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맛이 있는 레시피
때론 감정은 사진처럼.
안쓰러움 3스푼, 오묘함 5스푼 깨달음 2스푼
영화를 보고 싶었던 '조커'가 드디어 넷플릭스에 나왔길래 얼른 이불을 덮고 엄마랑 같이 시청하였다. 영화관을 자주 못 가는 입장에서 OTT서비스는 굉장히 환영받는 서비스이다.
엄마랑 나는 호러나 스릴러를 즐겨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꽤 거친 욕설이 나오거나 싸움이 나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보며 심리적 분석을 하고 있었다.
'조커'는 영화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타인을 배려하는 부분들 가지고 있는 사람 같다. 갑작스러운 웃음을 참지 못하여 마치 속되게 말한다면,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이 쓰여있는 카드를 타인에게 준다. 또한 아픈 어머니도 혼자 부양한다.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마냥 착하다.
하지만, 조커는 꽤 증상들이 심하다. 망상장애와 웃겨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 상황과 치료조차 힘들고 빈부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과연 흑화가 안 되는 사랑이 과연 있을까?
물론, 조커의 행동들은 잘못이다. 폭력과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강박적인 몇 개의 부분에서 '나와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오버랩 드는 부분이 있어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었다.
조커의 증상이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사회복지사의 말투나 행동을 보면서 시청하니 마냥 '범죄자'의 낙인을 시키고 손가락질하기엔 사회라는 제 역할을 하며 도움의 손길이 조금이나마 있더라면 바뀌지 않았을까?
그래서 프로파일을 하는 이유도 앞에 쓴 내용처럼 '왜?'가 붙는 거 같다.
이런 생각이 영화 한 편을 보며 든 생각이라는 게 글을 쓰다 보니 좀 길어지는 것 같아서 나 또한 놀랍다.
이처럼 서양영화는 꽤 여운이 남는다. 뭔가 결말이 흐린 느낌이 나기에.
요즘 이런 식으로 국적을 안 가리고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보통 이런 스릴러의 악역에 연민 아닌 이해를 하면 '사이코'로 보는 경우도 꽤 있지만, 스릴러 말고도 부정부패와 싸우는 영화에서도 혼자 펑펑 우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범죄를 옹호하는 생각이 아니라 과연 그 상황이 아니라면 안타까움에 '이해하는' 표현을 쓰고 싶다.
영화든 실제경험이든 사진처럼 두고두고 기억을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