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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7시간전

지금 웃는 자, 최후에도 웃으리라

여행 4일차 -6 @ 속초해변, 속초 아이파크스위트

우리 가족은 ‘스트릿우먼파이터 2’ 팬이었다. 

또또에게는 자정이 넘어서도 TV를 볼 수 있던 

최초의 프로그램. 그에 비할 바 아니지만, 우리는 

세 명의 춤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답을 찾았다. 

 

"춤선이나, 날렵하거나 뭐 그런 거 아닐까?"


엄마가 가볍게 한번 던지고, 


""시선처리가 다른 거 같은데… "


진지하게 두 번 던졌는데도, 

또또는 길게 생각에 잠겼다.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어..."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뭔가 다르긴 달라, 그지?"


"응, 좀 더 신나는 거 같아..."


"오, 맞아, 아빠가 지금 그 말하려고 그랬어. 

아빠도 몰라, 춤 몰라, 진짜 아빠도 어디 가서 

몸은 절대로 안 움직여, 또또랑 똑같아. 

근데 저 아저씨는 또또 말처럼 좀 더 신나, 

다른 두 사람보다... 혼자서 이미 신났어.

아빠는 계속 보니까 그거 같아. "


"혼자 신난 거?"

 

"그런 거지, 정확히는 그런 걸 미쳐있다고 하지. 

우리 춤출 때 창피하잖아… 틀리면 어떡하지?...

사람들 반응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게 없는 거 같아, 저 아저씨는… 


혼자 출 때도, 팀이랑 합동으로 출 때도, 

사람들 쳐다볼 때도 저 아저씨는 되게 진짜, 진심으로 

신나서 하는 거 같아. 저기 춤과 음악에 미쳐있는 거지. 

나쁜 뜻이 아니라, 완전히 몰입하고 있다는 거지.


저게 멋있는 거 같아. 

몰입하면 멋져 보이고 창피하지도 않고, 

창피해하지 않으니까 너무 또 멋있고… 그런 거 같다"


아빠의 말을 들으며, 또또는 또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 아무리 그래도 난 벌써 창피한데…' 하는 마음이 

이미 얼굴에 역력하다. 어쩜 이런 건 나를 닮은 건지...


거리에서 초중고생들을 보면 걸음걸음마다 속으로 

'내적 댄스'를 추고 있다는 것이 너무 잘 보인다.

아이돌 댄스 하나쯤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고 있어서 

걸음이 아니라 스텝이고, 팔이 아니라 웨이브다. 

이미 아이돌 댄스를 잘 따라 하는 아이들이 

유튜브나 SNS마다 넘쳐난다. 거기서도 차이가 난다. 

춤이든 음악이든 완전히 몰입해 있어서 보기만 해도 

같이 웃게 만드는, 함께 리듬 타게 만드는 아이들은 

왠지 겉멋보다는 표정이나 눈빛이 다른 뭔가가 있다.

기교 없이 어린아이 순수한 목소리 그대로 노래하면 

가사가 어떻든, 박자가 어떻든 눈물이 나는 것처럼...

그게 '몰입의 힘'이 아닐까 싶다. 


또또의 춤 기피증을 어떻게든 이겨내게 해 주고, 

학교 숙제에 동기 부여를 해주고 싶어 쳐다보다가 

진심으로 '몰입의 힘'을 느끼고, 설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좀 '몰입한 고수'의 느낌으로 

멋있어 보이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ㅅㅊ' 속초의 한글 자음을 모래에 박아놓은 해변은

음악 소리가 잦아지고 파도 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열대야 속에서도 밤바다 느낌을 느껴볼 찰나, 

우리는 서둘러 다시 속초 중앙시장으로 향해야 했다. 

횟집에서 파는 오징어회는 시장 대비 너무 비쌌기 때문.


"빨리 시장 가서 한 두 마리만 사거나, 포기하자!

야식 파티는 다른 걸로 해도 되니까"


문을 닫으려는 시장 골목 횟집 하나로 달려가서 


"아직 오징어회 있나요?"


와이프와 또또는 차에 앉은 채로, 나 혼자 뛰어간 

오징어회 사 오기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급하게 잡은 숙소 역시 오피스텔 형태였다. 

익숙한 우리는 빠르게, 하지만 개운하게 씻고 

여행을 마무리할 '오징어회' 야식파티를 맞았다. 


"오호! 괜찮은데… 이거 산낙지보다 맛있어! "


딸 또또의 예상을 뛰어넘는 감탄에, 


"그지? 그지? 이게 엄마야!"


와이프는 더 환호했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딸 또또는 어린 나이에도 산낙지를 잘 먹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른들 칭찬을 들어서인지, 

스스로 느끼기에도 진짜 맛있어서인지, 

산낙지의 맛을 정확하게 하는 건지, 

참기름과 소금의 맛으로 먹는 건지 

정확하게 딸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산낙지 한 접시를 혼자 싹 비워낸다. 

그 산낙지 킬러가 오징어회가 더 쫀득하고 맛있단다. 

이 정도면 맛을 구분하며 즐기는 수준이지 않을까...


여행 4일차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 

동선도 많고, 차 안에 있는 시간도 많고, 

대화도 많고, 이런저런 추억도 많았던 날. 


숙소에서 조촐하게 오징어회 한 접시에 

짠~ 하며 맥주잔과 주스잔을 부딪히는 가족 파티는 

노곤하면서, 뿌듯하면서, 즐거우면서, 피곤하면서... 

가족들 모두 더 빨리, 더 뽀송뽀송하게 잠을 청했다. 


어김없이 혼자만의 맥주 한 캔 타임.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어서 그런지, 

속초 밤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이 또 즐겁게 허전했다. 


회사 다닐 때도 휴가 마지막 날 밤이면, 

자연스럽게 느끼던 스트레스와 허전함이 있었다. 

'내일 출근하면 또 뭔 일이 벌어져있으려나...' 하는 

스트레스와 '아, 좀 더 알차게 재미있게 신나게 놀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 하는 허전함... 

 

퇴사 후에도 스트레스는 있다. 

예상치 못한 가족 일은 회사와 무관하지만,

어느날 문득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존감 바닥, 

이러다가 잘 안 풀리는 거 아닐까 싶은 불안감 등...

하지만, 스트레스 단어 안에서도 질이 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아무래도 나보다는 

남이 주는 스트레스여서 질이 아주 고약하다. 

하지만 퇴사 후 받는 스트레스는 내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렇게 고약하게 받아들이지만 않으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하는데...' 하는 

허전함도 내일 다시 또 채워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족과 보낼 수 있게 된 지금에 충실하자는 의욕. 

나아가, 이렇게 하루하루 채워가는 최선이 

결국 나의 결정이 인생의 풍성함을 더해줄 

새로운 20년으로 남게 만들게 되리라는 마음까지... 


언제나 느끼지만, 

여행에서 가족들에게 받은 것은 힐링이고, 

가족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그저 최선일뿐이고, 

그 최선에 대한 의욕만 있으면, 

내 생각과 가족의 마음 모두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까지 품게 된다. 


지금 웃는 자, 최후에도 웃으리라...라고 했듯이. 


속초 밤바다의 마지막 맥주 한 모금은 

'오케이'의 ㅋ~를 닮은 듯 경쾌했다. 


Song : 건사피장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 작사 영케이, 작곡. 홍지상/ 노래 하이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제발 살아남아 줬으면
꺾이지 마 잘 자라줘


온몸을 덮고 있는 가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견뎌내 줘서 고마워


예쁘지 않은 꽃은 다들
골라내고 잘라내
예쁘면 또 예쁜 대로
꺾어 언젠가는 시들고


왜 내버려 두지를 못해

그냥 가던 길 좀 가
어렵게 나왔잖아
악착같이 살잖아 hey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고갤 들고 버틸게 끝까지
모두가 내 향길 맡고 취해 웃을 때까지

 

내가 원해서 여기서 나왔냐고
원망해 봐도 안 달라져 하나도
지나고 돌아보면 앞만 보던 내가 보여

그때그때 잘 견뎌냈다고
생각 안 해 그냥 날 믿었다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
내 살을 베려 해도

자꾸 벌레들이 나를
괴롭히고 파고들어도
No 언제나 굴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아 난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고갤 들고 버틸게 끝까지
모두가 내 향길 맡고 취해 웃을 때까지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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