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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레드오션 투쟁기 (1)

<프롤로그>

by 테서스


“아무리 갈 곳이 없어도 이 회사는 가지 마라.”


제가 35살에 ‘무늬만 대리일 뿐 연봉이나 하는 일은 그냥 중고신입’인 수준으로 취업했었던 회사. 그 회사를 취업소개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저 댓글이 있습니다. ‘아무리 갈 곳이 없어도 이 회사는 가지 마라’, 이 한 문장으로 회사소개(?)를 할 수 있죠;;


그 회사에 ‘무늬만 경력직’으로 입사했던 게 13년 전, 즉 2010년이었습니다. 헬오브지옥 같은 직장생활이었죠. 힘들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2010년에는 무슨 노동시간단축 같은 것도 없었고, ‘포괄임금’이라는 말만 걸면 주 60시간 70시간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무리 갈 곳이 없어도 이 회사는 가지 마라’는 곳이면 대략… 저녁 9시가 기본 퇴근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버텨야 했습니다. 35살 늦깍이 ‘무늬만 경력직’인 상태로는 버티는 것 외에 답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시절.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미래를 상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언젠가 ‘성공한 직장인’이 될 날을 꿈꾸며, 조금씩 조금씩 글을 썼습니다.


무늬만 경력직. 한국식 세는 나이로 30살에 취직했다가 1년10개월 만에 퇴직한 중고신입이 ‘직급만 대리’를 받아 법무팀 막내가 되고, 대부분의 일들을 처음 배우고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알아가야 했던 시절.


35살, 직급만 대리고 다른 회사 사원보다도 적은 연봉을 받으며 ‘여기서 물러나면 진짜 갈 곳이 없다’는 절실함으로 하루하루 야근을 버티고 토요일 출근을 버티고 잡일을 버텨야 했던 시절.


그 시절을 버티기 위해 꿈을 꿨습니다. 그 꿈을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모아 두려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억대연봉 받는 직장인이 되어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이 글을 세상에 공개하자.’라고 다짐했었습니다.



이제 2023년. 35살 중고신입은 48살이 되었고, 여러 차례의 이직을 거치며 부장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연봉도 마침내 앞자리 단위를 하나 더 붙여 ‘억대연봉’이 되었습니다. (회사생활과는 무관하지만) 와이프가 재테크 잘 해 줘서 경기도 2주택자가 되기도 했구요.


성공…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3년 지나는 동안 인플레이션이 꽤 심했고, 집값 폭등한 건 와이프 덕분에 어찌어찌 만회했습니다만 그건 제가 성공한 거라고 볼 수는 없죠. 지금의 억대연봉이 13년 전 중고신입 시절의 억대연봉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직급도 13년 만에 올라온 것 치고는 꽤 빠른 성장이긴 합니다만, 제 나이 48살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저 남들에 비해 7~8년 늦었던 걸 만회했다는 정도일 뿐입니다.


아직 직장인으로서 완전히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글 보시는 많은 독자님들이 그러하시듯 저 또한 미생(未生)일 뿐이지만.


그래도, 13년 전 중고신입 무늬만대리 시절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이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졌습니다. 35살에 블랙기업 수준으로 악명 높은 회사 취직해서 처절한 심정으로 버티던 시절, 내면의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썼던 ‘자기계발서’를 펼쳐 놓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일부는 편집해야겠죠. 13년 전 초안 잡았던 글을 그대로 내놓는 건 독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그 시절 저와 함께 했던 동료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글 쓰면서 적절히 편집하겠습니다.


자, 이제 13년 전의 저 자신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다른 회사 신입보다도 낮은 연봉, 주 70시간 이상 되는 노동시간, 토요일 근무, 미치도록 빡센 업무강도를 버티면서 “중고신입 주제에 자기계발서를 써 보겠다”라는 야심(!)을 품었던 저 자신으로.


13년 전 제가 썼던 머리말부터 옮기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경어 생략합니다.



*****


머리말 – 나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쓴다


“부자가 되자”는 책은 많다. “부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생활을 이렇게 바꾸자”는 책도 많다. 자기계발서가 세상에 넘쳐나고, 사람들도 문학서적 대신에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면서 내 주위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 중에, “이 책을 읽고 나서 감명받아 그대로 했더니 부자가 되었다”라는 성공사례를 들은 적이 없다. 자기계발서를 쓰고 나서 책팔아 대박났다는 얘기는 꽤 많이 들었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 성공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었다.


왜 그럴까?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는 건데, 그 결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책 쓴 사람 한 명 뿐이고, 책 읽는 사람들은 계속 제자리다. 왜 그럴까?


우리들, 하루하루 정신없이 직장생활하면서 착실하게 저축하고 시간 쪼개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우리 일반서민, 직장인, 중소기업 창업자들은 자기계발서의 성공기법을 왜 실천하지 못할까? 우리가 뭔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서점에 넘쳐나는 자기계발서가 잘못된 걸까?


일단 우리는 숫자상으로 다수파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다수결의 원칙상, 자기계발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고, 제대로 된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될 일이다.


그런 게 없다면, “자기 스스로 자기계발서를 쓰면” 된다. 자기계발서 쓴 저자들은 거의 다 성공했다고 하니까.



자신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쓰기 전에, 우선 기존 자기계발서의 문제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존 자기계발서들의 패턴을 보자.


뭐,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자가 되려면 열심히 살아라”이다. 사실 너무나 뻔한 얘기인데, 그 열심히 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투자파”와 “블루오션파”로 나뉜다.


투자파는 열심히 사는 방법론으로 지금 당장 쓰는 돈을 줄이고 그 돈으로 투자하라고 가르친다. CMA통장을 개설하고,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연금보험을 들고, 뭐 기타등등… 그런데, 이들 책 상당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그냥 어느 직업을 가지든 간에 열심히 돈을 모으고 투자하라는 내용을 반복하고, 인생 내에서의 직업과 성장 로드맵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자기 직업이 재미있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인지, 직업 자체의 성장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쪽이 이쪽이다.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하는 쪽은, 한때 유행했던 “블루오션” 계통의 자기계발서가 조금 더 낫다. 그런데, 이쪽 편에서는 “아이디어”만 강조하고, “열심히 살아라”는 쪽은 별로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금 당장 종사하고 있는 직업, 그 직업이 속한 업종이나 소속회사의 장래성 판단,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존 직업과 어떤 관련성을 가질 수 있는지, 등등의 문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시장을 개척하자는 쪽이다. 블루오션의 기본 개념 자체가 남들이 생각 못하던 것을 시작해서 초과수익을 올리자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편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내용의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자기 직업에 상관없이 열심히 돈을 모아 투자하고, 블루오션 공략을 위해 매일 열심히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보면, 정작 자기 직업은 잊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직업은 월급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자기가 살아갈 길은 저 멀리 어딘가 다른 곳에 있을거라 생각하고 “사업구상”에만 열을 올리는 나날을 보낼 위험이 생긴다. 그 사업구상이 소자본 창업이든 소자본 투자든 간에, 거기에만 집중하고 자기 직업과 직장의 성공은 뒷전이 된다.


결국, 남들 다 다니는 직장에서 남들 다 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일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하루종일 창업 아이디어만 생각하면서 주식게시판만 들여다보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정리해고”일 가능성이 높고, 그 뒤에는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의 실패”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우리 모두 간접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고 우리들 대부분도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자기계발서에서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는 투자와 블루오션의 환상적인 미래를 바라보기 전에, 우선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 종사하고 있는 직업을 돌아보자.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높은 연봉, 탄탄한 복지, 적절한 업무량과 휴식시간,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회사 자체의 높은 순이익. 소위 말하는 5대 그룹과 공기업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친다.


창업으로 대박났다는 사람들도 많다. 답답한 직장생활을 버리고 과감히 뛰쳐나와서, 인터넷 쇼핑몰 사업 하나로 연매출 100억이 넘는다는 사람들 기사가 연일 신문지상에 올라온다.


그러나, 우리들 대다수, 자기계발서를 읽고 미래를 위해 하루 30분이라도 투자하려는 우리들 대다수 직장인과 소자본 자영업자들은, 탁월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도 아니고 투자기법에 능통한 사람들도 아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우리는 IT창업자나 게임개발자가 아니다. 삼성맨도 아니고 행시 합격자도 아니며 펀드매니저도 아니다. 우리가 밥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 그 일을 제공해 주는 회사들의 대부분이 블루오션을 달려 나가는 선두주자가 아니다.


우리는 “경쟁자가 넘쳐나는 레드오션에서 열심히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 모아 투자하고 투자기법을 공부해라”는 말도 아니고,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공략해라”는 말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헤엄치고 있는 거센 경쟁의 바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생각, 현재의 직업과 직종에서 성공하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방법, 혹은 힘들게 시작한 작은 사업에서 주위의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정공법”이다.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탁월한 아이디어와 투자기법이 없는 우리들 99,999명이 살아가는 정공법 –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얘기하기 위해, “경쟁이 넘치는 사회에서 어떻게 더 열심히 경쟁해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성장할 것인가”를 얘기하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쓴다. 내가 살아가면서 들은 얘기, 보고 경험한 일들,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과 다른 조직들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모습들을 정리해서, “레드오션”이라는 초 경쟁 시장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얘기를 쓰려고 한다.


블루오션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레드오션 그 자체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겠다는 역발상”을 다뤄 보려 한다.


“역발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블루오션과 투자로 한 방에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 “편법”이고, 현재 직업에 충실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공법”이 아닐까 한다. 즉, 정공법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의 역발상인 셈이다. 자기 현재 자리, 현재 직업에서 성공하는 법을 돌이켜보고 거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선일 거라는, 아주 평범한 사고방식에서부터 시작해서 자기계발서를 써 나가려고 한다.


물론, 이 책도 모든 자기계발서가 가진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점이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왜 성공해야 하는지, 왜 지금 가족을 위해 뼛골 빠지게 일하고 상사에게 굽신거려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이 글에도 없다.


그 해답은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집에서 웃고 있는 당신의 어린아이, 당신 눈에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운 배우자, 연로하신 부모님, 혹은 당신의 편안한 노후생활, 혹은 당신 인생에서 스스로 느끼는 자기만족. 그 모두가 해답일 수 있고 오답일 수 있다.


이미 그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 스스로가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도움을 얻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만의 자기계발서를 써 나갔으면 한다. 여러분 스스로의 직업과 업종에 맞추어, 여러분의 상황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위한 맞춤형 자기계발서를 쓰고 그에 따라 성공하는 과정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먼 훗날, 여러분 각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땐 참 열심히 살았었지.’라고 생각하며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13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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