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이는 공 같기도 하고 불덩어리 같기도 한 그것은 비명을 닮은 괴성을 내면서 가공할 속도로 데세르의 이마를 직격했다.
데세르는 “억!”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운 좋게도 폭신한 카펫 위로 쓰러지긴 했지만 그는 기절해 버렸다. 날카로운 것에 찍힌 듯한 상처에서 솟은 한 줄기 피가 얼굴을 타고 카펫으로 흘러 떨어졌다.
방문 바깥쪽에서 넬리사와 레투스가 각각 시스와 데세르를 불렀다. 그들은 다급하게 무슨 일이냐고 외치며 안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데세르가 잠가 둔 육중한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세르를 쓰러뜨렸던 빛의 덩어리가 천천히 시스에게로 날아왔다.
‘페로, 너구나. 네가 와주었어. 아아 정말이지 끔찍했어.’
눈앞에 동동 떠서 자신을 보는 페로를 향해 시스가 안도의 마음을 전했다. 페로의 몸에서 타는 듯한 빛이 차츰 사라졌다. 페로는 하얀 솜뭉치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블랙 오팔을 닮은 페로의 눈이 재촉하는 듯했다.
도망쳐야지. 얼른 일어나라고.
‘일어날 수가 없어. 몸이 말을 안 들어. 움직이지를 못한단 말이야.’
페로가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부리로 시스의 소매를 물어 올렸다. 페로가 부리를 떼자마자 시스의 팔은 침대로 툭 떨어졌다. 페로는 고집스럽게 시스의 반대편 소매와 발가락을 물어서 들어 올려 보았다. 그러고는 겨우 수긍하는 눈치였다.
‘흑주술에 걸려 버렸거든. 그것도 멀쩡한 사람을 살아 있는 인형으로 전락시키는, 악랄하고 어이없는 흑주술에.’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시스는 전했다. 애당초 페로가 흑주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깨우치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시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는 게 침착함을 되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사람이 머리를 갸웃거리듯이 둥근 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굴리던 페로가 별안간 날아올랐다. 열쇠 돌리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페로가 깨진 창문을 통해 모습을 감추었다.
“데세르!”
다피넬이 부르짖으며 데세르의 상체를 안아 일으켰다. 데세르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다피넬은 침대에 누운 시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스를 넬리사가 살피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시스?”
시스의 대답을 기다리던 다피넬의 뇌리에 말리티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인형! 오, 이럴 수가 시스.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제야 다피넬의 눈에 깨진 창문과 벽이 보였다.
“외부에서 침입한 누군가가 있었던 거야. 아아, 시스. 네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피넬은 참혹한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애면글면 지켜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걸 손 놓고 바라만 봐야 하는 무력한 느낌은 차라리 공포에 가까웠다.
“아니야, 내 방으로.”
데세르를 등에 업고 옆방으로 가려던 시종장에게 다피넬이 지시했다. 보니타가 준 약 상자도 거기에 다 있고, 침입이 있었던 창문과 나란한 위치에 역시 창이 있는 방에 데세르를 두기 싫었다.
그리고 하나 더. 시스와는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시스에게도 그게 나을 터였다.
부산한 발소리가 문 너머로 멀어지고 시스의 곁에는 넬리사만이 남았다.
“괜찮으세요, 레이디?”
놀라고 겁먹은 넬리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넬리사는 시스가 ‘살아 있는 인형’ 주술에 걸린 사실을 몰랐다. 그녀는 흑주술이라는 것 자체에 무지했다. 지금의 티토니아를 살아가는 선량한 백성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시스가 눈동자를 굴려 넬리사와 시선을 마주쳤다.
‘전혀 괜찮지가 않지. 몹시, 몹시 심각한 상황이야. 그런데 말이지. 아무래도 말리티아가 의심스러워. 어쩌면 데세르가 마구스인 게 아니라 말리티아가 마가일지도 모르겠어. 아니면 둘 다일까? 내가 알기로는 흑주술사의 능력은 내림이거든. 그럼 다피넬은? 다피넬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다피넬이 나와 맞지 않기는 해도 악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넬리사가 시스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매무새를 정돈하고 이불을 덮어 주며 위로했다.
“음식에 뭔가 모데샤 마님과 레이디 시스의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들었던 걸까요? 아아, 가여우셔라. 다피넬 마님께서 분명 레이디를 낫게 할 약을 찾아 주실 거예요. 그러니 너무 불안해 마시고 차라리 잠을 좀 자도록 해 보세요. 네?”
독에라도 중독된 건 아닐까 싶은 우려를 돌려 말하면서 넬리사가 긴 한숨을 쉬었다. 피를 토한 모데샤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피 때문에 모데샤는 시스보다 몇 곱절 위독해 보였고 넬리사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 저택에 레이디 시스나 모데샤 마님을 해칠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믿지만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르는 거라고.
“넬리사.”
부르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어느새 말끔히 옷을 갈아입은 말리티아가 예의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여긴 내가 있으마. 넌 이만 가서 쉬려무나. 너도 많이 놀랐을 테고 피로할 테니.”
“그래도…… 되는 걸까요?”
말과 달리 넬리사의 얼굴에는 말리티아의 제안을 반기는 빛이 역력했다.
“되고말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건 너보다 내가 한참 나을 게다. 염려 말고 가 보렴.”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넬리사는 말리티아와 시스를 향해 무릎을 조금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일어나거라, 시스.”
말리티아가 말하자 시스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시스는 더 움직여 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을 일어나게 한 것이 말리티아의 명령임을 알 수 있었다.
“자, 자, 이제 움직여라, 시스. 나와 같이 갈 데가 있으니. 나가기 전에 옷부터 간편한 것으로 바꿔 입는 게 좋겠다. 서둘러라.”
시스의 등을 찰싹 치면서 말리티아가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