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다.
친구와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게 되었다.
네덜란드 와서 주로 혼자 다니다 지우랑 나서니, 예전에 어디선가 동양인들끼리 모여 다니면 인종차별을 당한다거나 험한 꼴을 볼 수도 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괜히 나 때문에 지우가 욕이라도 먹을까봐,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쩜 혼자 다닐 때보다 둘이서 다닐 때 더 긴장이 되는지…
귀는 잔뜩 예민해지고,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지우와의 대화에도 집중이 안 되고, 네덜란드 그 자체가 너무 두려워졌다.
앞에 오는 저 키 큰 네덜란드 학생들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 하는 말을 하지는 않을까,
어쩌다 나란히 걷게 된 멋진 네덜란드 언니들이 “칭챙총” 하지나 않을까 쪼리고.
그렇게 걷다가 우리의 목적지인 마라탕 집에 도착했다.
마라탕 집에 들어서 익숙하게(?) 야채와 재료들을 담고 마라샹궈를 주문했다.
앉아서 지우에게 오는 길에 무서웠다고 얘기하니, 지우는 신경 쓰지 말라며 웃었다.
그러다 음식이 나오고, 먹기 시작했다.
눈 녹듯이, 아니 마라샹궈가 사라지듯 빠르게 사라진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나는 그저 만들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들러 30유로를 140유로로 만들었다.
우하하하.. 도파민이 폭발했다.
이렇게 두려움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똑같은 배경에 모르는 사람들인데, 무서워하다 정신 팔 일이 생기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즐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지우와 맥주 한 잔씩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울리는 초인종.
놀란 우리 둘은 모니터를 봤다.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우는 가끔 여기 애들이 초인종을 누르고 튄다고 했다. 벨튀를 한다는 것.
그렇게 안심하려는 찰나, 초인종이 또 울렸다.
이번엔 우리 둘 다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빼꼼히 보이는 여성의 뒷모습. 그리고 사라졌다.
연속 두 번이라…
나는 이때부터 생각했다. “동양인 고 백 홈!!” 인가.
술도 약간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지우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해버렸다.
머릿속엔 총까지 그려졌다. 웃기지만 그땐 진짜 무서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우가 건조기를 돌리고 있었고, 그에 대한 경고(?) 신호였던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런 뜻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고 이겨낼 수 없는 잠을 자고, 아침이 되니 걱정은 어디로 갔나.
아주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젯밤과 같은 두려움은 사그라들어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니, 무얼 하든 괜히 먼저 쪼그라들면 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할 수도 있는 인종차별이지만, 당하지도 않았는데 겁부터 먹고 저녁의 네덜란드 시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여전히 쫄아서 걷던 그 길 위에서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뭘 하든, 쫄지 말고 당당하게.
그게 어제의 교훈.
뭐 어때!
사실 또 한편으로는, ‘동양인 + 여성’ 약체 조합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공포를 느껴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어쩔 수 없는 공포라고도 생각한 건 사실이다.
그것도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