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정보화신도시, 미래 국가성장동력의 엔진

by 박연수


프성비.그림13.png



대한민국 4차산업혁명의 둥지

동북아의 실리콘밸리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를 꿈꾸는

송도정보화신도시와 인천공항


(1) 이름이 참 특이하지요.

“New Songdo Intelligent City” Project.

“송도정보화신도시”

1986년 이 프로젝트가 발표될 당시의 영어 이름이다.

당시는 세계적으로도 낯선 이름의 도시.

그 정체는 이 책의 ‘정보화신도시,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소상하게 설명된다.

이 “Intelligent City”라는 이름은 박 국장이 1986년 발표한 지 꼭 20년 후인 2005년, 흔들림 없이 번영하는 아시아의 국제업무 중심이자 도시국가인 싱가포르 정부가 야심 차게 발표한 싱가포르의 미래전략 “Intelligent Nation 2015”에서 재등장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름만이 아니라 그 미래전략의 목표와 내용이 싱가포르가 발표하기 20년 전의 “New Songdo Intelligent City”Project와 일맥상통하고 있는 점이다.


이 송도정보화신도시 프로젝트는 24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계획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30년 후를 준비하는 국가미래전략이었는데 시기적으로도 전략의 내용으로도 그 미래예측과 기대는 정확하게 맞았다.

이것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그리고 싱가포르의 미래전략의 이름과 내용이 명확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싱가포르보다 20년 앞서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가발전전략의 핵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잘 몰라서”이다.

다음으로는 새 대통령마다 준비된 자원을 활용하기보다는 자기 것을 새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경제도, 4차산업혁명도 이름만 다르지 국가발전전략으로서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5년 임기의 정부에서 국가발전의 근간이 되는 정책을 새로 만들고 그에 따른 제도를 가다듬고 예산을 확보하여 기본을 만들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매번 시작만 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정치와 정부가 국가발전의 큰 흐름을 형성해주지 못한 것이다.

많은 비판론자들은 정치와 정부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꽤 오래된 일이다.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HUB 정책을 세우고 송도정보화신도시와 인천공항이라는 인프라와 경제자유구역 제도를 만드는 데 무려 30여 년이 걸렸다.

이제는 이것이 4차산업혁명 시대 국가발전전략의 무기로 쓰여야 할 때다.

이것을 제대로 그리고 목적대로 ‘활용’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40여 년 전 저임금에 기댄 우리나라 제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정보화신도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올 첨단기술의 시대를 대비하여 국가의 미래와 젊은 일자리를 준비하고자 했던 당사자로서, 그동안 그 원대한 기획을 실현시키는 데만 온 신명을 기울이느라 이 미래전략의 내용과 효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을 늦게나마 보완하는 심정으로 정리를 했다.

정치의 고질적인 풍토가 쉬이 고쳐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좋은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면서 이 작업이 헛되지 않을 것 같은 기대를 안고 책을 낸다.


(2) 잘 만든 도시 하나 열 나라 안 부럽다

이 미래전략은 “이제는 도시가 경쟁력이다”라는 전제 아래 짜인 것이다.

삶의 질도, 미래 일자리도, 국가성장도, 국가 경쟁력도 모두 도시에서 나온다.

첨단기술과 최고의 환경,

이 두 가지를 함께 갖춘 미래형 신도시를 만들고 국제비즈니스가 둥지를 틀게 해서

미래를 열어나가는 젊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꿈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송도정보화신도시의 목표이다.

첨단기술이 녹아져 있는 도시의 최고봉은 ‘정보화 도시(Intelligent City)’이다.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AI, IoT, Big Data, 자율주행차, 등의 첨단기술 기반의 도시인프라를 구비 운영하여 도시의 Intelligent화를 촉진하고 비즈니스의 성공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줌으로써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IT, BT, NT 분야의 연구와 관련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궁극적으로는 첨단기술의 융합환경이 좋아짐으로써 융합생태계(FT)가 활성화되어 다시 첨단기술이 창출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젊은 일자리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세상의 돈과 인재가 모이는 핵(Platform)이 되는 것이다.

돈은 돈이 되는 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재는 환경도 중요시한다.

이 시대의 인재는 삭막한 환경에서 살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첨단기술 인재도, 비즈니스 인재도, 살기를 원하는 도시의 첫 번째 조건은 삶의 질이다. 좋은 환경, 건강한 환경, 안전한 환경, 재미있는(FUN) 환경, 자유로운 환경 등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최고의 인재들은 이 모든 것이 최고로 갖추어진 곳을 원한다.

송도정보화신도시가 첨단기술과 함께 최고의 환경을 도시전략의 다른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이유다.

다행히도 첨단기술은 환경을 좋게 하는데도 크게 소용이 된다.

첨단기술과 환경은 강한 시너지 관계이다.

그래서 송도정보화신도시는 좋은 환경과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도시를 구현하여 IT, BT, NT, FT의 융합생태계와 국제비즈니스서비스 HUB를 태동시킴으로써 첨단기술의 시대를 이끌어 국가성장동력의 한 핵으로 역할을 하는 한편 지속적인 미래 일자리를 창출하는 국가발전전략적 미래신도시로 기획되고 추진되었다.

(3)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까지

이 프로젝트는 1986년, 동북아의 국제비즈니스 HUB 건설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기획된 이래 송도정보화신도시, 인천국제공항, 인천대교 등 거대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제도를 탄생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당초 무려 24년의 사업기간으로 기획되었다.

정부가 수립된 이래 최초의 획기적인 장기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승인, 매립공사 등 도시건설 단계에 이르는 데만 10여 년이 걸렸고 본격적인 도시건설은 2001년부터야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크게 기여한 이들은

3인의 인천시장과 4인의 대통령이다.


1986년 박연수 인천 도시계획국장이 기획, 박배근 시장에게 보고하여 채택

1987년 박배근 시장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 추진 동력 확보

1988년 이재창 시장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 대통령 지시 확보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영종 용유 무의도를 인천으로 편입시켜 줌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사업을 승인

1989년 이재창 시장 송도정보화신도시 건설 및 인천공항 건설지원 추진체로 ‘인천직할시 공영개발사업단’ 발족, 초대 단장에 박연수 임명

1992년 인천공항 착공

1998년 IMF사태 발발 국가적 경제위기 도래

2001년 행자부에서 근무 중이던 박연수 국장, 최기선 시장의 부름을 받아 기획관리실장으로 인천으로 귀환, 이 프로젝트를 다시 맡아 송도정보화신도시 도시계획수립 및 미국 게일사 투자유치협상과 도시건설을 주도

2001년 인천공항 개항

2001년 최기선시장 미국 GALE사와 국제업무지구(IBD 167만 평, 127억 불) 개발협약 조인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 국가’ 추진 지시 및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 국가’를 새 정부 핵심 어젠다로 천명하고 위원회 설치 및 인천대교 건설 승인

2005 인천대교 착공

2009 인천대교 개통


대한민국 국가 지도자로서의 대통령을 믿고 벌인 큰 꿈

: 33세의 일개 지방정부의 국장이 기획하고 추진한 역사적 프로젝트,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기획자가 믿었던 것은 단 한 사람,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진심으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면서 최종 결정권자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판단했고 믿었다.

만약에 우리가 제시하는 이 프로젝트와 국가발전전략이 제대로 된 것이어서 대통령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동북아국제비즈니스 HUB 정책과 송도정보화신도시 건설, 국제 HUB공항 건설, 인천대교 건설, 경제자유구역 제도의 도입 모두 하나같이 정부부처 차원에서는 말도 붙여보기 어려웠지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통령께 ‘직접’ 설명한 결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과연 무엇 때문에 정부의 막중한 수도권 억제정책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의 프로젝트를 승인하였는가는 “프로젝트 성공의 비밀”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선택과 집중 정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본인의 철학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경제자유구역법” 제정을 위한 결단을 내렸다.

대통령을 송도매립 현장으로 모셔서 최종 매듭을 지었지만, 처음에는 김대중 대통령 본인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추진은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대통령 특보단(정균환 특보단장)을 통해 재설득을 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끈질기게 건의를 한 결과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국가” 정책 추진을 지시하게 된 것.

1986년 인천시 차원(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의 정책이 2001년 명실공히 국가차원의 정책(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국가’)이 된 것이다.

그런데 훗날 알게 된 것이지만 같은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 분들이 있었다.

같은 시기 남덕우 전 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 국가 원로들이 직접 김대중 대통령을 청와대로 방문하여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물류허브 추진을 건의했던 것. 이것은 남덕우 전 총리의 주도하에 그동안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했던 관계, 재계, 학계의 경제계 인사들이 동북아경제포럼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을 위하여 수년 동안 연구한 결과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만들 수 있게 된 “인천대교”는 건설재원을 외자유치로 마련해 놓고도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표류하던 사안이었다.

정부가 승인하지 않았던 이유는 민자로 건설한 영종대교와 인천공항 고속도로가 계획 통행량이 미달되어 해마다 1,000억여 원을 국고로 보조해주고 있는 상황이라 다리를 하나 더 놓으면 적자 폭은 더 커진다는 우려 때문에 건설교통부는 물론이고 재경부에서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은 이것도 풀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임채정 위원장)를 설득하여 인천공항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을 모시고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으로 하여금 각 시도별로 국제화 전략을 브리핑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기실 우리가 이 행사를 기획한 목표는 두 가지로서 대통령 당선인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국제화 전략을 직접 듣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 내걸었던 ‘동북아국제비즈니스 중심국가’ 어젠다를 이어받아서 전년도에 국회를 통과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실효되는 것을 막는 한편, 인천대교 건설을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의외로 진보성향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더 진취적으로 새 정부의 제1어젠다로 ‘동북아국제비즈니스 중심국가’를 천명하고 이의 추진을 위한 전담위원회까지 설치하였으며 인천대교 건설도 승인하여 주었다.


역시 믿었던 대로, 기대하였던 대로 진보, 보수의 성향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책임진 대통령답게 큰 안목으로 나라의 앞날을 위한 대통령다운 결단을 행사한 것이다.

이 대통령다운 판단과 결단에 모든 것을 걸고 뜻을 세우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대통령을 설득한 것이 이들 거대 프로젝트의 성공비결이다.


(4)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완성하여 주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이제는 계획상의 모든 것이 준비된 셈이다.

목표도, 추진계획도, 해야 할 디테일도 제시하였고, 그것을 실현시킬 인프라도 마련되었다.

IT, BT, NT, FT의 융합 생태계를 조성하여 세계 4차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것.

인재와 비즈니스가 만나는 생태계를 조성하여 사업화가 이루어지는 동북아의 실리콘밸리를 실현시키는 것.

이들 생태계를 기반으로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허브를 달성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밝은 미래다.

그 리더십을 기다린다.



(5) 왜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하였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송도국제도시, 인천공항, 인천대교, 경제자유구역이 한 묶음이 되었을까요?

먼저 백지가 필요했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첨단기술을 심고, 최고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환경이 구축된 미래도시를 담기 위해서는 기존의 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콘셉트를 마음껏 그릴 수 있는 ‘우리 소유의 백지’가 필요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돈을 만들어야 했다.

이 거대한 사업은 애당초 인천시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고 시 재정을 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경영사업, 즉 매립지 조성과 도시개발 사업을 통해 백지도 확보하고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서 사업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송도 앞바다를 매립해서 “송도정보화신도시”를 만든 이유다.


인천공항도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했다.

인천신공항은 다른 공항들처럼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다. 송도신도시를 뒷받침하여 동북아국제비즈니스 허브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인프라로 기획되었다.

송도정보화신도시는 인구수용이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신도시들과는 태생이 다르다. 국가발전전략적 미래도시로 기획했고 ‘동북아의 국제비즈니스 HUB’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국제 HUB공항을 만들어 24시간 세계와 연결해야 했다.

따라서 이 공항은 송도신도시와 인접해 있어야 한다.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하는 송도정보화신도시와 최대한 인접할 수 있는 입지는 바다였고, 인연이 이끌고 전공분야의 전문성이 도와준 덕에 하늘이 주신 최고의 입지를 물색할 수 있었다. 당시 입지 타당성 검토 결과는 24시간 운영 HUB 공항의 기술적 적합성뿐만 아니라 뛰어난 경제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 건설의 최적지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같은 시기 같은 목표아래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한 일본의 간사이공항, 홍콩의 책랍콕 공항, 중국의 푸동공항,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확장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저렴한 부지 건설을 할 수 있었고 시작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다 “인천공항”을 만든 이유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인천공항이 개항되었으나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서울을 향해 건설되었고 하나뿐인 연륙교인 영종대교를 이용하여 송도국제도시까지 오는 데는 1시간이 훨씬 넘게 소요되어 무용지물이 되었다. 인천공항이 송도정보화신도시의 국제비즈니스 HUB를 위한 전략 인프라가 되기 위해서는 송도신도시까지 소요시간이 20분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교통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신공항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인천공항과 송도정보화신도시 연결은 인천의 몫이었는데 그를 위한 제2연륙교인 인천대교는 정부의 반대로 건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하여 어렵게 만든 인천대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멋진 21.4km의 세계적인 작품“인천대교”를 건설한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으로 하여금 나라의 미래를 위해 본인의 철학과는 다른 ‘선택과 집중’의 정책을 선택하도록 설득하여 이루어 낸 경제자유구역 제도.

동북아국제비즈니스 HUB는 규제가 많은 국내형 경제활동 환경으로는 가능성이 없다. 최소한 홍콩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법(Free Economic Zone Law)”을 제정한 이유다.


이전 06화꿈은 이루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