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물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발톱을 자르려고 보니 끝부분에 발그스레한 그믐달이 걸려 있다. 지난여름 붉은색을 품은 둥근달을 새겨 두었는데 어느새 다 잘려 나가고 조금 남은 봉숭아꽃물이다. 여름엔 꽃물 위에 투명색 페디큐어를 해서 반짝반짝 빛내며 멋도 부렸다. 계절이 바뀌고 양말 속에 숨겨진 발톱에 관심이 없어졌는데 오늘 유독 눈에 띄었다. 발톱에 남아 있는 꽃의 흔적을 보니 외국에 나가 있는 손주가 생각난다. 손주 발톱에는 꽃물이 남았을까? 어떻게 지내는지 그립고 또 그립다.
초등학생 손주는 학교나 학원 수업보다 게임을 더 좋아했다. 딸은 그런 손주를 꾸중은커녕 함께 게임을 즐기고 편이 되어 주었다. 손주는 게임 외에 책 읽기도 좋아하고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였다. 가끔은 공벌레를 무서워하면서도 흙을 파 보고 땅속에 보물이 있을 거라며 꽃삽을 가지고 탐험하러 가자며 내 손을 끌기도 했다. 때로는 학원에서 받아 온 미꾸라지를 불광천에 풀어 놓고 생각날 때마다 잘 사는지, 가족이 생겼는지 가 보자고 조르기도 했다. 도심에 살면서 다양한 매체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이렇게 순수한 손주가 기특해서 자연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강변이나 낮은 산을 자주 산책도 했다. 십여 년의 세월을 이런 손주에 빠져 지내다 보니 내 마음 깊이 손주 꽃물이 붉게 들었다.
지난봄 텃밭을 분양한다는 구청 신문을 보았다. 내심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우리도 텃밭을 신청해 볼까?”
“네, 할머니 꼭 당첨되면 좋겠어요,”
당첨된 삼각 텃밭의 한 평쯤 되는 땅이 어찌나 반가운지 손주와 나는 보물을 캔다고 아무 곳의 흙을 뒤집는 대신 텃밭에서 호미로 이랑을 내고 잡초를 캐내었다. 상추와 고추를 심고 딸이 좋아하는 고수와 바질, 손주가 좋아하는 오이와 방울토마토도 심었다.
손주는 게임을 줄이고 제 어미랑 수시로 텃밭에 가서 물도 주고 자라는 모습을 사진도 찍어 왔다. 텃밭까지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들 모자가 자전거를 타고 꽁냥꽁냥 이야기 나누면서 갔다 오는 것이 보기 좋았다.
텃밭에는 비료나 농약은 사용 금지였기에 모든 채소가 잘 자라지는 않았다. 바질이나 고수는 실패했으나 상추와 오이, 고추는 잘 자랐다. 덕분에 한동안 식탁에 상추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쌈으로, 겉절이로, 상추 된장국까지 손주도 잘 먹었다. 그러고도 남아 이웃에 나눔도 했다. 한 평 텃밭으로 백 평의 마음을 낼 수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 딸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 우리가 일 년 동안 해외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8월에 떠나요.”
그 후 텃밭 가는 일이 뜸해졌다. 딸네는 외국 나가는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난 괜히 힘이 빠지고 의욕이 떨어졌다. 나쁜 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내겐 손주 돌봄에서 벗어나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좋을 일인데도…….
“할머니, 난 안 가고 할머니랑 여기 있을래.”라며 외국에서 학교 다니길 두려워하는 손주를 보니 더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나는 겁내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며 나도 할 수 없는 것을 손주에게 일러 주며 용기를 주었다.
어느 날 혼자서 밭에 갔더니 텃밭 가장자리에 울타리처럼 서 있던 봉숭아가 지난번에 없었던 다홍색 꽃을 조롱조롱 달고 있었다. 꽃물을 들이고 싶은 생각에 잎과 꽃을 한 움큼 따왔다.
손주에게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자고 하니 싫다고 했다. 남자아이라 친구들이 놀릴까 그런 듯했다. “그러면 발톱에는 어때.”하니 발을 쑥 내밀었다. 우리는 꽃과 잎을 꽃물이 나올 때까지 적당하게 으깨서 발톱 위에 올려 두고 랩을 감아 두었다. 발가락 끝으로 검붉은 꽃물이 스며 나왔다. 물이 잘 들었을까? 궁금증에 서너 시간 후 손주가 먼저 발톱에 얹힌 꽃을 떼어 냈다.
“할머니, 큰일 났어요. 발톱보다 발가락에 물이 더 많이 들었어요.”
“본래 그래. 그래도 피부에 든 물은 빨리 지워지고 발톱에 든 물은 오래가.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난대.”
손주의 첫사랑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내게 그런 거 절대 안 한다며 참말 같아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손주가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어디 두고 보자.’
딸네가 떠나가고 천변의 소국이 노랗게 웃고 있을 즈음 텃밭에 갔다. 이웃 밭에는 무와 배추, 쪽파 등 가을 채소가 푸릇푸릇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김매기조차 소홀했던 나의 텃밭은 가을 채소 대신 잡초만 무성했다. 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쇠비름과 괭이밥, 강아지풀 등을 뽑는데, 파란색 물 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 뒤뚱거리면서 손주가 오는 듯했다. ‘할머니는 식물을 심어. 물은 내가 줄 거야.’ 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지만, 손주일 리가 없었다.
‘잘 지내겠지.’ 생각하면서도 할 일 없는 나만 애틋해서 “카톡 좀 해라. 강아지 사진 좀 보내 봐라.” 안달하지만 “네.” 하는 딸의 답은 그때뿐이었다. 섭섭한 마음과 그리움이 쌓여 감정이 무거워졌다. 그러다 문득 걱정을 핑계 삼아 자주 소식 주고받길 원하는 내 욕심을 보았다. 생판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견뎌 내야 하는 그들은 하루하루가, 매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보고 싶고 걱정된다는 마음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무 무겁게 딸의 어깨에 올리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울수록 깊이 사랑하되 무겁지 않게.’ 남은 생에 숙제가 될 듯하다.
겨울이 되기 전 텃밭을 정리하러 갔었다. 끝물 고추가 달린 앙상한 고춧대와 지지대를 뽑고 나서 울처럼 서 있던 봉숭아를 뽑으려고 보니 아직도 꽃잎이 남아서 나비 날개처럼 바람에 흔들거렸다. 애잔한 마음에 남아 있는 꽃과 몇 장의 잎을 따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발톱을 자르고 나니 꽃물이 보일 듯 말 듯 남았다. 하루 시간 내어 발톱에 봉숭아 꽃물을 다시 들여야겠다. 새로 물들인 발톱을 자를 때마다 손주가 생각나고 그리움은 더 깊어질 것이다.
발그스레 꽃물이 남아 있을 때 내 마음의 영원한 꽃물인 딸과 손주가 돌아오리라.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