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니 Jun 18. 2024

작은 건축

반도체 인문학



건축은 인류가 살아가는데 생명 유지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체이다. 공간을 정의하고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구축을 하는 공학의 집합체이다. 고대 건축은 수많은 인력과 자원이 동원되어야 했기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국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막강한 자본과 기술, 인력이 동원이 되어야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할 수 있다. 이렇듯 건축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탄생하는 하나의 공학 예술품이다. 건축주가 원하는 용도를 위해 건축 설계자에게 의뢰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만들지 도면을 그리고, 설계자는 도면을 가지고 시공자를 찾아가 자신이 그린 도면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 논의를 한 후 시공자가 공사를 진행한다. 시공을 위하여 갖가지 재료가 사용되며 긴 시간이 소모된다. 시공이 완료된 건축은 어떠한 기후나 환경에도 잘 견딜 수 있어야 하며 내부의 공간에서는 건축주가 원하는 기능이 잘 수행되어야 한다. 거대한 구조체를 만드는 건축 사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명제는 바로 중력을 이겨야 한다는 점이다. 수십 미터의 구조체를 세울 때 중력을 이겨 안전한 상태로 수십 혹은 수백 년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2019년 삼성전자 신규 반도체라인 건설 현장 (Bloomberg)


구조체를 만드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반도체는 건축과 매우 흡사하다.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아주 작은 사이즈의 구조체를 만들기 위해 반도체 설계업체는 도면을 그린다. 설계 업체는 도면을 가지고 반도체를 제작할 수 있는 공장을 찾아가 자신이 그린 도면을 실제로 제작할 수 있을지 논의한 후 공장장은 구조물을 만들기 위한 공정을 시작한다. 공정을 위하여 갖가지 재료가 사용되며 여러 가지 공정을 거쳐 긴 시간이 소모된다. 공정이 완료된 반도체는 어떠한 외부 날씨나 환경에도 잘 견딜 수 있어야 하며 고객이 원하는 기능이 잘 수행되어야 한다. 아주 작은 구조체를 만드는 반도체 사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명제는 바로 물리적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 나노미터nanometer (십억 분의 1미터)의 매우 작은 구조체를 정확한 도면을 구현하기 위해 초고난이도의 공학이 필요되며, 안정된 상태로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Intel이 발표한 7nm 공정 (Intel)


이렇듯 건축은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가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회사가 존재한다. (큰 규모의 회사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는 업체도 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업체와 반도체를 제조하는 제조업체,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업체로 구분이 된다.

반도체 공장은 흔히 "FAB, 팹"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만들다, 건축하다' 의미를 가진 라틴어인 fabricatus에서 유래된 '제조, 건설'의 뜻을 가진 Fabrication의 약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이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팹이 없다는 의미인 "Fab-less, 팹리스"라고 부른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애플Apple, 통신의 대명사 퀄컴Qualcomm, 그래픽 카드의 엔비디아Nvida와 같은 업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반도체 공장만 가지고 있고 설계도면을 받아 주문 형식으로 제작만 하는 위탁 업체를 "Foundry, 파운드리"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 fundere에서 파생된 '녹이고 주조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fondre에서 비롯된 주조공장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1980년대 이후 반도체 업계에 사용되며 근래에는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Foundry 업체의 대명사는 대만 경제의 기둥이자 근간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가 있다.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업체는 종합반도체회사 이른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로 대표적으로 인텔Intel과 삼성전자Samsung가 있다.


건축을 보고 경제력과 기술력을
판단할 수 있다.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구조체를 만듦에 있어서 건축과 반도체는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그 크기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매우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 압도적으로 큰 사이즈의 건축물은 볼 때에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경외심을 느낀다. 고대 로마는 콜로세움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권력을 과시하고 이를 본 다른 왕국들은 그 크기를 보고 로마가 가진 군사력과 기술력이 가늠이 되니 감히 전쟁을 벌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와 같은 마천루를 보면 그 나라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이치와 다.


현대 시대에는 반도체를 얼마나 작고 정교하게 만드느냐가 그 국가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으며, 더욱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 때마다 그 국가의 기술력이 올라갔다고 판단하니 건축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멋진 모습의 건축물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에게 사랑을 는다. 하지만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건축인 반도체는 물리적 한계를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또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지지 하는 점이 엔지니어로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작은 건축 또한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혼과 노력이 담긴 하나의 예술품이다.




이전 01화 인류의 축복, 실리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