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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n 18. 2024

인류의 축복, 실리콘

반도체 인문학



인류 역사에서 불의 발견은 매우 중요하다. 어두움을 극복하고, 날씨에 대응할 수 있었으며, 식량의 폭을 넓혀주었고, 때로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불은 인류의 생존율을 극대화하여 지구상에서 그 어떠한 생명체보다 번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인류는 철을 대량생산하며 2차 산업 혁명을 이루어 냈다. 더 높은 건축물을 지어 인구 밀도를 증가시키고, 자동차를 만들어 이동속도의 한계를 극복하며 생태계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전 세계를 연결하고, 인간의 뇌를 뛰어넘는 정보 저장과 연산이 가능하며 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생태계 최강자를 넘어 이제는 ‘신인류’의 지경에 도달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Semiconductor의 발명 때문이다.


반도체는 말 그대로 반半만 도체(전기가 통하는 물질)인 물질이고 영어 또한 Semi(반, 절반, 부분적인의 라틴어) – conductor(도체) 로 전기가 반만 통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전기를 원할 때만 흐르도록 혹은 흐르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전기적 신호(흐르다 or 안 흐르다)를 가지고 우리는 ‘0’과 ‘1’로 이루어진 컴퓨터 연산을 할 수 있다. 도체와 부도체(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원자와 전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element는 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존재하는 전자는 8개가 될 때 물질은 옥텟 규칙octet rule에 의해 안정적이다. 원들이 서로 결합하여 분자라는 단위에서 안정성을 찾게 되는데 전자 8개의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전자 4개의 원소들이 필요하다. 4개의 전자를 가진 원소가 서로의 전자를 공유해 결합하는 이른바 공유 결합으로 전자 8개를 만들어 물질은 평형 상태를 이룬다. (즉, 전류가 통하지 않는다.) 반도체는 이러한 상태에서 전자를 인위적으로 하나 넣거나 빼는 엔지니어링을 통해 평형 상태를 망가뜨려 전류가 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위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반도체에 적합한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아래와 같은 조건이 필요했다.

- 최외각 전자가 4개인 물질인가?
- 인류가 가진 기술로 적절하게 가공할 수 있는가?
-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전자기술의 대역대로 동작시킬 수 있는가?
- 지속적인 물질의 공급으로 산업성을 가질 수 있는가?


위의 질문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최외각 전자가 4개인 물질인가?

학창 시절 한 번쯤은 봤었던 주기율표를 살펴보자. 전자가 4개를 가지는 원소는 주기율표 14족에 위치한 탄소족 원소들이다. 이 중 C, Si, Ge는 대표적이며 가장 평형 상태가 뛰어난 물질들이다. 탄소Carbon는 비금속 원소로 사용하기 매우 어려웠고, 실리콘Silicon과 저마늄Germanium이 그 후보였다.


2. 인류가 가진 기술로 적절하게 가공할 수 있는가?

실리콘은 1800년대부터 전기 합성으로 얻어낼 수 있는 물질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이크로파 레이더의 검출 결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순도의 저마늄과 실리콘 결정을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3.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전자기술의 대역대로 동작시킬 수 있는가?

실리콘의 밴드갭Bandgap 은 1.12eV, 저마늄은 0.67eV로 둘 다 인류가 가진 전기전자 기술로 충분히 동작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Bandgap에 대한 내용은 차후 다루어 보겠다.)


4. 지속적인 물질의 공급으로 산업성을 가질 수 있는가?

실리콘은 지구의 28% 정도로 산소 다음인 2번째로 많이 존재하며 우주에서는 질량 기준으로 8번째로 많은 원소이다. 모래 등 규산염 광물로 전 세계 대부분 존재하여 고갈될 염려가 없고 쉽게 수급할 수 있어 산업성이 매우 좋았다. 저마늄은 지각에서 0.00016% 뿐만 존재하기에 여기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실리콘 광석의 모습 (SK siltron)


인류의 축복, 실리콘

건축에서는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이 고층 빌딩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재료의 혁신이다. 건물에 쓰이는 재료는 날씨의 영향, 즉 겨울과 여름이 반복될 때 재료가 수축과 팽창을 고려해야 하는데, 철근과 콘크리트는 열팽창계수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하여 2가지의 물질이 동일하게 수축, 팽창이 이루어져 균열 걱정 없이 고층으로 증축할 수 있었다. 건축계에서는 이를 신이 내린 축복의 물질이라고 얘기한다.


마찬가지로 전기적 평형을 가지기 위해 4가지 최외각 전자를 가지면서 인류가 가진 기술력으로 이 평형을 깨뜨릴 수 있고, 지각 위에 어지간하면 존재하기 때문에 고갈에 대한 염려도 없는 물질은 딱 하나, 바로 실리콘뿐이었다. 마치 인류가 반도체라는 요리를 하기 위해서 수십억 년 동안 지구가 준비해 놓은 그야말로 최적의 원재료인 것이다. 실리콘은 인류에게 축복의 물질이다. 인류는 모래 위의 문명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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