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다, 라는 것은 삶에서 수많은 변수에 대한 포용과 관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과도한 통제욕구나 불필요한 주관으로부터 유연함을 가져다주고, 삶을 좀더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분명 삶이란 것은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것들로 점철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그럴 수도 있지'는 어떤 것들에 대한 눈을 흐리는 식으로 내버려두는 태도로 표현될 때가 있다. 마땅히 분노하고 비판해야할 것들에 순응하게 만든다. 자칫 불의에 눈을 감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럴 필요 없는 일들에 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태도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에 한번 체념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도 손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포용력의 얼굴을 한 '그럴 수'에 숨겨진 무책임함과 순진함, 무지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