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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꽃물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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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Aug 17. 2024

마음에 생긴 구멍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마음에 생긴 구멍     


  북한산 둘레길은 방금 이슬이 닦아 준 듯 말간 초록 잎새들이 햇살 아래서 반짝거리며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냈다. 여러 종의 고목과 어린나무들도 어우러져 있어 깊은 숲 속 같은 느낌에 기분 좋은 산책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파란색을 칠한 낮은 슬레이트 집을 보았다.

  그 집 담벼락 줄에 걸린 앙증맞은 빨래집게가 양말 한 짝씩 꽉 물고 달랑달랑 달려 있다. 하양과 검정이 사이사이 섞여 줄을 선 모습이 마치 전깃줄에 앉은 제비들 같았다. 귀한 풍경에 사진을 찍고 세어 보니 무려 열여섯 켤레, 서른두 짝이다. 파란 페인트를 칠한 지붕과 맞닿은 회색 벽이 담장이 되어 버린 나지막한 집. 바깥벽에 빨랫줄을 걸어 놓고 이렇게 길손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누구일까? 벌어진 대문 틈새로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당 귀퉁이 정갈하게 가꾸어진 채전(菜田)만 보였다.


  어릴 적 우리 마당에도 귀퉁이에 작은 텃밭이 있었고 장대가 받치고 있는 빨랫줄에 양말이 널려 있었다. 축 늘어진 내의나 스웨터 옆에서 양말은 색 바랜 빨래집게에 집힌 채로 달랑거렸고 추운 날에는 고드름이 양말 끝에 뾰족이 달리곤 했다.

  저녁이면 엄마는 양말이 담긴 광주리를 옆에 두고 호롱불 심지를 돋우며 구멍 난 양말을 기웠다. 양말이 조금 해졌을 때는 엄지발가락이 닿는 부분을 박음질로 기워 신었지만, 맨살이 보일 정도로 낡은 뒤꿈치는 비슷한 색의 두꺼운 천을 덧대서 둥근 방석 모양처럼 감침질해서 더 신었다.

  엄마 곁에서 나도 양말을 기워 보았다. 양말목 깊이 손을 넣어서 바늘의 위치를 바꾸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고 손이 바늘에 찔려 피가 나기도 했다. 엄지발가락 부분은 그나마 할 수 있었는데 뒤꿈치 쪽이 힘들었다. 애써 꿰매 놓고 보면 한쪽으로 쏠리거나 구멍 난 부분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내 솜씨를 보고 엄마는 ‘그만두고 공부나 해라.’면서 광주리를 당신 앞으로 당겼다.

  전기가 들어온 후는 밝은 불빛 아래서 필라멘트 끊어진 삼십 촉 알전구를 양말 안에 넣어서 모양을 잡아가며 깁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비비며 광주리에 있는 양말을 뒤적거렸다. 그중의 조금이라도 바늘 자국이 적은 것을 골라 신어도 양말 속에서 엄지발가락이 조약돌처럼 얼굴을 쏙 내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친정에 가면 엄마는 장롱 속에 아껴 둔 새 양말을 내어 주면서 갈아 신고 가라고 하셨다. 장롱 속엔 양말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언제 누구한테 선물 받은 건지도 모를 양말이다. 그럴 때면 내 눈은 얼른 엄마 발로 향했다. 엄마는 여전히 바늘 자국이 엄지발가락을 한 땀 한 땀 감싼 양말을 신고 있다. 언제나처럼 당신은 특별한 날에만 새 양말을 신으시고 자식들에게 새 양말을 신기고 싶어 “그것 벗어 놓고 이것 신고 가라.”며 기어이 갈아 신기를 명하셨다.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늘 인내하고 아끼면서 자신을 위한 것은 없어 보이는 엄마의 삶이 고달프고 억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나도 모르게 엄마를 닮아 갔다. 정해진 살림살이 안에서도 내 아이는 건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라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나도 아끼고 노력하는 엄마를 닮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신은 구멍 난 양말을 기우시면서 나에겐 ‘그만두고 공부나 해라.’며 광주리를 당기던 엄마 말에 딸을 향한 맘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아흔에 가까운 엄마는 인지력이 약한 치매 초기다. 통화를 해 보면 의심이 많아졌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언어가 거칠어졌다.

  “농 안에 들어 있던 새 양말이 없어졌다. 너 오면 줄려고 애끼 놨는데, 금반지도 없다. 니 숙모가 새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 내 반지를 녹여서 한 것이 틀림없다. 우리 밭에 있는 배추를 그년이 뽑아 간 것이 틀림없다. 그 집 마당에 있는 배추가 딱 보니 우리 배추더라.”

  이런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 대상은 엄마의 친한 친구고 친척이다. 그로 인해 엄마는 가까운 사람들과 멀어지고 더욱 혼자가 된 듯했다.

  긴 통화로 그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킨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깨달았을 때 허무와 절망으로 가슴이 저렸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무척 반가워하는 엄마와 같이 잤다.

  “여기로 온나. 이것도 한번 먹어 봐라. 엄마 곁에 누워라.”라며 살갑지 못한 딸에게 정답게 온갖 말씀을 하셨다. 언제 이렇게 같이 잠을 잤던가. 아득한 시간을 더듬으며 나란히 누워서 엄마의 마음을 따라가 보았다. 엄마가 남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혼자 지내면서 감당하기 힘든 허전함 때문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 생긴 구멍으로 들어온 외로움이 엄마를 옥죄고 아프게 했다. 티격태격하며 함께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넘었다. 자식이 여럿 있어도 아무도 그 빈자리를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한 것이다.

  늦은 밤까지 고단함을 이겨 내며 구멍 난 양말을 촘촘히 기워 주던 엄마였는데 우리는 커다랗게 구멍이 나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엄마 마음을 조금도 메워 주지 못한 자식들이었다. 까무룩 잠든 엄마를 보니 모로 누워 웅크린 모습이 곧 땅속으로 꺼질 것만 같다. 밤공기가 차다. 발치에 있는 양말 바구니에서 수면 양말을 찾아서 엄마 발에 신겨 주고 엄마 등 뒤에 붙어서 나도 잠을 청했다.     

  “새 양말 하나 줄까?”

  친정을 나서려는 내게 잊지 않고 건네는 엄마 말이 내 발목을 잡는다. 어느새 엄마는 옷장 문을 열고 딸에게 줄 양말을 고르고 있다. 엄마가 오래도록 내게 양말을 골라주면 좋겠다.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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