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아모레 퍼시픽 - 려 루트젠 ]
지난 여름,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드넓은 청주호 주변 숲 속 리조트에 자리 잡고,
여유 있는 드라이브, 한여름밤 바비큐가 인상적인…
하지만 더웠다, 무척 더웠다.
땀을 비 오듯 흘리던 중,
무심코 눈에 들어와 박힌 한 장면.
어머니의 정수리, 머리숱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들이 들러붙어
두피가 드러난 정수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 아!
이게 무슨 감정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철렁!
아. 우리 어머니 늙으셨구나…
하지만, 왠지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
다른 거라면, 왜 이러시냐? 운동이..., 식습관이...
잔소리가 시원찮을 판에, 입을 꾹 다물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모른 척하는 것이 아들 된 도리로서
정답이었다 싶었다.
여성 탈모…
남자와 여자가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성 탈모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였다.
나조차도 다발성 원형탈모로 한창 마음 고생할 때,
온 가족이 정수리를 들쳐보길래
짜증 났지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가족이고, 아들이고, 어머니 잘못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이게 부끄러울 일도 아닌데…
슬쩍 속으로만 걱정거리 하나 적어두었던 터였다.
그러던 여름날…
이런 광고를 만났다.
여자에겐 여자를 위한 탈모샴푸 편 (30초)
광고주: 아모레 퍼시픽/
만든 이 : BBDO 코리아/ 최현정 CD/ 이현지 감독
우선, 새롭고 용감하다.
2030 여성의 탈모 걱정이 많아진다지만,
아직 그 수가 대다수가 아닌 상황일 텐데,
TV 광고로 여성 탈모를 숨기려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서다.
사실 광고일을 해본 입장에서 보자면,
광고 품목 선정 자체가 놀랍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TV광고는
대중적으로 소비층이 넓은 제품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깃 볼륨이 작은 제품은
디지털 광고나, 할인/경품 이벤트가 고작이다.
게다가 해당 소비자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문제는 TV 광고로 다루지 않는다.
그런데, 이걸 대놓고 이렇게 TV광고를 했다?
용감하다.
그 용감함 덕분에 많은 것을 얻어가고 있다.
실제 탈모 걱정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얻고,
혁신적인 기술력의 이미지도 갖게 되고,
경쟁사 보다 선도자로 보이고 있다.
여성 탈모를 이렇게 정면으로 다룬 경우는
내게는 처음이다 보니 개척자처럼도 보인다.
타깃을 좁힌 만큼 메시지도 뾰족하다.
Copy )
가리지 마. 정수리까지 빈틈없이. 예쁘니까.
물러서지 마. 헤어라인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니까.
약해지지 마. 매일의 자극에. 가늘어진 머리카락에.
여자에겐 여자를 위한 탈모샴푸를. 려 루트 젠.
우리 어머니가 가리고, 물러서고, 약해지는
그 감정을 콕 집어준다.
그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쳐다본 듯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준다.
뾰족하다. 문제가 너무나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이게 뭐지? 찾아보고 싶은 검색욕구,
저거면 되려나? 한번 써보고 싶은 구매욕구가 생긴다.
어머니께 사주고 싶어 진다.
이 광고의 영리한 점이 또 하나 더 있다.
메시지는 탈모 증상을 다루지만,
영상은 탈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워너비 모델로 고급스럽게 보여준다.
뷰티 광고의 전형을 따른다.
이 샴푸를 집어든 나(=탈모 걱정 여성)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게 해 준다.
즉,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타깃들이
제품을 선택하기에 거부감을 줄였다.
메시지와 영상이 안 맞으면 이해가 어렵기 마련인데,
이 광고는 오히려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제 TV광고에서
여성 탈모를 정면으로 다루는 제품을 만난다는 건,
어머니의 탈모를 숨기지 않고
방법을 찾아보는 모습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거다.
어머니, 저기 보세요.
이제 다 이야기하는 건데요, 뭐
샴푸도 바꾸시고, 마사지도 하시면 되죠.
머플러로 가리고,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긁어모으지 않으셔도 돼요.
괜찮아요!!
본 광고의 인용이 불편하시다면,
누구든, 언제든 연락주세요. (출처: tvc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