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리아의 녹스 성채로 돌아온 라무스는 즉시 대장 네우테르를 찾아갔다. 임무에 실패했음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타키툼에 도착했을 때 이미 메타는 사라지고 없었단 말이군. 자네는 행방이 묘연한 메타를 찾아 헤매다 한 계절을 꼬박 보냈고?”
메타는 목표물이나 표적을 뜻하는 녹스 용병단의 은어다.
언제나 그렇듯 네우테르의 얼굴과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그가 냉혈한이어서는 아니다. 네우테르는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했다. 그는 용병단의 업무 처리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법이 없었다. 상을 내릴 때나 벌을 내릴 때나 한결같았다.
“그렇습니다.”
라무스 또한 일말의 동요도 없이 거짓 보고를 이어갔다. 양심에 걸리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까닭 모를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모순이었으나 처음 맞닥뜨리는 심적 난제는 아니었다.
녹스 용병으로 길러지고, 그 중에서도 최정예로 자리 잡는 동안 라무스는 이런 모순을 몇 번이고 겪고 극복해 왔다. 때로는 양심을, 때로는 확신을 선택했다. 정답은 없었다. 선택에 대한 최선의 책임만이 있을 뿐.
“길을 잃지 않는 자, 라무스 라디우스의 첫 실패로군.”
녹스 용병으로서의 이름은 라무스 라디우스였다. 임무 실패의 책임은 라무스 라디우스가 지는 것이었다. 라무스 플라토르 유바론이 아니라.
“마땅한 징계를 받겠습니다.”
“그래야겠지. 다만.”
부동자세로 서 있는 라무스에게 네우테르가 다가왔다. 네우테르는 라무스의 어깨를 툭 쳤다. 자세를 풀고 편안하게 들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라무스는 그대로 서 있었다. 징계를 받아야 하는 몸이니까.
“지금은 징계를 논할 수가 없네. 아직 메타의 소재는 고사하고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았지. 라무스 자네가 타키툼에 갔을 때 이미 메타가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이번 임무의 실패에 관한 최종 논의는 당분간 미룰 수밖에.”
“메타의 소재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말씀입니까?”
라무스는 버젓이 살아있는, 자신이 놓아 보낸 메타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남생이 여관 근처에서 헤어진 시스를. 지금쯤은 텔룸으로 가고 있을까? 영리하고 수완이 좋은 여자니까 콤메르를 만났겠지. 그와 요령껏 거래하여 텔룸까지의 안전을 확보했을 거야.
“그것도 그렇지만, 자네는 안식년 중이었으니까. 우선은 안식년을 보내고 복귀하면 그때 이번의 실패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우리 녹스 수뇌부의 결정일세.”
“알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솔직히 네우테르는 내심으로 라무스의 실패가 오히려 반가웠다. 그동안 녹스 용병으로서의 라무스는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실패를 맛보게 되어 있고, 실패로부터의 배움은 오직 실패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법이었다.
메타의 신병을 확보하여 의뢰인에게 인도하는 이번 임무는 녹스 용병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차대한 임무는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용병단의 재정을 살찌우는 일종의 부업에 속했고, 부차적으로 장차 요긴할지도 모르는 기밀 수집 활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네우테르는 지금이 라무스가 실패할, 실패로부터 배울 적기이며 이번 임무가 그러기에 적합했다고 보았다. 징계 또한 그리 무겁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그럼 이만 가 봐. 안식년 잘 보내고 오게.”
라무스는 절도 있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이제 떠나면 다시 녹스 성채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그는 예감했다.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내리고 라무스는 돌아섰다.
“녹스 용병으로서 말고, 은혜를 입은 아이로서 네우테르 아저씨께 지금껏 제대로 인사를 차린 적이 없었군요. 지난날 솜다리 여관에서 저를 구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떤 식으로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꼭 갚겠습니다.”
“허허, 은혜는 무슨. 난 그저 용병으로 키울 아이 하나를 주웠을 뿐이야. 어엿한 녹스 용병으로 커 줬으니 이미 은혜는 다 갚은 셈이고. 그러니 이제 마음 쓰지 마.”
호탕하게 말하며 네우테르가 손사래를 쳤다. 녀석, 새삼스럽기는.
대장실을 나온 라무스는 지체 없이 성채의 입구를 향했다. 바야흐로 라무스 플라토르 유바론의 길을 가야할 때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일부러 성채의 중앙 광장을 가로지르지 않고 가장자리의 석벽 회랑을 따라 걷던 라무스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날아온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늘어선 돌기둥 가운데 하나의 뒤에서 파보르가 걸어 나왔다.
“단주님, 아니, 스승님!”
허를 찔렸다는 듯 그러나 기쁘다는 듯 라무스가 그에게로 뛰어갔다.
“나를 안 보고 갈 줄 알았다는 말이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집에 왔으면 어른께 인사를 여쭙고 가는 게 도리거늘.”
다정하게 나무라며 라무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때리는 시늉을 하던 파보르가 갑자기 무언가에 크게 놀란 기색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또 한 걸음 물러서서 주위를 두루 살폈다. 그러고는 또 몇 걸음 물러서서 라무스를 주의 깊게 응시했다.
“이럴 수가……. 맞구나. 정말이구나. 라무스, 얘야. 네가, 바로 네가……,”
영문을 모르는 라무스는 그저 눈만 깜빡였다. 무슨 일로 저러시는 걸까.
“가자. 내 방으로 가서 이야기하자꾸나.”
성채 안에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파보르가 주위를 의식하며 라무스를 잡아끌었다. 놀란 낯빛이었지만 파보르의 태도와 손길은 온화했다. 라무스는 순순히 그를 따라갔다.
성채 안의 작은 요새와도 같은 방으로 들어서자 파보르는 모든 창문과 문을 봉쇄하더니 여기저기 촛불을 켜 방을 밝혔다. 그러더니 다시 라무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러십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지난 번 만났을 땐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들리는구나. 피리 소리가. 네가 바로 피리 부는 자, 플라토르였구나.”
“저에게서 피리 소리가 들린다고요?”
라무스가 놀라서 물었다. 도채비족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파보르 스승님이 도채비족도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