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4년도 벌써 3월에 접어들고 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시간 참 빠르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게 되었다면 나도 제법 나이를 먹었나보다. 나이를 먹어도 젊게 살고 싶은데, 마음이 실제보다 더 나이가 든 느낌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마음이 폭삭 늙어버렸다. 열정은 사라지고 의욕도 잿더미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따금씩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서처럼 '타다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하듯 잿더미도 다시금 연료가 될지 모른다는 끈덕한 희망도 피어나긴 한다. 여하튼 나이든 마음으로부터 오는 은은한 편안함도 분명 있지만, 사실은 이러한 느낌의 정체 혹은 실상이 일상에 대한 무감각 혹은 행복에의 불감증이나 소소한 기쁨들에 대한 냉대일까봐 겁이 난다.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정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온갖 쓸데없는 생각들로 지끈거리는 머리는 고작해야 지극히 사적인 휴지조각같은 글만 써내기 바쁘다. 조금은 우울하고 한랭건조하며 생기도 매력도 없는 글이지만, 그런 내면 깊은 곳의 시커멓고 희뿌옇고 묵직하고 존재감없는 덩어리들을 활자로 표현하고 뱉어낼 때면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진짜 감정과 의식의 파편들. 글로 써내고 나면 의외로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고 의미도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바깥으로 꺼내놓고 구체화시키기 전까지는 그렇게 무겁고 버거울 수가 없다. 특히 이러한 실존의 형태는 늦은 밤에,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과 공간 속에 홀로 놓일 때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재로서는 그런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나 역시 그것을 절박하게 바라지 않는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문제라면 또 어떤가 싶기도 하다. 내 인생을 책임지고 이끄는 주체가 오직 나라는 것 즉 자유의 본질은 의식하는 순간 인간 존재에 엄중한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어떤 자유는 세상으로부터 내버려짐과도 같다.) 한마디로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고 한계를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저런 책과 영상과 게시물을 봤지만 허사였다. 지식 정보를 입력하고 암기하고 흡수하는 일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도 효과도 없었다. 세상은 내게 소리없이 현실을 주지시키지만, 아직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것만 같아 나는 자꾸 무모해지고만 싶다.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까지 그러하듯 크고 작은 뻘짓과 허탕의 연장선 끝에 놓인 종착지를 규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시계인 것 같아도, 시곗바늘을 돌리려고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 시차가 좁혀지는 느낌을 받는다. 감사하게도 아직 내게도 신의 손길이 미치는 것 같다. 마음도 근육과 같은지 자꾸 써주지 않으면 퇴화하므로 걸음마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자꾸만 주저앉고 안주하려 드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다독거리며 일단 나아가기를 매순간 매초 반복하고 버텨야 한다. 내일이 오는 게 싫지만,어떻게든 꾸역꾸역 멱살이라도 잡고 일으켜 그놈의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찾아보기로 한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흔들리고 기뻐하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던 옛날이 가끔 그리워진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마음이 어렸지만, 그런 점이 너무나도 버겁고 세면대의 물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무감을느꼈지만 그런 느낄 수 있음의 상태도 축복인 것 같다. 사실 감정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유도하고 촉진해주는 일종의 감미료같은 것이 아닐까? 내일은 감정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찾아봐야겠다. 의미는 그렇게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줄 무언가로부터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어라, 가만보니 결국 글의 마침표가 또다시 생각으로 귀결된다. 아, 이 놈의 생각! 쓸데도 없는데 부피만 왕창 나가고 악취까지 나는 골치아픈 녀석들이다. 이러다 또 우물쭈물만 하고 끝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