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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l Sep 25. 2023

아이의 숙제노트에 깃든
외국인 어미의 사심

학습과 놀이는 왜 분리되는가?

내 계획은 이러했다. 딸아이의 입학과 동시에 아이의 학교 진도를 함께 따라간다면, 내 남은 생 동안 쏟아질 독일어들이 혹시라도 교양 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https://brunch.co.kr/@de3307841b584d7/1 


이의 숙제를 함께하는 데에는 독일어와의 악연을 만회하고자 하는 나의 이러한 이유도 있었지만, 나의 학습을 반강제적으로 돕게 될 아이가 타인을 가르치며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대충 안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막상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들면 말이 장황해져 내가 내 입으로 무엇을 떠들고 있는지 모르는 경험은 모두 있을 것이다. 지지 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 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 어떤 것을 알면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앎인데 만만치 않은 단계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이 외국인 어미를 가르쳐보지 않겠냐며 이곳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나의 슬픈 처지를 적당히 이용했다.


당신이 "아는 건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세욧"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다면 그건 백 프로 당신이 뭘 몰랐지만 자신이 뭘 몰랐는지 조차 몰라서 저지른 실수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앙! 몰랐어요."라는 이 똥 싸지른 인간들의 반응이 얼마나 무책임한 변명인지 안다. 차라리 "죄송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시면..."쪽이 더 개선의 여지가 있는 편이다. 나도 내가 싼 똥을 치웠던 나의 모든 동료들과 직장 상사들에게 여전히 죄송해하고 있다. 어설프지 않게 잘 배워야 함을 난 무척 늦게 깨달았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숙제를 함께하기로 하였고, 나는 현재 숫자세기와 알파벳 쓰기를 하고 있다. 자기 엄마가 덧뺄셈도 하고 알파벳 대소문자도 정확히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6살 아이는 진심으로 나에게 손가락으로 수 세는 법과 소문자 t를 쓰는 순서 등을 가르친다. 저녁 준비시간이 다가와 아이가 낸 문제를 후다닥 풀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날이면 아이는 내가 모든 문제를 정확하고도 빠르게 풀었다고 칭찬하며 특별히 별과 하트도 그려준다.


난 소문자 t를 가로획부터 긋는데 아이는 세로획부터 쓰는 게 맞다며 쓰는 순서를 번호로 그려주었다. 난 내 a도 맞다고 주장하였고 아이도 동의하였다.


 

숙제를 같이 하며 나는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묻는다. 예를 들면 수를 왜 5씩 묶어 세는 연습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물으면 아이는 고민 후 손가락이 5개라 그런 것이 아닐까라며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알파벳을 쓰는 순서는 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정해져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써보고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직접 알아간다.


물론, 썩 학습에 도움이 되거나 그럴싸한 답들이 있는 물음은 아니다. 나는 다만 아이가 기계적으로 숙제를 해 가는 패턴은 피하고 싶었다. 숙제를 단순히 답만 써 제출하는 노동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숙제 노트도 따로 한 권 준비하였다. 우리는 그 노트에 우선 그날 주어진 숙제를 간단하게 한 번 더 따라 그리거나 쓴다. 교과서나 숙제용 프린트에는 낙서를 할 수 없으니 우리는 그 노트에 숙제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마음껏 그리고, 쓰고, 색칠한다. 

 

8월 22일 알파벳 O의 대소문자를 연습. O와 모양이 비슷한 부활절 계란, 피자, 올리브 그리고 엄마 얼굴 등등을 그려놓았다. 도대체 난 요일을 왜 아직도 한자로 쓰는 걸까?



사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아이는 자신의 앞에 허락된 모든 종이에 마음대로 낙서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라는 곳에서 주어진 자신의 종이(교과서, 프린트물..)에는 빈 공간이 무척 많음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자신의 종이이지만 사회적 제재가 동반되어 아이 앞에 놓인 종이 앞에서 아이가 그 이유를 물었다. 학습과 놀이가 분리된 이유를 물은 것이었다. 학습의 집중도와 선생님의 편의 등등 장황한 대답들이 생각났지만 개운치 않았다. 답이 없는 또 하나의 질문이었다. 답은 없었지만 대안은 있었다. 학습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노트였다.


살면서 지나쳐간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에너지는 화수분에서 방출되는 듯했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아주 가끔 "어우 나도 그래."라고 받아치는 그들의 말속에서 겨우 소량 건져낼 수 있었다. 그들은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해나가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정중히 도움을 요청했다. 난 다음 생에 이렇게 태어나기로 하고 아직은 가능성이 있는 내 딸아이에게 이 슈퍼파워를 심어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앞으로의 세상에 무지하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세상을 살아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지만 역시 또 하나의 답이 없는 질문일 뿐이다. 그저 AI보다 뭐든 하나는 잘해야 네 밥벌이가 가능할 것이라는데 까지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천하무적 AI에게 없는 능력이 메타인지라던데 네가 스스로를 잘 알아가는 그 첫걸음이 이 숙제노트이기를 욕심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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