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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Nov 07. 2024

인간이 Why Me?라고 물으면...

여행 5일차 -2 @ 복귀 

차 에서 울산바위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할 거였으면

어제라도 설악산을 돌아봤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빠, 사람들이 속초에 와서 울산바위를 본다고, 

속초를 안 보고 울산에 가?"


"아니지..."


"아니지? 속초에 울산바위를 봐도 속초 여행하니까

속초에 울산바위 보러 오라고 더 해도 되잖아?

그러면 울산 사람들도 오고...ㅋㅋㅋ  

그리고 갑자기 이름 바꾸면 너무 뻔해서 재미없을 

거 같은데... 속초에 속초바위는... 으에에~~..."


오호! 뻔한 결론처럼 들렸지만,

광고쟁이 아빠 눈에 딱 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속초에서 '울산바위'를 벗겨내는 것보다 

오히려 울산바위의 높은 인지도를 자산으로 삼아 

속초 여행의 재미를 더 확장시킬 수 있는... 


"오올~~, 또또야! 아빠 생각보다 더 멋진데... 

또또 말처럼 울산이랑 엮으면 진짜 더 좋겠네.

그런 거지, 

또또 속초시장님이 울산에 감사장을 보내는 거야. 

'우리 속초에 울산의 명물 울산바위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재미로.. 그러면서, 

'감사의 표시로 울산분들을 초청합니다' 뭐 이렇게...

그다음에 속초와 울산 자매결연도 맺고, 

울산에다가 속초 울산바위 사진도 크게 걸어두고...

뭐, 암튼 그걸 이용하는 게 더 좋겠네."

 

"헤헤~" 


딸도 알 것이다, 아빠가 자기 아이디어를 더 크게 

부풀려주고 있다는 것을... 만족해하는 웃음 ㅋㅋㅋ

하지만, 아빠도 안다, 아이디어를 키워주면 

다음에는 자기 생각을 더 자신감 있게 내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을... 광고회사에서 

선후배들과 일을 하면서 몸소 체험한 것이기에...

그래서 나는 이 노력을 그칠 생각이 없다. 


부녀사이의 서로 띄워주기 노력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재미를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노력을 보기 힘들다. 

국보, 보물, 유적 모두 중요하지만, 

그 앞에 아무도 안 읽는 표지판, 역사 해설가 타임...

어디 가든 똑같은 기념품, 이런 건 이제 재미없지 않나

새로운 재미는 새로운 시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스토리에서도 나온다. 

나의 평소 생각에 또또가 스파크를 일으켜주었다.

그런 면에서 나와 또또사이 또 한 번의 '콤비 플레이'


아쉽게도, 그 이후 차 안의 대화는 잦아들었다. 

와이프와 또또가 곤히 잠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드라이브를 하는 온전한 나의 시간. 


강원도의 높은 산자락 사이로 뻥~ 뚫려있는 도로,

그 사이를 달리는 시간이 고요했다. 여유를 느꼈다. 

날씨는 여전히 한여름, 하지만 마음만은 봄날 한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나지막이 흥얼거리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튕기기도 하고, 스스로 이런 

마음에 젖어보는 것이 정말 오래간만이라는 생각. 


여행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여행 내내 우리 가족에게 보상을 주고받은 뿌듯함.

지난 1년이 우리에게는 유례없는 위기였으니까. 


작년 가을, 갑작스러운 장모님의 골절 사고, 

그게 나을 때쯤 더 크게 몰아친 장인어른의 뇌출혈.

장인어른 생사의 기로를 맞닥뜨리게 된 위기 상황. 

우리 집으로 모셔온 후 시작된 온 가족의 열혈 투병.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실 기간 동안 

온 집안은 한숨과 눈물과 걱정으로 가득 찼고, 

그동안은 웃기조차 죄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들. 

 

왜 이런 일이.... 왜 우리 가족에게?

왜 우리야? 왜? 왜? 


왠지 억울하고 한스러운 토로가 가득 찼다. 

그때, 이런 문장을 발견했었다. 


인간이 Why me?라고 물으면

신은 Why Not?이라고 답한다. 


헉!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문장.

한탄하던 말문을 꽉 틀어 막아버리는 문장. 

대꾸할 생각조차 얼어버리게 만드는 문장. 


신이 정말 저렇게 가혹하게 답을 한다면, 

세상 그렇게 야속하고 얄밉고 패버리고 싶을 텐데, 

이건 정말 누구도 예방하거나 대비할 수 없는 

인간 생사의 문제라서 속절없이 무릎 꿇을 수밖에... 

그래서 무기력해졌다. 어리벙벙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다음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만들었다. 

장인 치료를 위해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병원, 의사, 간호사, 치료사, 간병인을 대할 때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과 할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위기 앞에서 가족들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함께 이겨내는 것. 그걸 딸에게 보여주는 것. 

그래서 장인, 장모, 와이프, 딸을 대할 때

각각에 맞춰 나는 어떤 스탠스여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 측면에서 저 문장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나를 정신 차리게, 다시 일어서게 해 주었다. 


그리고 1년간 여러 번 되뇌었던 또 하나의 문장.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수술 환자의 보호자 대기 벤치에 앉아서 

세상 무너질 듯 앉아있는 와이프에게, 

집에만 들어오면 방문 꼭 닫고 

딸 사위 안 들리게 숨죽여 우시던 장모님에게, 

낯선 분위기에서 정말 어쩔 줄 몰라서 

머릿속에서 수많은 말을 고르던 딸에게... 

그리고 수많은 순간순간마다 나 스스로에게... 

모두가 아는 말이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고,

너무 직관적이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던 문장. 


여름의 한낮, 강원도 산길을 관통해 가며 

지난 1년의 기억을 관통하던 그때쯤 또또가 깼다. 


"또또, 깼어?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괜찮아."


"또또야, 이 말 기억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어딘데?"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 던진 나의 말에, 

현실을 깨워주는 답변을 해주었다. 

또또가 잠에서 깨어 현실의 주변을 둘러보듯.

허탈하게 맥이 탁 풀리며 웃음이 나왔다.  


"ㅎㅎㅎㅎ 아니, 지금 운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예전에 해준 말 있잖아. 

김연아가 좌우명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고..."


"ㅇㅇ"


"그게 무슨 뜻이라 그랬지?"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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