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뒤돌아서서 입은 옷 안쪽에 넣어 두었던 것을 찾아 꺼낼 때 콤메르의 기대감은 조용히 부풀었다. 젊은 레이디가 저렇듯 품속 깊이 간직할 정도라면 분명 그녀가 장담한 대로 귀하디귀한 무언가가 틀림없겠지!
“아니, 이건, 이건 그냥……? 장난이 지나치시군요, 레이디 시스.”
시스가 건네주는 것을 마지못해 받아들고는 혹시나 해서 눈 가까이로 가져가 이리저리 살펴보던 콤메르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했다. 그는 시스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런 기롱을 용납할 정도는 아니었다.
콤메르는 닭털인지 비둘기 깃털인지 모를 초라한 깃털을 거칠게 시스의 손에 도로 넘겨주었다. 시스는 소리 높여 웃고 싶은 걸 콤메르의 눈치가 보여 억지로 참고 있었다. 그러느라 그녀의 뺨이 발그레하고 동글어졌다. 그 모습이 콤메르의 짜증을 더욱 부채질했다.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최대한 진지하게 말하면서 시스가 콤메르의 책상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깃털을 검은 잉크가 가득한 통에 푹 찔러 넣었다. 깃털의 아래쪽 반이 먹빛의 액체에 잠겼다.
“자, 보세요.”
콤메르가 귀찮다는 듯 겨우 눈길을 주자 시스는 의기양양하게 잉크에 잠겼던 깃털을 들어 올렸다. 깃털은 조금도 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잉크가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약간 때가 탄 흰 빛깔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미 콤메르는 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미리 기름칠이라도 해놓았겠지요.”
이런 사소한 사기를 치는 데에도 약간의 잔꾀와 노력은 필요한 법이지.
“아까 만져 봤잖아요. 기름 같은 건 바르지 않았어요. 부탁인데 사람을 시켜 불씨를 가져오게 해요. 그럼 이 깃털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될 거예요.”
“불씨? 마지막으로 속는 셈치고 들어 드리지요.”
의혹을 지우지 않은 엄정한 표정의 콤메르가 문을 열고 바깥을 향해 불이 붙은 숯을 갖다 달라고 소리쳤다. 곧 베니그가 발갛게 달아오른 숯이 몇 개 담긴 청동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문을 닫은 콤메르는 그 그릇을 이 계절에는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 턱에 내려놓았다.
시스가 망설임 없이 깃털을 숯 그릇에 던져 넣었다. 심드렁하게 곁눈질하던 콤메르가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딱 벌리더니 손을 들어 그 입을 틀어막았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그의 두 눈에 놀라운 광경이 되비치고 있었다.
숯불에 닿은 깃털이 타올랐다. 정확하게는 타오른 것이 아니라 날름거리는 불길에 감싸였다. 미세하고 무수한 황금빛 불티가 일어 끊임없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스러졌다. 그러나 불길은 깃털에 어떠한 손상도 입히지 못했다.
추레했던 깃털은 불꽃 속에서 새하얗게 정화되고 풍성하게 살아났다. 흰 깃털에서 오색 빛깔의 광채가 아른거렸다.
“부, 부, 불새……? 불새의 깃털? 에이, 설마, 설마…….”
간신히 몇 마디를 입 밖으로 낸 콤메르는 가만히 결말을 기다렸다. 속임수라면 결국 저 깃털은 타고 말 것이다. 진짜 불새의 깃털이라면 저 불을 다 들이마시고 살아남을 것이다.
고작 몇 개의 숯이 품고 있던 불을 페로의 깃털이 다 흡수해 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내 숯들은 희게 탈색되었고 깃털도 본래의 흰색으로 돌아왔다. 본연의 색이지만 불을 만나기 전과는 달리 순결한 흰빛이었다. 깨끗하고 생생했다.
콤메르는 떨리는 손으로 깃털을 집었다. 뜨겁지 않았다. 기분 좋은 따듯함이 전해졌다. 온기가 손을 통해 온몸을 휘도는 것이 느껴졌다. 창으로 비쳐드는 햇빛에 비추니 깃털은 연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불에 타는 게 아니라 불을 먹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품 같은데, 이걸 마차와 마부를 빌리는 값으로 내시겠다고요?”
눈 딱 감고 그러시라고 할 참이었건만.
“합당하지 않습니다. 제공하는 편의에 비해 너무 비싼 비용입니다. 공정한 거래가 아니지요. 쉽게 말해 레이디께서 크게 손해 보시는 겁니다.”
아, 이놈의 양심. 콤메르는 가슴속 어디에선가 뾰족이 튀어나오는 양심을 지그시 밀어 넣는데 실패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게 해 줘요. 혹시 답을 알거나 참고가 될 만한 정보가 있으면 말해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 질문이에요.”
“잠깐만요. 그 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신비한 귀물을 어디에서 어떻게 손에 넣으셨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걸 말하면 내 질문에도 성의껏 답해줄 건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려서 포르미두사를 떠날 때 솜다리 여관에 들렀었죠. 눈 내리는 밤에 호숫가로 나갔다가 주웠어요. 물에 떠내려가고 있더군요.”
거짓말이면서 참말이었다. 깃털은 페로의 것이고, 시스는 님파 라쿠스의 물결에 실린 석귤을 건졌고, 그 석귤에서 페로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또 얘기가 솜다리 언덕과 요정의 호수로 이어지는군요.”
콤메르는 혼자 끄덕였다. 이제는 사라진, 요정들과 정령들의 신비가 흔적과 전설로 남아 있는 그곳이라면 먼 옛날의 불새가 잠시 머물렀을 법도 했다.
“이로써 서로간의 합의로 거래는 성사되었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방도가 있을까요? 번개 반도의 도채비족은 제외하고요.”
시스는 아직 죽기 싫었다. 더 살고 싶었다.
숭고한 목적이나 대단한 야망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흔한 하루하루를 남들만큼 살아가고 싶었다. 대체로 그날이 그날이겠지만, 마음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즐겁고, 맛있는 음식이 기쁘고, 자연의 미덕과 계절마다의 정경에 감탄하고. 그렇게 차근차근 늙어 보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도채비족을 제외한다면, 그 방면에 대해서는 이 콤메르도 더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흐음, 안타까움을 담은 짧은 한숨 끝에 나온 진중한 대답이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마차 준비를 서둘러 주세요.”
“혹시 거기는…… 이미 조사해 보셨을까요?”
돌아서서 문으로 향하던 시스를 콤메르의 말이 돌려세웠다.
“거기가 어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