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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Nov 08. 2024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

여행 5일차 -3 @복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문장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서 

딸 또또에게 설명해 준 적이 있지만, 또또의 답은...


"몰라..."


"ㅎㅎㅎ 그래 좀 더 자, 또또야..."


ㅎㅎㅎ 이번 여행 처음으로 시큰둥한 대답...

그래, 아직 잠에 '취해' 있으니... 


또또는 잠에 '취해'있어서 다시 설명을 못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저 문장은 '취하지 마라"였다.

지금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에 '취하지 마라'

고난에 취해 감상에 젖지 말고 지나가도록 버텨라. 

지금 아무리 환호받고 칭찬받아도 '취하지 마라'

성공에 취해 자만에 젖지 말고 지나가도록 숙여라.

그래서 힘들어도, 기뻐도, 내 갈 길을 계속 가라. 

나에게는 이런 해석이었기에, 내 평정심을 지키며 

이 시간이 지나갈 수 있도록, 내 일을 하고자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이 통해서였을까, 정말 이 또한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위기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끝이 없을 거 같았던, 자칫 그 끝이 너무 힘들뻔한 

그 터널이 이제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끝내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을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그 길을 둘러싼 강원도의 산은 높고 짙었다. 

그 옆 가파른 골짜기는 너무 깊고 어두웠다. 

햇빛은 머리 위에서 계속 내려쬐고 있지만,

산 속과 골짜기 속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들어있던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영역, 

그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역.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문득 이 문장이 떠올랐다. 

저렇게 높은 산 사이에 높은 만큼 깊은 골. 


'그래, 산이 높으니 골이 깊을 수밖에...' 


하지만, 반대로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럼, 깊은 골을 지나면 

다시 높은 산을 오를 수 있겠지....

이제 높은 산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겠지...'


그 생각에 안도했다. 

갑자기 닥친 일은 일상을 비정상으로 만들었다.

그 위기를 지나 다시 정상적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그럼 이제 우리도 예전처럼, 다른 가족들처럼 

이 정상적인 일상을 좀 더 좋은 '이상'으로 만들 

꿈을 꿔보고, 노력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장인어른은 지루한 재활을 거쳐야 하고, 

우리는 그 뒷바라지를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그 부작용이 뇌에, 몸에, 말에, 행동에 남아있을까 

걱정해야 하고, 회복시키려고 애를 쓸 것이다.

하지만 일상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뭐…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을 또 지내게 될 것이다. 

내일부터 또또는 체육 댄스 수행평가를 이겨내고,

와이프는 회사 빌런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나 역시 퇴사 후 FIRE족 분투기를 이겨낼 것이다. 

하지만 일상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뭐…  


그 일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바라게 될 것이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귀갓길이 

우리 가족에게 펼쳐진 미래이길 바라는 것처럼...

불행이 그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일상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뭐…  


이 정도를 그저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의 마음에 근육이 붙었고, 

우리 가족의 믿음에 힘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픔을 함께 뒹굴며 겪어온 가족 덕분이다.

위기의 시간을 무사히 버텨준 와이프 덕분이다.  

기특하게 견뎌내 준 딸아이가 덕분이다. 

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대화를 많이 하고 

지금도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덕분이다. 

사랑하는 가족들 덕분이다. 


"하아...."


한숨이자 날숨을 토하듯 쏟아내며 

마음의 큰 짐 하나 내려놓았다.

 

차가 경기도에 접어들어서야 

와이프와 딸은 잠에서 깨어났다. 

하필 휴게소가 다 지나간 다음에 깨는 바람에 

양평 즈음에서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가야 했다. 

차 안에서 난리가 벌어진 또 한 번의 시트콤 ㅋㅋ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여행 아닌 일상의 범주로 묶기로 했다. 

이미 가족들 웃음소리에 찌든 때가 많이 빠졌으니..


'그래, 이 정도면 뭐 괜찮은 일상이지.'


고통스러운 경험이 인생의 물음표를 던졌지만, 

우리는 '가족'의 이름으로 느낌표로 대답했다. 

번 여행이 그 대답의 마침표가 될 것이다. 


SONG : Butterfly 

– 노래 : 러브홀릭스 (전미도/ 미도와 파라솔 버전)

작사 : 강현민, 이재학/ 작곡 : 이재학/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누에 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나는 알아 내겐 보여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꺾여버린 꽃처럼 아플 때도

쓰러진 나무처럼 초라해도

너를 믿어 나를 믿어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어


심장의 소릴 느껴봐

힘겹게 접어놓았던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벅차도록 아름다운 그대여

이 세상이 차갑게 등을 보여도

눈부신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ah

@ 미도와 파라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이번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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