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방 쌍놈의 후손이다
내 눈에 비치는 Hell조선의 역사 따위는
그저 까마득한 미지의 어둠 속 발악일 뿐이다
천지분간 못 하던 시절 펼쳤던 족보(族譜)
누군가의 3남과 4남 사이에 살포시 끼어들어간 양자(養子)
그 뜬금없는 눈엣가시 같은 기록을 확인한 날
그 날 이후 나는 영락없는 쌍놈의 후손이었다
족보를 사고 팔고 사칭하던 대혼란의 카오스
왜군에게 죽고 만주족에게 죽고 굶어죽고 맞아죽던 시대
원래 김씨가 아니었던 내 조상은 김씨가 되었다
김씨 집안의 족보에 살포시 양자로 발을 들였다
원래 성씨가 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양민으로 살면서 성(姓) 정도는 갖고 있었는지
그도 아니면 먼 옛날 망이 망소이처럼 성(姓)조차 없었는지
아득한 후손인 쌍놈으로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저 한 걸음 물러서서 읊조릴 뿐
내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잘못도 아니다
10선비 Hell조선 양반들이 잘못한 거다
나는 시방 Hell조선 역사 따윈 모르겠다
전쟁 한 번 없이 나라 팔아먹은 고좆임금 따위 궁금하지 않다
그 나라 밑에서 양반이랍시고 설치던 10선비들도 알 바 아니다
그 모든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족보를 벗어던졌을 때
본관과 문파와 몇대손 어쩌고 하는 귀신 주문을 버렸을 때
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났다
미지의 어둠 속 발악을 떨쳐낼 날개를 펼쳤다
쌍놈의 후손이라 감사하다
Hell조선에 빚 진 게 없어서 감사하다
임금이 팔아치운 나라에서 아무것도 받지 않아 감사하다
쌍놈이라 행복하다
질척거리는 유교탈레반의 집착에서 벗어나
나 혼자만의 날개로 머나먼 곳까지 날아오를 때
자유
<족보 따윈 불태워 버려라>
김춘수 시인님의 '꽃을 위한 서시' 중 한 구절을 오마쥬로 인용하면서 잠시 생각나는 대로 써 봤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족보(族譜)'라고 하면 '족발보쌈 셋트 아니에요?'라고 되묻는다는 기사가 있어서,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뿌리찾기? 진정한 뻘짓이다.]는 제목의 글이었는데요.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brunch.co.kr/@0a2c72370ba24fa/96
뭐, 시 쓰는 건 저랑 안 맞는 것 같습니다. 20여 년 전에 시 쓴다고 깝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그냥 중고딩 때 읽었던 교과서 명시들을 패러디하는 수준이더군요. 아니다 싶으면 관둬야죠;;
그래도 가아끔 (19금) 웹소설 쓸 때 중간중간 시 비스무레한 걸 쓰긴 합니다. 이번에 쓴 것도 언젠가 웹소설에 들어갈 수 있겠네요. 가칭 '뒤주링거의 조상귀신' 정도에 쓸 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한글날이네요. 세종대왕께서 좋은 문자 만들어 주신 덕분에 그 문자로 Hell조선 유교탈레반 문화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님께서는 분명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