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문학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선보인 ‘걸리버 여행기’에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속 걸리버의 시점에서 본 소인의 크기는 약 6인치inch(약 15cm)로 표현이 되어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중 하나인 <앤트맨>의 주인공은 크기를 이용하여 적들과 싸우는 히어로이다. 핌 입자라는 가상의 물질을 이용, 원자의 핵과 전자 사이의 공간을 변화시켜 몸을 매우 크게 만들거나 매우 작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앤트맨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몸의 크기가 개미만큼 작아져 개미와 함께 싸우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 무언가를 비유할 때 ‘개미만 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그 작은 개미의 크기는 작은 종의 경우 대략 1mm(밀리 미터) 정도이다.
우리는 반도체 크기를 논할 때 흔히 나노 공정, 나노의 세계라고 얘기한다. 반도체 기사를 보다 보면 ‘3nm(나노미터) 공정을 활용한 제품을 양산한다.’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렇듯 이 산업에서 쓰이는 기본 단위는 나노nano에서 시작한다. 나노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nanos에서 유래되었다. 이게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감을 잡기 위해서 단위부터 알아야 한다. 우선 인간의 머리카락 굵기는 약 0.1mm = 100um(마이크로미터 : 백만분의 1미터)로 개미의 1/10 정도에 해당한다. 인간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크기이다.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략 0.1um = 100nm(나노미터 : 십억 분의 1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1/100 정도가 된다. 이 정도가 되어야 나노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싸운 항체는 약 10nm 정도가 되고, 인간의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의 굵기는 약 2nm 정도가 된다. 3nm 공정을 활용한 반도체 제품은 회로 설계도를 그릴 때 가장 얇은 붓의 굵기가 3nm라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으로 따지면 도면을 그릴 때 문의 굵기가, 혹은 벽의 굵기가 3 나노라는 의미이다. 실리콘 원자핵의 크기가 0.2nm임을 감안한다면 반도체 공정은 이미 극한의 물리적 한계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m(meter, 미터)
1cm(centi meter, 센티미터) = 백분의 1m
1mm(milli meter, 밀리미터) = 천분의 1m
1um(micro meter, 마이크로미터) = 백만분의 1m
1nm(nano meter, 나노미터) = 십억 분의 1m
1Å(anstrong, 옹스트롱) = 백억분의 1m
모든 제조업에는 허용 오차범위가 있다. 건축에서는 벽체 두께의 3% 정도를 허용 오차범위가 법으로 되어있는데 예를 들어 벽의 두께를 1m로 설계를 했다면 3cm 정도가 오차범위인 것이다. 자동차, 철강 등등 우리가 흔히 아는 제조업의 경우 적절한 오차범위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반도체도 마찬가지이다. 10nm 공정의 경우 3% 의 오차범위는 0.3nm = 3Å(옹스트롱 : 백억분의 1미터)로 매 순간 초 고난도의 공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스몰 마인드
신입사원 때 첫 회의를 들어갔을 때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당시 담당하던 공정이 문제가 발생하여 타겟Target 대비 20nm 정도 다르게 공정이 되어 분위기가 매우 심각했다. 나의 사수였던 선임 엔지니어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현재 문제에 대하여 팀원 전체에게 이 문제를 공유하였고, 이를 들은 책임 엔지니어들은 억장이 내려가는 한숨을 쉬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해결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부서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여 이를 만회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신입사원인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때 고작 20nm라는 작은 단위가 벗어난 것을 가지고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이해도 안 되었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는 웃음이 났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20이 아닌 0.2nm만 잘못되어도 매우 심각한 불량이 나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런 일이 동일하게 발생하면 내 얼굴은 사색이 되고 0.2nm씩이나 잘못되었다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치면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반도체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반도체 하는 사람들은 ‘스몰 마인드’가 된다고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