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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Nov 06. 2024

속초는 울산바위를 어쩔...?

여행 5일차 -1 @ 속초 울산바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은 대부분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체크아웃하고, 집으로 가면 끝. 

짐 싸는 것도 고민할 것 없이 모조리 때려 넣으면 끝.

선택지가 없으면 고민도 없고, 고민 없으면 심플하다.

무엇이든 이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순간. 


그날도 씩씩하게 “감사합니다” 체크아웃을 하고, 

좋은 여행 마무리의 상징처럼 숙소를 향해 

또또는 "빠빠이~"를 외쳤다. 그리고 출발. 


찌는 듯 더운 여름날의 하늘은 여전히 밝았다.

속초 시내를 빠져나가는 차 안에서 

‘게’ 요리를 파는 가게 이름이 화제에 올랐다.


"속초에 대게 가게가 엄청 많아, 그지?"


속초 시내를 새삼스럽게 보던 나의 한 마디에, 


"이름도 웃겨"


또또도 이미 자세히 보고 있었던 거 같았다. 

@ 속초 시장 한 가게 (자체 촬영)

"그래, 또또는 어떤 거 봤어?"


엄마도 뭔가 하나 기억에 남은 게 있었나 보다. 


"먹고 가’ 게’ ㅋㅋㅋ" 


"오 재미있네. 당신은?"

 

"‘게’ 싸다구~!!"

 

"ㅎㅎㅎ 웃긴다. 또 본 거 없어?"

 

"'대’ 게하라 도 있었어."


역시나 또또는 '먹고 가게'와 '대게 하라'를, 

와이프는 '게싸다구'를 기억하고 있었다. 

 

"옷! 아빠 그거 맘에 든다. 아빠의 원픽은 대게 하라!"

 

"ㅇㅇ '대게 하라'도 쪼아!"

 

"안 되면 되게 하라, 배고프면 대게 한 접시 하라! 

자신감 있어 ㅋㅋ"


"오호, 또또야, 아빠 말대로 하니까 있어 보이는데.. "


가게 이름도 네이밍이다. 

광고회사에서 하던 일 중 하나가 브랜드 네이밍이다.

브랜드 네이밍도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이지만, 

그 전문가들도 불현듯 떠오르고 안 잊히는 이름을 

아무리 해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름이 ‘대게 하라’!... 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고민하는 수밖에… 


어제 지나온 길의 배웅을 받으면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으헉!" 


운전하던 아내의 짧은 찌푸림. 


"또또야, 엄마 또 봤어 ㅠㅠ"


"뭐?" 


"차에 치여 죽은 동물 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잔혹함, 

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사체 때문이다. 


"으으~ 불쌍해. 뭐였어?" 


"몰라, 자세히 못 봤어."


문득 우리 집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초입에서 

내가 예전에 발견했던 육교가 생각나서 물었다. 


"또또야,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는 걸 뭐라 그래?"


"로드킬!"


"오~~ 그래서 동물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든 

육교 같은 게 있어… 이걸 뭐라..."


"알아! 생태육교! …

학교에서 다 배웠어. 아빤 날 뭘로 보고… "


또또가 아는지 모르는지 일부러 물어본, 

확인성 질문이라는 데 또또가 발끈했다.

몇 년 전 내게 꽤 인상적인 생태육교. 

나는 '생태육교' 네 글자를 배운 건 아니었지만, 

동물 로드킬을 막고, 동식물의 연속된 생태계가 

도로로 인해 흐름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군,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지?' 싶었던 것이었다.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사람의 편리 뿐 아니라 동물 보호에 대한 생각까지

들어있다는 점에서 '그래, 이게 맞지!" 싶었던,

누군지 몰라도 기특한 발상!

“동물이 지나가고 있어요”라는 현수막에 

'이게 뭔 소리야?' 의아해하며 배우게 된 반면, 

또또는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다 배워서 

너무나 당연해져 있어 보였다. 발끈하는 걸 보면... 

이러면, 나중엔 더 좋은 방안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우리 가족은 차 타면 스마트폰을 뒷좌석 중앙서랍에 

넣어두기로 약속했다. 눈 나빠지는 것을 막고, 

볼 수 있는 건 보고, 이 시간에 대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창 밖으로 속초의 마지막을 눈으로는 즐기고, 

대화로 꺼낼 수 있는 것들은 꺼내가며 가고 있었다. 


"또또야, 저기 저 바위가 뭐~게~? 

속초만 오면 우리가 맨날 보는 바위…"


"몰라." 


"엇? 몰라? 아니, 몇 번을 봤는데…"


"아니, 모를 수도 있지…"


내가 가리킨 곳에는 설악산을 가득 채우다시피, 

감히 설악산 전체를 마치 병풍으로 쓰겠다는 듯 

주인공 행세를 하는 바위산이 있었다. 이름에 얽힌 

유래를 이야기로 풀어서 설명한 적도 여러 번, 

하지만 이름을 모른다니, 또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또또야, 그 노래 알지? 

'�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하구나~.� 

금강산 알지?"


"우와, 아빠, 그 노래를 외워? 

그거 외우는 사람 처음 봤어..."


"학교에서 많이 부르지 않아? 음...  

암튼, 그 금강산이 너무 예쁘대, 

옛날에 그 금강산에서 세상 가장 이쁜 바위들이 

다 모인다는 거야, 그게 소문이 쫘악 났어, 

그랬더니 울산에 있던 바위가

'내가 빠질 수 없지, 나도 금강산으로 가겠다' 해서

울산에서 금강산으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대.  

육중한 몸을 이끌고 한발 한발 쿵 쿵 가다가 

'우와, 여기 너무 이쁜데, 여기가 금강산인가 보다' 

하면서 딱! 먼저 자리 잡고 앉았대. 그런데...

어라? 알고 보니 거기가 여기 설악산이었던 거지. 

설악산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거야, 

그래서 울산에서 올라온 바위, 이름이 '울산바위'"


전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딸아이도 들어본 눈치였다. 

나도 오래전 전래동화책을 기억에 꺼내놓는 지라 

헛갈리지만, 최대한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지 않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또또야, 울산 바위, 이제 기억할 수 있겠지? 


"응"


"근데, 또또야... 여기는 속초인데, 

울산 바위가 유명하면 괜히 억울하지 않을까?" 


"뭐가?" 


"아니, 속초바위라고 했으면 속초에 더 좋을 텐데, 

울산바위라고 하니까 울산만 띄워주잖아, 

이런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런가?" 


"엇 그럼, 

또또야, 만약에 또또가 속초시장이야. 

근데 속초시민들이 와서 이야기하는 거야, 

'시장님! 우리 속초를 더 잘 알리는 게 좋은데, 

굳이 울산바위를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 바위 이름을 이제 속초 바위로 바꿔서 

우리 지역 이름을 더 알리도록 합시다.' 그랬더니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해, 

'아닙니다! 이미 사람들이 울산바위로 알고 있습니다.

속초 바위로 바꾼다고 하면 웃음거리만 됩니다. 

그대로 두셔야 합니다…' 


또또 속초시장 앞에서 두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견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그럼 또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여행 마지막 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질문. 

여행 내내 질문하다 보니 더 실감 나게 설명하는 질문, 

하지만, 반복되다 보니 싫다고 거부할 수도 있는 질문. 

그런데, 딸아이가 곰곰이 생각을 해준다, 고맙게도…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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