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손절함

by 반항녀


이 나이 먹고도 친구랑 싸울 줄 몰랐다.


5명으로 구성된 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다. 지역이 달라서 다 같이 자주는 못 만나고,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랑 더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은 유닛 같은 게 생겼다. 결도 비슷해서 종종 보는 게 좋았고,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그런데 멀리 있는 친구가 서운했던 모양이다. 안부를 주고받다가 문제가 생겼고, 그 친구가 단체 채팅방에 장문의 글을 남기고 방을 나가버렸다. 거기엔 나를 집어 공격하는 말도 있었고, 친구라는 게 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말들도 있었다.


법으로 다툼을 치른 경험이 있는 나는, 그때 이후로 싸움이 터지면 갑옷을 두른 듯한 기분이 든다. 평소엔 좋은 게 좋다며 살지만, 부딪히는 순간만큼은 할 말은 해야겠다는 사람으로 변한다. 참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한테 해로운 걸 뻔히 알게 된 이상 더는 참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제 친구가 아닌가, 아무튼. 이유를 물으며 내 할 말을 했다. 근데 그게 참 유치했다. 내가 유치한 만큼, 그 친구도 유치했다. 유치함에 유치함으로 맞받아치는 게 현타가 오긴 하는데, 그렇다고 맞고만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 친구는 내 연락 빈도랑 반응 때문에 서운했다고 했다. 아픈데 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냐, 왜 걱정해주지 않냐, 그게 친구 맞냐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2년간 법정 다툼으로 치료받으며 견딘 얘기를 읊었다. 똑같이 잔병치레하며 살아가는 얘기도 덧붙였다. 결국 아무 의미 없었다. 그 친구는 이미 많이 상해 있었고, 자기 스탠스를 굳힌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거울 치료를 해도 안 먹혔다. 마치 ‘진격의 거인’에서 전퇴의 거인처럼 알 속에 갇혀 있는 상태. 나는 그냥 벽에다 주먹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주먹질하는 게 유치한 거 맞다. 그런데 나라고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중학교 다닐 때 남자애들이 성질 못 이겨 벽에다 주먹질하곤 했는데, 다음날 깁스하고 오는 걸 보곤 했다. 나도 카톡으로 퍼부으면서 몸살이 날 것 같았다. 나이 먹고 싸우려니 에너지가 배로 들었다.


여파는 하루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친구란 뭘까. 서운함은 또 뭘까. 생각하게 된다.


성인이 된 뒤 나는 꽤 많은 사람을 정리했다. 회피형 인간이라 상대방은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기준은 명확했다. 집착, 무례, 언어적 부담. 내 정신에 무리가 간다 싶으면 피했다. 굳이 견뎌야 하나 싶은 마음. 빠른 손절 대상은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이다. “니는 백방 OO 할걸.” “니 이럴 줄 알았다.” 이런 식으로 나를 다 아는 듯 말하는 사람들. 본인은 얼마나 잘났길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어느새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아마 그들이 나를 정리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다. 눈치 못 채게 나를 정리해 줬다면 오히려 감사하다.


결국 결이 맞아야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거다. 이건 나이와 상관없는 얘기. 결이 안 맞으면 그냥 멀리 두면 된다. 내가 말하다 보니 친구 취향을 읊어버렸네.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부담을 주지 않는 존재다. 만나면 좋고, 편하면 된다. 애써 만나야 하고 애써 연락해야 하는 관계가 오래갈 수 있을까? 결국 한쪽이 지치고, 오래 못 간다. 부담 없는 사이, 그게 제일 좋다.


서운함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 친구가 말한 서운함은 전혀 납득이 안 됐다. 나는 애초에 그 친구에게 기대한 게 없었다. 그래서 연락이 잘 안 돼도 괜찮았고, 만나면 반가웠다. 그런데 그 친구는 챙김을 원했다. 챙김을 당하는 건 이해되지만, 챙김을 요구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욕망이다. 어른이라면 이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친구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큰 게 문제였다. 결국 그 환상이 깨지면서 친구를 잃은 거다.


물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서운함도 있다. 나에게 서운해한다는 게, 그만큼 내가 큰 존재라는 의미일 때. 그땐 오히려 고맙다. 사과하고 반성할 수도 있다. 그건 그 친구와 결이 잘 맞고, 잃고 싶지 않을 때.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서운함을 무기로 삼는 건 결국 불균형을 낳고 다툼으로 간다.


결국 사람을 낙원으로 삼으면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작년에 결혼식 축의금으로 냈던 돈을 돌려받은 거다. 손절 메시지 끝에 “축의금 돌려주겠다”라고 적혀 있었고, 나도 분노의 메시지를 보내며 “그럼 나중에 결혼식 때 연락할 일 없을 것 같으니 지금 돌려줘라”라고 했다. 바로 카카오페이로 25만 원이 들어왔다. 이 쿨함, 마음에 들긴 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씁쓸하다. 돈으로 관계가 정리된 것 같아 현타가 왔다. 그래도 억울함과 분노가 풀리지 않았으니, 돈이라도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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