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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진 Apr 17. 2024

혈육이라는 굴레


 잔잔한 애도에 젖은 고모의 얼굴을 보며 문비는 면구스러움 비슷한 걸 느꼈다. 자신이 엄마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것이, 고모가 꿈에도 모를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정인 언니가 널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기억하렴. 정인 언니가 없어도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우리가 있으니까.”


 영채는 문비가 알기를 바랐다. 엄마가 없어도 문비는 혼자가 아님을. 기댈 데가 있다는 것을. 언제 돌아와도 환대해줄 핏줄이 등 뒤에 있음을. 저 아이가 알기를, 잊지 말아 주기를. 


 우리에게 돌아올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우리는 널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문이라고, 포근히 덥혀진 방이라고. 그러나 영채는 자신의 소망이 문비에게 얼마만큼 가 닿았는지 알 길이 없다. 


 착잡하게 가라앉은 말간 눈을 가끔 안쓰럽게 돌아보던 영채가 가벼운 화제를 꺼내어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산초장아찌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께서 그걸 좋아하셨거든.”


 영채의 말투는 매일 부대끼며 살던 사이처럼 편안하고 스스럼이 없어 손윗사람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을 줬다. 


 “그리고 콩가루김칫국을 보면 정인 언니 생각이 나고. 오빠가 그걸 좋아해서 엄마가 정인 언니한테 전수했지. 엄마가 끓인 것과 정인 언니가 끓인 건 같은 맛이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는데, 둘 다 맛있었어. 너도 좋아하니, 콩가루김칫국?”


 문비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글쎄요. 먹어 본 적이 없어서요.”


 “한 번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영채가 되물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엄마가 그런 국을 끓여줬던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영채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마지막에는 짧고 낮고 씁쓸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단절 이후의 정인을 그 전에 자신이 알던 정인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 같은 걸 얻기라도 한 듯이. 


 “저런, 그거 되게 좋은 음식인데.”


 “좋은…… 음식이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좋은 음식. 문비는 고모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고모에게 음식의 좋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래, 좋은 음식. 먹으면 혀나 위장보다 마음이 충족되는.”


 “소울푸드 같은 거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가장 가까운 표현이겠지.”


 사실 콩가루김칫국을 제일 즐겼던 사람은 정인이었다. 영후와 결혼하면서 알게 된 그 음식을 정인은 무척 좋아했다. 기분을 포근히 안아주는 담요 같은 음식이라고. 하얀 순두부보다는 입체적이고 비지찌개보다는 담백한, 중용의 맛이라고. 


 “날콩가루가 익으면서 구름처럼 몽클몽클 엉기고 김치에서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배어나지. 우린 그랬어. 기운 없고 울적할 때, 몸이 으슬으슬 까라질 때, 따끈한 그 국 한 그릇 호호 불어가며 먹으면 왠지 가뿐해지고.”


 자분자분 말하는 고모를 향해 문비도 설핏 웃음기를 보였다. 엄마를 기억하는 고모의 방식이랄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다른 특유한 느낌이 있었다. 


 “고모 얘기 속의 엄마는 마치 어딘가에서 계속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 같아요.”


 그 느낌이 문비에게 소중했다. 


 “그러니?”


 잠시 생각하던 영채가 말을 이었다. 


 “나에게 있어 정인 언니의 죽음은 논리적인 측면일 뿐 정서적인 측면은 아니니까. 정인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에 슬프고 힘들었지만, 그 죽음은 전해들은 말에 불과하니까. 어쩌면 나는 정서상으로는 그저 정인 언니를 오래 못 만나고 있을 뿐이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이유가 다는 아닐 것이었다. 태도 혹은 관점의 영향도 있을 테다. 삶의 그 어떤 비의를 엿본 이들이 가질 법한.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엄마를, 혹은 다른 누군가라도,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그런 식으로 간직할 수 있을까요?”


 영채가 문비를 돌아봤다. 저 아이, 솔직한 감정을 내비치는 말을 하는 건 처음이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아이다 싶지만 그런 면조차 좋은 건 역시 핏줄이기 때문인 건가도 싶다. 외면보다 내면이, 보면 볼수록 정인을 닮았다. 그래서 감개무량하면서도 얼핏 염려도 든다. 그런 성향이 아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까봐. 정인이 그랬듯이. 


 신호등에 붉은 정지 신호가 들어오는 걸 본 영채가 차를 멈춤과 동시에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다.”


 스피커폰에서 옥선 여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승기 아범은 투석 잘 받고 있는 거지? 옆에 있으면 바꿔 봐라. 핸드폰이 내내 먹통이야.”


 “네 그럼요. 엄마 저 운전 중이라서 끊어요.”


 다급하게 통화를 끝낸 영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휴대전화가 스피커폰으로 설정돼 있다는 걸 깜빡하고 곧장 연결시킨 자신의 부주의함이 원망스러운 동시에 문비의 감정이 염려스러웠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틀어 바깥 풍경을 향하고 있는 문비는 무표정했지만 영채는 그 무미한 얼굴에서 닫혀 버린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자신을 둘러싼 사정을 짐작하고 마음을 다쳤구나, 영채는 안타까움과 염려가 담긴 눈길을 차마 문비에게 돌리지 못했다. 


 그랬다. 문비는 투석이라는 두 글자에서 많은 것을 해석해냈다. 처음부터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던 석연찮음이 그 해석을 통해서 해소됐다. 답은 간단했다. 네 글자, 신장 이식. 서운하니 마니 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기대 같은 걸 품지 않기를 잘했다 싶을 뿐이었다. 


 “오빠는 원치 않는 일이야.”


 영채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짧게 말했다. 오늘을 위해 영후는 어제 미리 투석을 받았고, 문비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는 제각각 신장을 공여할 수 없는 사정들이 있었다. 


 “저도 그럴 생각 없어요.”


 문비가 맥없이 그러나 단호하게 대꾸했다. 고모가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착한 척할 여유 따위 문비에게는 없었다. 


 넉넉잡아도 몇 년이면 멀어 버릴 두 눈,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조차 아직 모르겠는데. 단 하나의 가족이었던 엄마, 엄마이자 아버지였고 또한 자매이자 친구였던 엄마, 그 엄마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죽도록 혼란스럽고 버거운데. 무얼 더?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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