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벗어나 농사짓는 이유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 안정을 얻지만
농장에서 주도적인 삶을 살면 자유를 얻는다
25일은 월급날.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값, 보험비, 월세, 관리비 등이 후루룩 빠져나가면 남은 생활비는 얼마 되지 않아요.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면 카드값을 어떻게 갚아야 될지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져요. 그래서 마음속에 사직서를 묻어두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출근을 해요.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면서요. 제 의지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들은 1년에 며칠 되지 않아요. 그마저도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될 수도 있어요.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존재가 내가 아니라 회사인 것 같아요. 물론 그 삶에서 얻는 안정감과 성취감은 있어요. 하지만 회사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해요. 은퇴 후 나의 삶은 회사가 아닌 제가 책임저야 하니까요.
반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때는 모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해야 해요. 결과적으로 농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하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딱 남들만큼만 성과를 얻어도 다행이에요. 농사는 날씨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가 갑자기 많이 오거나 우박이 내리면 지금까지 노력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리거든요. 당연히 그 책임도 농업인인 제가 져야 하고요. 날씨는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다양한 상황을 예측해서 미리 대비해 놓는 수밖에는 없는 거죠. 만약 잘못돼서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해도 보험 처리하고 겨울 방학을 1달만 가지면 손해 본 만큼은 수습할 수 있어요. 특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1개의 작물만 키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거든요.
제가 스위스 농촌에서 2달 동안 홈스테이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홈스테이를 한 농장은 복합영농을 하는 곳이었어요. 이 농장은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아빠와 아들 2명, 그리고 사촌 1명이 함께 운영하는 농장이었는데요. 주요 작물은 포도, 유채꽃, 해바라기, 사탕무 등이었어요. 포도는 지역의 와인 생산을 위해 1만 3천 평을 재배해요. 유채꽃과 해바라기는 기름을 짜는 업체에 판매하고요. 암소 11마리와 수소 1마리를 키우며 송아지를 6개월간 키워서 큰 농장으로 판매하는 일도 해요. 그 외에도 토끼와 닭을 키우기도 하고요. 이 모든 작물과 동물들은 총 13.5만 평 정도 농지에서 자라고 있었어요.
농장에서 이렇게 1년 동안 여러 작물들을 키울 수 있는 이유는 각 작물마다 파종과 수확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에요. 작업 인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농장에서 전략적으로 작물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럼 모든 농지를 적은 인원으로 효율을 높여 관리할 수 있거든요. 이 스위스 농장의 1년 수입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익직불금으로는 약 1억 5천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해요. 참고로 이 농장은 스위스의 평균적인 농장보다 조금 더 많은 땅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편이었어요. 그렇게 벌어들인 수입은 가족들과 나누어 가지며 겨울에는 돌아가면서 휴식 기간을 가져요.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2-3주까지 휴가를 갖는다고 해요. 따뜻한 계절에는 열심히 일하고 추운 겨울에는 여유를 즐기며 살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스위스의 농장과 비슷하게 여러 작물을 동시에 또는 번갈아가면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하우스 시설에서는 토마토와 오이를 번갈아 가며 재배하거나 노지에서는 봄배추를 생산한 뒤 콩을 키우기도 해요. 강원도 홍천에 30년 동안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대표님이 한 분 계시는데요. 이 대표님은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수입이 생길 수 있게 전략을 세워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어요. 3월부터 11월까지 쉬지 않고 농산물을 재배하고, 생산한 모든 농산물은 2주 안에 판매하신다고 해요. 농사는 아내분과 2명 이서만 짓고요. 생산비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절한 양으로 경영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에는 3개월 동안 방학을 가지며 매년 아내분과 해외여행을 가시고요. 쉬는 동안 농업 교육을 들으며 역량을 키우기도 하면서 다음 해 농사 준비를 해요.
홍천에 사시는 대표님은 그동안 농사를 지으시며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여러 작물을 동시에 또는 연속해서 재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처럼 귀농· 귀촌을 하신 분들은 처음부터 여러 작물을 키우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한 가지 작물만 재배하여 원하는 만큼의 수입을 얻으며 여유롭게 살 수 있어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영월로 내려와서 포도를 1,000평 정도 키우시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은 혼자 농사를 지어 1년에 6천만 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그리고 평창에서 딸기를 키우는 청년 농부도 있는데요. 그 청년은 하우스에서 선반에는 딸기를 키우고, 바닥에서는 고추냉이를 키워요. 뜨거운 여름에는 딸기를 키우기 전에 로메인 상추를 재배해 도매로 판매하고요.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은 인건비인데요. 전략을 잘 세우면 생산비에서 전기세, 비료, 농약비 등을 제외하고도 평균 연봉 정도는 벌 수 있어요. 농사를 2-3년 정도 짓다 보면 새롭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농업직불금과 농업인 수당을 받을 수 있고요. 또한 지역에서 단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활동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올 겨울부터 영월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시작한 파쇄작업이 있어요. 농지에 수확하고 남은 옥수숫대나 고춧대 등을 태우지 않고 파쇄할 수 있도록 군에서 사람을 모집해요. 일당은 15만 원이고요. 트럭을 가져가면 추가로 20만 원을 지급해요. 보통 친한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고 트럭을 돌아가면서 가지고 다니며 작업을 하니까 한 달에 300-4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어요.
농사를 짓지 않아도 포클레인 장비 1개만 가지고도 동네에서 충분한 돈을 벌며 살 수 있어요. 일당이 60만 원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끊이지 않거든요. 농번기에는 작업하기 최소 2-3주 전에는 미리 예약해 두어야 할 정도예요. 그리고 겨울에는 땅이 얼기 때문에 농업인과 마찬가지로 겨울 방학을 가지고요.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살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해요. 회사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과 날씨에 따라 스케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훨씬 자유롭고요. 무엇보다도 똑같은 돈을 벌어도 농업인들에게는 방학이 있잖아요. 고정적인 수익이 없어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