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어젯밤에 주문한 그릭요거트가 대문 앞에 와있다. 현관에서 그 박스를 뜯는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고 간다. 부엌에서 그릭요거트 뚜껑을 감싸고 있던 테이프를 가위로 자른다. 뚜껑을 연다. 비닐덮개가 또 있다. 비닐덮개를 벗긴다. 비닐덮개에 묻은 그릭요거트를 핥으려다 아직 물 한 모금을 안 마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손에 그릭요거트가 묻은 비닐덮개를 들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는다. 120ml. 유튜브에서 본 건강소식에서는 500ml를 마셔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일단 물 마시는 게 중요하니까.라고 생각하며 따뜻한 물 120ml를 마신다. 따뜻함이 목구멍을 따라 느껴진다. 그리고 여태 손에 들고 있던 그릭요거트가 묻은 비닐 덮개를 핥는다. 오랜만에 먹는 그릭요거트 맛있다. 요거트를 먹을 때 쇠숟가락은 쓰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항상 지킨다. 도자기로 만든 숟가락을 쓴다. 한 숟갈, 두 숟갈, 세 숟갈. 아침이라 적게 먹을까 했지만 참기 어렵다. 그리고 꿀을 얹는다. 섞는다. 달다. 맛있다. 그래. 아침에는 이렇게 먹고 끝내자. 했지만 어젯밤 먹고 싶었지만 참았던 불고기가 보인다. 엄마가 아침부터 해놓고 출근했다. 엄마의 성의가 있으니 이걸 어떻게 안 먹어. 하면서 그릭요거트를 먹은 그릇을 헹구고는 그 그릇에 불고기를 담는다. 당면도 담는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이 정도 먹는 건 괜찮겠지 하고 그만 펴려다가 어제 아빠는 두 끼를 불고기를 먹었고 그럼 나랑 동생이 이걸 다 먹어야 할 테니까 반은 먹어야겠네라고 생각하며 두 젓가락을 더 들어 그릇에 놓는다. 같이 요리된 버섯도 빼먹지 않고 먹는다. 맛있다. 불고기나 제육볶음을 먹을 때 종종 고기의 기름이 뭉쳐져 고기처럼 보이는 것을 먹고 우웩 하고 역함을 느낄 때가 있다. 고기가 나한테 엿먹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걸 어떻게 구분할까 생각하며 조심스레 으깨가며 고기를 집는다. 아 웩. 내가 먹던 그릇이니 그 그릇 한쪽 편에 속아서 씹어버린 기름 덩어리를 뱉는다. 고기가 확실한 큰 덩어리의 고기만 먹는다. 당면도 먹는다. 맛있다. 대충 다 먹고 싱크대로 가서 그릇을 씻는다. 고기 기름이 묻었으니 따뜻한 물을 튼다. 퐁퐁을 묻혀 닦고 씻고 건조대 위에 그릇을 비스듬히 세워둔다. 다 먹었으니 샤워를 한다. 요즘 따라 느끼는 건데 샴푸가 잘 씻기지 않는다. 왜지? 내 머리가 너무 상해서 그런가. 조금 더 빡빡 헹군다. 바디워시로 몸을 씻는다. 세수를 한다. 나는 샤워하는데 길어도 10분 밖에 안 걸리는데 30분 이상 샤워를 하는 사람들, 목욕이 아닌 샤워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씻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목욕탕에 가더라도 40분이 한계선인데. 신기하다. 씻고 나와서 젖은
머리를 잠시 수건으로 잡아둔다. 그리고 머리에 바르는 트린트먼트를 바른다. 트린트먼트 때문에 손에 기름기가 있다. 이 손으로 얼굴에 로션을 바르면 분명 여드름이 날 것만 같다. 손을 따뜻한 물로 씻는다. 손을 따뜻한 물로 씻을 때면 손이 빨리 늙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 그리고 옷을 입고 화장대로 가서 로션을 바른다. 따뜻한 손으로 로션을 바르면 모공이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른다. 그리고 하나만 바르면 뭔가 찝찝하니 크림도 발라준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정말 잘 안 마른다. 최근에 또 유튜브에서 ‘제니’의 머리숱이 많은 이유라고 하며 머리를 꼼꼼히 말린다는 영상을 봤다. 어휴.
정보가 많으니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애써 내가 원래 말리던 시간보다 30초 정도 더 말려준다. 어쨌든 일상보다 조금 더 했다. 옷을 입으러 옷방에 들어갔다. 살이 쪄서 매일 아침 옷 입는 게 고역이다. 내가 재작년에 입던 옷은, 특히 하의, 들어갈 생각조차 안 하고 어떤 옷을 입어도 아줌마 같다.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내가 살을 찌도록 둔 탓이 크다. 눈치를 보며 동생 옷을 집는다. 깔끔하지 못한 나는 동생 옷을 입고 종종 더럽혀 왔기 때문에 동생은 내가 본인의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생은 눈치 보는 나를 눈치채고는 불쌍하다며 자기 옷을 편하게 입으라고 말한다. 몰라. 대충 아무거나 조합해서 옷을 입고 나선다. 머리는 아직도 축축하다. 커피를 사서 마시고 싶다. 고민을 한다. 그래 어제는 사서 마시지 않았으니까 오늘 한잔쯤이야. 하며 커피를 사러 간다. 차를 갓길에 대고서 카페에 가서 아이스 카페라떼 한잔이요.라고 말한다. 여기 직원은 손이 정말 빠르다. 그리고 아침 출근길이라 그런
지 빨대도 직접 꽂아 주신다. 그런 세심한 배려에 감탄을 하며 카페라떼를 들고 다시 차에 탄다. 그리고 힙한 팝송을 튼다. 크게 튼다. 창문을 내린다. 내가 정말 쿨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입고 나온 옷이 작아 배가 쫄린다. 오늘 하루 이 옷을 입고 어떻게 회사에서 버틸지
걱정이 된다. 아는 팝송이 나오고 그 노래가 틀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폰 화면을 캡처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걸 올리면서도 의문이다.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듣고 나와 같이 상쾌한 기분을 느꼈으면 하고 바라는 건지 아니면 나는 이런 노래를 듣는 쿨한 사람이다를 알리고 싶은 건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회사에 도착한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출근가방을 메고 차에서 내린다. 차 겉이 더럽다. 차 내부도 솔직히 더럽다. 이번 주 언젠가 꼭 세차를 하겠다며 다짐을 하며 차를 잠근다. 근태기에 지문을 찍는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사무실에 앉았더니 아까 갑갑하다고 느꼈던 옷이 정말 미칠 듯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코까지 막혔다.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코가 항상 막혀있는 것 같은데 혹시 이건 사무실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일까. 숨도 막히고 옷도 끼고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