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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소정 Feb 09. 2024

반 토막 난 생활비

고정적인 수입 없이도 잘 살아요

회사원이 월급으로 식(食)을 해결한다면
농부는 식재료로 의주(衣住)를 해결한다


7시 기상. 눈을 뜨고 침대에서 5분 정도 뭉그적거리다 화장실로 달려가 재빠르게 씻어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시간을 확인한 뒤 머리를 말리고, 씻는 동안 생각해 둔 오늘의 의상을 골라 입어요. 그리고 화장대에 앉아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며 간단히 화장을 해요. 오늘은 출근길에 김밥을 사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타이밍이 맞으면 출근길에 아침 식사로 호화롭게 김밥을 먹을 수 있어요. 운이 나쁘면 두유와 견과류로 아침 식사를 대신해야 하죠. 일단은 호화스러운 아침밥을 위해 집에서 후다닥 뛰쳐나와 김밥 가게로 빠르게 걷기 시작해요.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꼭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버스 도착 시간 알림 앱에 리셋버튼을 계속 누르면서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죠. 그렇게 출근길부터 혼자만의 미션임파서블에 버금가는 영화를 한편 찍으며 비장한 마음을 안고 회사로 가요. 왜냐하면 출근 후에는 전쟁영화 한 편을 찍어야 하거든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퇴근 시간을 바라보며 일을 시작해요. 퇴근 후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치킨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야근할 일이 생기지 않게 열심히 업무를 봐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발생해 저의 퇴근은 늦어지죠. 스트레스는 덤이에요. 그렇게 회사에서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9시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요.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기 위해 노력해요. 하지만 회사에 두고 오고 싶었던 스트레스는 집까지 따라왔고, 체력은 아직 회사에 남아있어요. 그렇다고 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되찾기 위해 매일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삶을 저버릴 수는 없어요. 다음 달 카드값과 대출금이 제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퇴사하면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 먹고살겠어요.

출처 : 세기몰, 포토갤러리, 빌딩숲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자유를 회사에 반납해요.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갚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나의 생활 범위가 회사와 집 밖에 없어서 스트레스로 가득 찬 머릿속으로는 회사를 떠다는 방법으로 이직이나 퇴사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두고 카페를 차리는 일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잘 몰라요. 저도 귀농귀촌을 하기 전까지는 서울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농촌에서는 고정적인 수입 없이도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시골에 살면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거의 없거든요. 지천에 깔린 것이 먹거리라 농사를 짓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 냉장고 안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예요. 이 사실은 우리니라 시골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농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스위스 농촌에서 2달 동안 지내면서 자급자족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깊은 산속에 위치한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였는데요. 비가 오면 핸드폰 신호가 끊기고 20분은 걸어가야 이웃집이 간신히 1개 정도 보이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4일 정도 머물렀었는데 스위스의 주식인 빵, 치즈, 감자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계속해서 먹었어요. 그 집은 노부부가 사는 집이기도 했고, 식재료를 사러 나가기가 번거로워서 저장해 둔 음식으로 밥을 차려주셨던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면 단위 정도의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35분을 가야 했거든요. 가끔 딸이 올 때 음식을 사 오기도 했지만 주로 뒤뜰에서 키우는 농산물을 수확해 먹었어요. 감자를 캐서 가장 가까운 이웃집에 가서 당근이랑 교환하기도 했고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든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일상인가 봐요.


이 산속집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집 대부분은 마당에 정원을 가꾸고 있어요. 정원에서 허브나 채소들을 키워 주식인 샐러드에 함께 곁들여 먹어요. 신선한 달걀을 먹기 위해 닭을 2마리만 키우는 집도 있었고요. 마을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체리나무를 주시하다가 열매가 익으면 매년 체리를 따 먹기도 해요. 과일과 채소는 동네 농부가 운영하는 무인 농부마켓에서 그날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을 사 먹고요. 스위스는 배달 문화가 발달하지도 않았고 물가가 비싸서 집에서 밥을 먹는 걸 선호해요. 그래서 집집마다 지하창고에 치즈, 잼, 주스, 감자, 맥주 등부터 다양한 먹거리들이 가득 채워두죠.


저도 스위스처럼 음식 배달이 거의 되지 않는 시골에 살면서 집에 음식들을 저장해 놓고 먹었어요.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농산물로 밥을 챙겨 먹으니까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서울에서 맛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어보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도토리묵이 전분맛이 나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골 동네 아주머니가 주신 묵을 먹어보고 진짜 도토리묵 맛을 알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먹었던 도토리묵은 밀가루에 불과했어요. 아주머니가 직접 도토리를 주워 집에서 만들어 주신 도토리묵은 탱글탱글하면서 찰지고 고소한 단맛이 나더라고요. 이것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나눠먹는 문화가 있어서 들어 보지도 못했던 음식들도 다양하게 맛보곤 했어요. 가죽나물, 다래순무침, 사과꽃 꿀, 더덕순 장아찌 등 진짜 향토 음식을 맛보았죠.


이렇게 시골 사람들이랑 조금만 어울리게 되면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요. 지천에 깔리게 먹을 거라 동네 아주머니들도 가족들과 먹는데 한계가 있으시거든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는 것 같아요. 물론 시골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정 문화로 나눠 먹는 게 익숙한 것 같지만요. 그렇다 보니 농촌에 살면 식비가 현저히 줄어들어요.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고, 식당으로 밥을 먹으려고 나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10분 이상은 가야 하기 때문에 귀찮거든요. 게다가 동네 식당도 8시면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아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건강해지더라고요. 간이 세지 않고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들을 주로 먹게 되니까요.


시골에 살게 되면 식비가 도시에 살 때보다 반은 적게 들어요. 그래서 시골에서 살면 굶어 죽을 걱정은 없어요. 만날 사람들도 많지 않아 옷을 사지 않게 되고요. 집값도 비싸지 않다 보니 전체적인 고정비가 줄어들어요. 만약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아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이라면 시골에서 사는 선택지를 고려해 보세요. 40대 은퇴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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