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문화 차이를 존중해 주세요
동네마다 문화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텃세가 두렵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시골은 텃세가 심해서 외지인들이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런 두려움을 안고 강원도 영월로 처음 내려왔을 때, 역시나 텃세로 인해 힘든 일들을 겪었어요. 시골에서는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농업경영체'를 등록해야 하는데, 이장님 서명이 꼭 필요해요. 결과적으로 저는 이 서류에 이장님 서명을 받기까지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어요. 처음에는 이런 일을 겪으며 '이게 바로 텃세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귀농귀촌을 한 지 4년이 지난 지금은 텃세가 아니라 동네의 문화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살았던 적이 있어요. 한 곳에서 10년 가까이를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어요. 그러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고, 그제야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는 제가 살고 있는 공간만큼만 제 집이었어요. 하지만 시골은 살고 있는 집부터 집 근처의 농사를 짓는 땅까지 모두 한 집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까지도 1960년대 정부에서 도로망 확충을 위해 노력할 때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땅을 조금씩 기부해서 만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길부터 논과 밭, 집이 있는 마을 전체가 한 집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사람들은 그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토착민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도로는 나라의 땅인데 개인이 왜 도로를 가로막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옆집도 어릴 적부터 가서 놀던 곳이라 내 집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집을 다시 짓고 울타리를 치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런 일들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도시에 살며 정립된 상식과 시골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상식에 차이가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시골로 귀농귀촌하여 살기를 바란다면 그 동네의 문화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위스 농촌에서 2달 동안 홈스테이를 하는 IFYE(국제교환훈련)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미국에서 온 친구 Nora가 있었어요. 이 친구와 우연히 같은 집에서 3일 동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는데요. Nora는 같은 공간에 사람이 있으면 말을 거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어요.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약간의 정적이 흐르면 바로 다른 주제조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죠. 그래서 Nora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와 단 둘이 산책하다가 Nora가 스위스 사람들은 친근하지 않아 조금 힘들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Nora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스위스 사람들과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스위스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미국에는 small talk 문화가 있어서 낯선 사람들끼리 간단한 주제로 시작해서 서서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문화가 있어요.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의 짧은 시간에도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곤 해요. 그런 문화가 있는 곳에서 20년을 살다가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는 small talk를 하지 않는 스위스 사람들을 만나니 Nora는 그들이 친근하지 않다고 느꼈던 거예요. 저는 반대로 small talk 문화가 없는 곳에서 살다가 small talk 문화가 있는 스위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니 그들이 친절하다고 느꼈던 거고요. 이렇게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화를 가진 곳에서 살아온 경험 때문에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Nora와 저는 문화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문제없이 잘 지냈어요.
스위스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나라와 다르게 공동체보다 개인의 의견을 더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모든 일정을 함께 소화하잖아요. 하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같이 여행을 가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한 번은 스위스의 Dick family와 함께 달리기 모임 친구들 15명과 열흘 동안 여름휴가를 보냈었는데요. 신기하게도 모두 함께 모이는 시간은 저녁뿐이었어요. 낮에는 각자 하고 싶은 달리기, 등산, 수영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가족이라고 해서 꼭 같이 시간을 보내지도 않더라고요. 취리히에서 사는 두 딸아이와 함께 온 부부가 있었는데요. 아빠는 매일 달리기를 하러 가고, 엄마는 자전거를 타러 다녔어요. 두 딸들은 수영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요. 그렇지만 모두가 꼭 지키는 규칙은 있었어요.
15명이 한 숙소에서 같이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요일마다 식사 당번과 청소 당번을 정해야 했어요. 심지어 5살 아이도 빠짐없이 모두가 역할을 나눠 수행했어요.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 바닥 청소, 설거지 당번을 무조건 1번씩은 해야 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그날 아무 때나 맡을 일을 하면 되는 방식이었어요. 만약 깜빡해서 청소를 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어요. 그저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처해서 그 일을 대신해 주었어요. 공동체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제한을 받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더라고요. 정해진 선만 잘 지키면 문제가 없는 거였어요.
우리가 해외여행을 갈 때는 문화 차이를 인지하고 그 나라이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는 시골로 귀농귀촌할 때도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골은 도시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거든요. 외지인이라도 시골 마을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서로 부딪치지 않고 원활하게 지낼 수 있어요. 외부인과 지역 주민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각 지역의 문화 차이를 모르고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외지인들은 이 갈등을 텃세라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하지만 모든 시골 사람이 외부인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해요. 어디를 가든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도 연고도 없는 강원도 영월로 내려와서 4년째 살면서 텃세라고 받아들이는 경험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계속 시골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일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어요.
그러니까 토착민과의 갈등을 텃세로 분류하기보다는 문화 차이와 다른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 생기는 거니까요. 텃세라는 편견을 버리고 문화 차이라고 생각해봐 주세요.
시골에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농촌이 사라져 가는 이유를 파악하실 수 있을 거예요.
https://brunch.co.kr/@agricozy/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