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by 반항녀

나는 그 자리에 앉아있다. 항상 똑같던 그 창밖을 보면서 앉아있다.

나는 창문을 통해 내게 쐬어지는 햇살을 온전히 느끼기 두렵다. 주말의 그 따뜻한 햇살이 피부에 닿고 그 닿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 두렵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멈추기 위해 세 알 삼킨다. 얼른 녹아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를 바라며 햇살을 아직은 느끼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 속을 얼린다. 감각은 아직 살아있고, 피는 내 핏줄 속을 요동친다. 마치 파도처럼.

조금만 더 기다려본다. 서서히 그 파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세 알이 담겨있던 봉투를 내가 앉아 있는 자리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그걸 보며 마지막 웃음을 짓는다. 이 웃음은 아직 내 것이다.


창 밖으로 익숙한 몸짓이 보인다. 잦아드는 떨림에 그 익숙한 몸짓을 내가 두려워하던 것인지 그리워하던 것인지 헷갈린다. 그 몸짓이 어느새 문을 열고 내 등 뒤로 왔다. 소름이 돋으려다 어느새 녹은 세 알이 나를 진정시킨다.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웃으며 내 옆 의자를 끌어 앉고 나를 본다. 모든 게 멈춰진 나는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내 속에 남은 공포와 경멸이 텅 비어 가는 자리를 이기지 못하고 새어 나온 찌꺼기다. 그것은 내 미소를 보고 행복해한다. 아니, 그것이 행복한 지 나는 느낄 수 없지만 그것이 그렇게 말한다. 나를 보니 행복하다고. 그러니 진작 여기 앉아있지 왜 그랬냐고. 너도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니 행복해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속이 텅 빈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 찌꺼기를 유지한다.


자리를 옮긴다. 그것과 함께 달린다. 어느새 달리고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것이 내뱉은 숨이 가득 찬 그곳에서 나도 숨을 쉬고 있다. 숨조차 멈춰버리고 싶지만 그 세알에게는 그런 능력은 없다. 그저 내 감각을 없애줄 뿐이다. 숨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텅 빈 내가 그렇게 앉아 있는데 생명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가방에 넣어두었던 날카로운 것을 손으로 만져본다. 그 날카로운 것을 꺼내들 힘이 없다. 그저 만져보며 무감각하다는 걸 다시 한번 인지한다.



나는 이 자리에 앉아있다. 창 밖을 보면서 그 순간의 나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다르다. 나는 무엇보다도 강해졌고, 그때 없애버렸던 내 속의 나를 이젠 없애지 못한다. 나는 내 속의 나와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함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아무래도 그것이 내뱉은 숨을, 어딘가에서 내뱉어 내가 마실지도 모르는 그 숨을 멎게 하고 싶다. 우리는 다짐한다. 그래, 할 수 있어. 그럼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 그것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 그것은 그저 악일 뿐이야. 세상에 절대악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악이야. 독이야. 악몽이야. 구토야.



그것 앞에서 아직 우리가 되기 전 너는 나를 해치려고 했다. 너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달려갔다. 날카로운 것을 찾아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것을 벌려 나를 해쳤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그 행동이 그것에게 악몽을 꾸게 한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숨 쉬는, 내가 눈을 뜨고 있는 순간들이 악몽이었다. 아니, 꿈이라고 할 수 없지. 나는 깨어 있었으니까. 나를 탓한다.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네가 생각할 땐 우리가 미쳤던가? 그것에게 우리가 못할 짓을 한 걸까? 그것이 왜 우리에게 큰 소리를 치는가.


그것은 나조차도 헷갈리게 나를 쓰레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들이 그것에게는 내가 한 일이 되었고 그것은 내가 한 ‘그 일’ 때문에 그것이, 그것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나의 비명과 울음은 그것에게 닿지 못한다. 그것은 내 그런 행동을 그저 그것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것은 나에게 계속 속삭인다. 그것만이 나를 고칠 수 있다고. 그것만이 나를 행복해지게 할 수 있다고. 그것 말고 다른 생명들은 다 나에게 해로운 것이라고. 나와 피로 연결된 자들도 모두 나를 해치려 하는 것이라고. 그 지옥에서 구해주겠다며 나에게 속삭인다. 시간이 갈수록 헷갈린다. 분명히 아는데 혼란스러움에 다시 혼란스럽다. 우리가 되기 전 내 속의 너조차도 혼란스럽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게 정말 행복이라면 어떡하지? 물음표가 진정되지 않는다. 그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마침표가 찍힐 틈 없이 그것은 속삭인다. 내가 그 속삭임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으면 그것은 나를 집어삼킨다. 공포 속으로 집어삼켜 그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학습시킨다. 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학습하는 생물이었다. 그래, 그냥 말을 들으면 편안해. 따뜻한 걸지도 몰라. 이게 행복일지도 몰라. 내 속의 너만 사라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네가 아니라고 하는 것들을 내가 받아들여야겠어. 미안해. 나는 네 목소리를 들을 힘이 없어. 내 귓가에 울리는 그것의 소리를 들어야겠어. 그걸 듣지 않으면 나는 다시 그 공포에 먹혀. 나는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아.


그것은 여리다. 그것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것이 처량해 보인다. 그것이 나에게 울부짖는 것은 그것이 행복하지 못한 시절,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원래 그런 게 아니다. 악한게 아니다. 약할 뿐이다. 그것은 나만 있으면 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나만 있으면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것은 이런 이야기를 다른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나야? 내가 그것의 구원자야? 안타까운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나에게만 주어진 거야? 그것이 나를 선택했고 어쩌면 그 선택이 기회인 거야?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한다.


나는 지금 햇살을 받으며, 햇살을 느끼며 그 자리에 앉아있다.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우리다. 우리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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