 지경이 되었고, 처치 곤란이 되었다.
회사의 횡포 앞에 힘없는 개인을 보호하려는 지침은
오히려 지침 뒤에 숨은 개인의 막무가내와 생떼에
결국 손조차 쓰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피해자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할 처지라니...
무서워서 피하랴, 더러워서 피하지...
부서를 옮겨 안 그래도 정신없는 집안과 가족과
자신을 더욱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이 싸움은 끝내는 이겨서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집안일 수습을 우선순위로 둘 뿐...
"자기야, 또또야... 일단 임용은 통과되었대."
"우와, 그럼 이제 교수님이야?"
나는 한 작은 대학에 2학기 강의를 맡게 되었다.
광고홍보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2개 과목이 시작점.
Fire족이 되기에는 경제적 해결까지는 요원하지만,
인생 2막에 한 번쯤하고 싶었던 글쓰기, 강의/강연
등의 첫 발을 떼는 셈. '교수님' 호칭이 어색하지만...
아직 회사 이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이어갈 것이냐,
Fire족으로 밀어붙여야 할 것인가는 고민스럽지만,
무엇이든 '안 하고 싶은 건 안 할 자유'를 누리리라...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아버님, 이제 다음 주 퇴원이에요!
우리 이제 고향 집으로 내려가요 얼른"
"축하드려요, 아버님! 고생하셨어요 ㅠㅠㅠ"
[ 장인장모님, 제 발로 걸어 고향 보내드리기]
그 소원을 어느 정도 일단락 짓게 되었다는 것.
장모님의 수술 흉터는 이제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
장인어른도 재활, 연하검사, 기관절개 봉합술 등을
거쳐 평지만큼은 충분히 걸을 수 있을 정도. 그래서
여기서 퇴원하고, 고향 집으로 내려가시기로 결정.
그곳 병원에서 통원으로 치료를 이어가게 되었다.
장모님 기준으로 만 1년 1개월,
장인어른 기준으로 만 1년을 보름 앞둔 시점이었다.
"할아버지, 축하드려요!"
우리 가족은 평소 먹던 저녁 밥상에 '퇴원 파티'라는
이름을 붙여 물 잔으로도 짠~! 을 거듭했고,
딸 또또는 깜짝 선물로 할아버지께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낭독함으로써 온 가족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고향 내려가는 길은 길었고, 멀었고, 힘들었지만,
고향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은 울컥함의 연속이었다.
고향댁 일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그 길까지도...
여행기 안에 벌어졌던 일들의 마무리와 더불어
<브런치북>의 여행기 연재를 마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휴. 가."라고 줄여 부르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지난 1년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고,
내 와이프와 딸과의 추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을 표현해 준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생각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었고,
친한 독자들에게는 몇 가지 질문도 받았다.
"세상에 이런 딸이 어디 있나? 이런 아빠도 없다."
모두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딸의 말을
글로 옮기다 보니 내 단어와 말투가 섞여있을 수도.
그리고 딸의 답변에 내가 의미를 더 부여하니
딸이 더 기특해 보이는 효과가 나지 않았나 싶다.
"질문으로 끝내고 답변으로 시작하려고
일부러 노력한 거니? "
의도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아빠의 마음과
생각해 보고 답변하려는 딸의 마음은 다를 거 같아서...
질문이 억지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
"각 편 썸네일 사진,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가사 등은
어떤 생각이었니?"
여행 하루마다 하나의 썸네일 이미지로 통일시켰고,
매일밤 마지막에 즐기던 혼자 맥주 한 캔 타임 뒤에
노래 가사와 더불어 잠에 들어가길 바랐던 마음으로...
"여행 사진이 없어서 좀 아쉽던데...?"
작품을 쓰기로 생각하고 간 여행은 아니었던지라,
딸과의 대화를 기록하고자 메모에 신경을 썼지만,
사진은 평소대로 가족 얼굴이 나온 것이 대부분.
그래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사진은 많이 없었다.
그 부분이 여행기로서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마무리, 잘한 거지? "
대화마다 주제도 달라서 혹시 중구난방처럼 읽힐까,
나의 일기처럼, 혹은 꾸며낸 이야기처럼 느낄까,
여행기에 맛집 정보, 관광지 정보가 너무 부족할까,
이런 이야기를 누가 읽기나 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가족과의 여행 한 편을 완결했고,
브런치북에 내 나름의 새로운 시도를 도전해 봤고,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했고,
라이킷에 응원받았기에 너무 의미가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