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멀어지면 괜찮아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살면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최소화할 수 있어요.
내륙의 섬. 도시에서 동 떨어진 채 적은 사람들이 모여 삶을 꾸린 고립된 시골을 은유적으로 부르는 표현이에요. 그만큼 폐쇄적인 곳이라는 뜻이죠. 제가 귀농귀촌한 강원도 영월이 딱 그런 곳이에요. 영월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영월에 사는 특정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 사람씩만 걸쳐 물으면 돼요.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까지 알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동네를 돌아다니기가 조심스러워요. 제가 은행이나 마트를 가든 사람들이 제가 어딜 다녔는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시골 사람들은 사람들의 차량 번호를 외우는 습관이 있어서 길가에 지나다니는 제 차를 보고 제가 어디를 다녔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한테는 거짓말을 못해요.
또한 시골에 내려와서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게 됐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전봇대를 박고 고꾸라진 차량이 발견된 적이 있어요. 이 교통사고는 해가 뜬 새벽에 발견되었죠. 저는 이 사고를 당일 오전 10시쯤 면사무소에 가서 알게 되었는데요.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서 사고 차량 주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까지 알게 됐어요. 그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 교통사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 전화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해줘요. 저녁 시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교통사고에 대해 다 알고 있고요. 다음날이면 영월군에서 사는 사람들의 3분의 1은 그 교통사고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예요. 마치 직장 내 불륜 사건이 터지면 퇴근할 때쯤 회사 전 직원이 다 아는 것처럼요.
유언비어도 그만큼 빠르게 퍼져요. 어느 날 모임에서 점시식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요. 우연히 아저씨 한 분과 마주 앉아 밥을 먹게 되었어요. 그러고 두세 달 정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아저씨와 둘이 데이트를 한 것처럼 소문이 나있더라고요. 이런 헛소문들이 동네 사람들 사이에 퍼져 도시에서 온 저를 배척하게 만들기도 해요. 사실 저는 그 소문을 듣지 못한 탓에, 동네 사람들이 저한테 툴툴거릴 때면 '이게 바로 텃세구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곤 했거든요. 하지만 텃세와는 다른 미묘한 행동이었죠.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남 이야기를 하고 소문을 퍼트리는 행동이 놀이 문화 중 하나라는 걸 저는 뒤늦게 깨달았어요.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거의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느냐 입이 쉴 틈이 없어요.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그 찰나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요. 그렇게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사실이 과장이 되고 와전이 돼서 헛소문들이 떠돌게 되는 거죠. 실제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잔뜩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회사라는 작은 집단이 아니라 지역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신기했는데요. 동네의 놀이 문화라고 받아들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도시나 시골이나 어디든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는 것은 똑같아요. 다만 시골에 살면 물리적 거리가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힘들어진다면 도망치면 그만이에요.
스위스에서 2달 동안 농촌 생활을 하면서 산속에 고립되어 지내본 경험이 있었어요. 스위스 사람들은 등산을 좋아해 함께 자주 등산을 가곤 했는데요. 저는 현지인들과 함께 산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방향만 고려해 걷는 등산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등산을 하면서 '여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지?'라는 생각이 드는 깊은 산속의 집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어요. 주변에 1시간을 걸어도 다른 인가가 보이지 않는 산속에 집 한 채가 외로이 위치해 있었어요. 집 근처 들판에는 목에 방울을 맨 소, 양, 염소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고요. 이렇게 외진 곳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동물들과 함께 살기에 산속에 홀로 살아도 괜찮은 거 같아요. 동물들이 곁에 있으면 외롭지는 않으니까요.
한 번은 스의스의 산 중턱에 위치한 집에서 하룻밤 머문 적이 있었는데요. 무릎이 아플 정도로 가파른 길을 따라 1시간은 내려가야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나오는 곳에 위치한 집이었어요. 집 뒤로는 산의 정상이 보이고, 집 앞으로는 높은 산맥들이 장관을 이루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죠. 이 집은 오로지 마당에 펼쳐진 경관을 감상하는 즐거움으로만 사는 곳이었어요. 산 정상에 가까워서 일교차가 굉장히 크고 스마트폰 전파도 잘 터지지 않아 생활하기 쾌적한 위치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 집에서 몇 년 전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사셨다고 해요. 차가 다닐 수 없는 지역에서 일평생을 먹고 사셨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어요. 어느 나라든지 시골에서는 자급자족 생활이 가능한 것 같아요.
도시에서 인간관계 스트레스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진저리가 나서 시골로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직업으로 채택하지 않는다면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사를 짓고 판매를 하기 위해서는 시골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사람들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없어요. 농사가 아니라도 다른 일로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농촌민박을 운영하는 방법이 있어요. 세련된 자연친화적인 숙소를 지어놓고 도시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주로 수익을 창출하는 하는 거죠. 또는 목공예품이나 도자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랑 수도 있어요. 실제로 강원도 영월에 이런 생활을 하시면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셔요. 서울에서 디자인 업을 하시던 분이 시골로 내려와 외주를 받아 집에서 일하며 지내시는 분도 있어요. 그분들은 완전히 고립돼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분들을 보며 시골에서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과 물리적 거리를 두며 넉넉한 삶을 살고 싶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꼭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