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기사 하나 인용하고 시작하겠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455342?sid=102
남의 조상 유골을 훔쳐가서 인질극(?)을 벌이다니. 정확하게는 인질극이 아니라 '골질극'이겠네요. 남의 뼛가루를 가져가서 질물로 붙잡아 둔 채 현금을 요구했으니 골질극(骨質劇)입니다.
아무튼 이런 어이없는 기사를 보고 나니... 과거 중국 고전에서 봤던 어이 털리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중국 3대 고전인가 / 4대 고전인가에 들어가는 대하드라마 '초한지'의 한 장면입니다.
초한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이름만으로 19금인 남자'죠. 중국말로 부르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말로 부를 때에는 발음이나 어감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남자. '유방'입니다.
유방이 건국한 한(漢)나라는 지금까지 중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별로 크지도 않은 땅떵어리에 대(大) 자를 붙이며) 한(韓)민족이라고 스스로 지칭하는 것처럼,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한(漢)족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천하를 뒤덮는 19금 남자 유방의 나라를 자신들의 정신적 원류(原流)로 받아들이는 거겠죠.
그 대단한 유방이 인간전략병기 최흉살인마 '항우'와 맞짱 뜨고 있을 때. 항우는 서서히 세력을 잃어 가며 조급해지고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병사와 백성을 싹 다 죽였으니 세력을 유지할 수가 없죠. 항우 직속 부하들도 사람인 이상 계속 식량을 공급해 줘야 하는데 보급해 줄 백성들이 항우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있다면 이미 게임 끝입니다.
조급해 하던 항우는 (귀족 출신답지 않게) '잔챙이 협박질'을 시전합니다. 유방의 친아버지, 친어머니, 정실아내를 포로로 잡고 있던 걸 활용해서 '인질극'을 벌이죠.
항우는 유방의 친아버지를 끌고 유방이 주둔하고 있는 성 앞으로 나아갑니다. 큰 솥에 물을 가득 담고 펄펄 끓이는 퍼포먼스(!)도 곁들입니다.
항우가 유방을 향해 크게 외칩니다.
"(이름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음란해지는) 유방 이 XX야! 너 때문에 천하가 더러워지고 있다!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니 애비를 죽여 국을 끓이겠다!"
향후 유교문화에 기반한 한나라를 건국하게 되는 (19금 남자) 유방은 성문 위에 서서 아래쪽의 상황을 내려다 봅니다. 항우의 말대로, 저기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은 유방의 친아버지가 맞고 옆의 큰 솥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진나라 병사 20만명을 생매장시켜 버리는 상남자(?) 항우가 유방의 친아버지를 죽여 국을 끓이겠다고 했으면 실제로 그걸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유방의 답변이 가관입니다. 유방은 아주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항우! 일찍이 초 회왕의 앞에서 그대와 내가 의형제를 맺었다! 즉, 내 아버지는 니 아버지인 것이다!
여기서 내 아버지를 죽여서 국을 끓이겠다고? 그럼 항우 니가 스스로 아버지를 죽이고 국을 끓이겠다는 소리다! 그 정도 법도도 모르느냐?
그래도 굳이 아버지를 죽여서 국을 끓이겠다면 어쩔 수 없다. 국 끓여라! 다 끓으면 나한테도 국물 한 그릇 다오!"
엄훠나 세상에 맙소사. 초한지에서 이 드립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신빡한 패드립이 있다니. 유방은 진짜 천잰가봐.
밑바닥에서 시작해 황제 자리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다르긴 한가 봅니다. 솔직히 저도 소시오패스(!)라고 자부합니다만... 유방 급 패드립을 읊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의 보폭이 달라요.
뭐,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입니다. 아인슈타인 급으로 복잡한 과학이론을 만들어 낸다면 저 같은 일반인이 학습해서 따라할 수 없습니다만 이런 패드립은 얼마든지 학습할 수 있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고전에 나오는 패드립 따라할 수 있습니다.
유방의 패드립을 오늘에 되살려. 저 유골함 도난 골질극 사건에 응용한다면...
"유골함 그거 뭐 있다고 훔쳐가냐? 사골국 끓여 먹으려고? 잘 끓여 먹도록 해라. 국물 맛있으면 나한테도 국물 한 그릇 다오!"
라고 받아치면 되겠죠. 28억 같은 헛소리 그만하고 조용히 찌그러지라는 얘기는 보너스로 덧붙여 주시고.
물론 이 정도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대략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로 마무리해야죠.
봄날이 다가오는 어느 날. 회사 점심이 비건데이(...)라 실망하는 와중에 황당한 기사를 봤더니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게 되네요. 다시 일하는 척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