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 이어 서술합니다.)
(3) 건설공사에 ‘적정 시장단가’가 있는가?
적정 시장단가를 논하기 전에! 건설공사에도 ‘권장소비자가격’과 비슷한 컨셉은 있습니다. 70년 넘은 성숙산업답게 뭔가 표준가격을 제시하긴 합니다.
제가 예전 ‘건설법무 개론’에서 잠시 언급한 ‘표준품셈’이 건설공사의 표준가격 비슷하게 작동하긴 합니다.
그러나, (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표준품셈은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이게 현장의 경쟁관계 / 각 투입 노무인력의 숙련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작성한 단가이기 때문에, 실제 건설공사금액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관급공사 입찰시 표준품셈 기준으로 예가 책정하면, 최종 낙찰가는 예가의 70% 초반까지 내려갑니다. 공무원 측이 작성한 예정가격이 최종 낙찰가의 140%에 이르는 현상. 이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건설업니다.
그렇다면, ‘적정 시장단가는 표준품셈 산출 가격의 70%로 일괄 계산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 하자소송 등 법원 분쟁에서는 그렇게 계산하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판결은 내야 하니까요.
다만, 이 70%도 일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거든요.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덩치 큰 회사들은 현장 인력 회전율이 좋고 / 철근 시멘트도 대량구매 가능하며 / 관리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매출 대비 본사인력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인당매출 따지면 중견건설사보다 2~3배 높아요. 일 잘 합니다.
(지금은 평당 700만원 얘기 나올 만큼 많이 올랐지만) 2010년대 초반 기준으로 ‘평당 아파트 건축비’를 약 300만원으로 봤습니다. 소위 ‘중견건설사’라고 할 수 있는 건설사들은 아파트 공사 내부 원가율을 평당 300만원 기준으로 책정했다는 얘기입니다.
허접한 건설사들은 그걸로도 적자 본다고 징징거렸죠. 극한의 원가절감을 하는 회사들은 270만원까지 끌어내렸구요. 뭐 270만원까지 끌어내리려면 현장직원 및 하도급업체들 다 죽어나가지만 아무튼 그 때는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현대건설의 평당 아파트 건축비는 250만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직원 연봉이 타 건설사에 비해 훨씬 높은데도 현장 건설단가는 낮았습니다. 진정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혁신’이죠.
표준품셈은 너무 높고, 각 현장별 공사단가를 산출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대형건설사’가 더 쉽게 원가절감하여 더 많은 공사이익을 남기는 상황. 이게 대한민국 건설업입니다. 아주 자본주의적이죠.
이 시장에서, 공정위가 개입하여 적정 시장가격을 산출하고 이걸 기준으로 정당거래/부당거래를 판단한다?
단언컨대, 이거 못합니다. 공정위에서 건설기술자 특별채용해서 산출해도 못해요. 건설사 측이 수많은 사례를 들어 반박할 겁니다.
결국, ‘건설공사’에서만큼은 각 기업집단 소속 건설사들이 계열사 물량 몰아서 수행해도 공정위가 못 건드립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건설사가 계열사 공사 한 사건을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으로 의율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아래에서 조금 더 살펴보죠.
(4) 계열사 공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거의 대부분 삼성물산이 짓습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도 거의 대부분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가 짓습니다. 현대자동차 관련 건물도 아마 현대건설이 지을 거예요. 뭐 현대 쪽은 ‘범 현대 가문’으로 해서 현대산업개발 / KCC건설 등 몇 개 더 있으니, 현대중공업 등의 건물은 누가 짓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계열사 공사는 해당 계열 건설사가 한다’는 현상에 대해. 공정위가 모를까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 없죠. 대한민국 상위 기업들로부터 계속 보고자료 받고 직권조사도 자주 하는데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정위가 이걸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행위’로 조사하지는 않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지을 때 ‘왜 삼성물산에 맡겼냐? 현대건설도 반도체공장 잘 지을 수 있는데 왜 입찰 안했냐?’ 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물론, 효율성/보안성/긴급성 사유도 준비해 두겠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설계도는 핵심 영업비밀입니다. 절대 보안 유지해야 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계열사 삼성물산’에 맡겨야 합니다. 다른 일반 건물들도 (영업비밀의 중요도는 낮을지언정) 다 마찬가지구요.
결국, ‘계열사 공사’는 부당지원 여부를 따지기 어렵습니다. 뭐 공사비를 표준품셈의 3배 정도로 뻥튀기했다면 모를까, 표준품셈 범위 내에서 계약하고 / 수주한 계열 건설사가 합리적인 규모의 경제로 원가절감하는 수준에서는 문제될 게 없습니다.
건설업 얘기는 어느 정도 끝났는데, 잠시 다른 산업도 살펴보죠. 건설회사 다닌다고 해서 다른 산업 사정 모를 이유는 없으니까요.
(5) 공사 아닌 ‘계열사 장사’
건설공사 말고도 소위 ‘계열사 장사’를 하려면, 당연히 공정거래법 준수하면서 해야겠죠. 정당가격을 산정하기 어렵거나 기타 사유로 부당지원 논의 안 나오는 영역들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시장가격 자체가 없는 경우 : 특허사용료, 브랜드 제휴
특허사용료. 이건 시장가격이 없습니다. 특허 자체가 ‘해당 특허 기간 동안 특허권자 마음대로 한다’는 컨셉인데 시장가격이 있을 수 없죠. 부르는 게 값입니다.
특허권을 사거나 전용실시권 사용계약을 할 때, 한 방에 현금 쏘고 가져올 수도 있지만 “~관련 매출액의 ~%”로 계약할 때가 많습니다. 통상 R/S(Revenue Share)라고 하는데, 실시권 받는 쪽은 위험을 분산하고 / 파는 쪽은 사업이 잘 될 경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죠. 안 되면 꽝이고.
이 R/S비율은 진짜 사안마다 다 다릅니다. 매출 1%로 할 때도 있고, 특허권 거래가 활성화된 미국은 20% 이상 줄 때도 있다고 합니다. 평균치로 보면 대한민국이 좀 낮은 편이라고 하지만 편차가 커서 별 의미 없는 수준입니다.
특허사용료 못지않게 편차 큰 게 ‘브랜드 제휴’입니다. 맥도날드, 버거킹, 스타벅스 등 해외 브랜드를 가져올 때도 있고 국내 브랜드를 프랜차이즈 제휴 형태로 가맹사업 운영할 때도 있지만, 이것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매출의 3~7% 사이인 것 같은데 브랜드파워에 따라 달라지겠죠.
이 영역에서 시장가격 산출하기 어렵다는 건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보죠.
2) 그룹 CI 상표사용료
CI. 원래는 회사 상호를 나타내는 상징인 Company Identity의 줄임말인데, ‘그룹 CI’는 (한국적 정서에서) 같은 계열사 소속 회사들이 로고와 상호명을 통일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SK, LG, 롯데 등등 유수의 계열사들이 자기 그룹의 로고와 상호명을 통일해서 쓰고 있죠.
이 CI를 상표로 등록하고 상표사용료를 받는 게 각 그룹 지주회사의 주된 수익원입니다. 대부분의 지주회사는 독자적인 사업이 없고 오로지 자회사를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으므로, 지주회사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각 계열사에 상표사용료를 받는 거죠.
그런데… 이 상표사용료가 천차만별입니다. 낮게 받는 그룹은 0.1%, 높게 받는 곳은 0.75% 받습니다. 편차가 너무 커요. 시장가격? 당연히 없습니다.
편차가 크긴 합니다만, 각 계열사 입장에서 보면 ‘지주회사에 삥뜯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룹 CI 있든 없든 자기사업 잘 해 왔는데 갑툭튀로 지주회사 연락와서 돈 내놔. 뭐 그런 느낌이죠.
특히, '혼자 잘 살던 상당히 큰 규모의 회사'가 M&A로 매각되어 다른 기업집단에 편입된다면 이런 느낌이 더 심할 겁니다. 그냥 구체적인 이름으로 예를 들게요. 현재 ‘CJ대한통운’이 그런 사례입니다.
과거 대한통운은 (금호에 인수되었다가 감당 못하고 토해내서 법정관리 갔을 때) 혼자서도 잘 살았습니다. 대한민국 육상운송업계 1위였고, 전국에 물류터미널이 쫙 깔려 있었습니다. CJ마크 같은 거 없어도 ‘대한통운’ 이름 네 글자만으로도 이미 누구나 다 알아듣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CJ그룹에서 인수하더니 ‘오늘부터 CJ마크 달고 로고 붙이고 매출액의 0.5% 내놔.’라고 합니다. 그 마크 없어도 이미 운송업계 1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회사였는데, 거기에 (강제로) 로고 붙이더니 0.5% 뜯어갑니다. 이 정도면 ‘삥뜯긴다’라고 할 만 하겠죠?
즉, 그룹 CI 사용료는 사실상 ‘지주회사 운영비 갹출’입니다. 부당지원 얘기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도 0.5~0.7% 수준으로 많이 받는 그룹이라면 ‘니들 로고가 뭐 그리 특별하다고 그렇게 많이 받냐?’라는 얘기 나옵니다.
실제로, 공정위에서는 그룹 CI 사용료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적용 여부를 검토했었다고 합니다. 카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꽤 현실적인 얘기였어요. 조만간 조사 들어올 거라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걸 문제삼지 못했습니다. 일단 시장 정당가격 책정이 어려웠고, 공정위 스스로가 지주회사 체계 전환을 촉진한 측면도 있거든요.
대한민국 공정위는 재벌들을 준법절차로 끌어들이기 위해 현재의 3단 지주회사 체계를 확립했고,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를 전면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를 끊어내도록 유도하면서 지주회사로 바꿔 가도록 했습니다. SK, LG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이 절차에서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지주사 체계로 바뀌었죠.
물론, 삼성과 현대차는 아직 순환출자가 남아 있어서 지주회사 전환 못했습니다. 그 반대급부 때문인지, 삼성 같은 경우 삼성 CI에 대해 사용료를 못 받고 각 계열사가 CI 상표권을 공동소유하는 형태로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공정위는 그룹 CI 사용료를 건드리지 않았고 각 그룹들은 ‘자율적으로’ CI 사용료 책정해서 받고 있습니다. 0.1% ~ 0.75% 사이 편차로요.
3) 사실상 독과점 형성된 영역
위 CI사용료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품’에서도 사실상 독과점이 형성된 영역이 있습니다. 짜잘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자영업자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독과점 업체가 다 장악하고 있는 사업영역, 그런 게 꽤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가 ‘빵’입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CJ그룹의 뚜레주르. 그 미만 듣보르자브 끝.
예를 들어, SPC그룹 계열사 내지 사업부서인 ‘베스킨라빈스’에서 직원 선물용으로 케잌/빵 상품권을 구매한다고 해 봅시다. 이 상품권 제공 및 공급계약에 대해 입찰 붙이면…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 외에는 사실상 입찰 들어올 곳이 없습니다. 듣보르자브 개인사업자에게 케잌 몇천개 장기제작 의뢰할 수는 없잖아요.
CJ계열사가 직원 선물용으로 케잌/빵 구매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 외에는 입찰 들어올 데가 없어요. 계열사 말고 다른 곳에 시장개방해도 들어올 사람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 외에 ‘침대’도 사실상 독점입니다. 에이스침대, 시몬스침대, 대진썰타침대 그 미만 듣보르자브가 있었는데 위 3개 업체가 IMF 전후로 M&A 일어나서 다 계열사 됐어요. 누군가 직원들에게 침대할인판매 한다면 누가 입찰 들어와도 다 계열사거래입니다.
현대-기아차, (인수 마무리되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쪽도 비슷하겠죠. 계열사 회사 물량을 다른 곳에 개방한다 한들, 이미 독과점이 형성된 상태라 대형사업자 중심으로 입찰조건 걸면 들어올 회사가 없습니다. 돌려막기 할 수 밖에 없어요.
뭐, 공정위가 회사분할명령을 내려서 아예 계열분리 시켜버리면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공정거래법에 그런 절차는 없습니다. 결국 속수무책.
4) 보안성을 이유로 드는 경우
앞에서 잠시 언급했었는데, ‘그룹 내부 전산망 구축’은 무조건 계열사 IT회사에서 합니다. 그룹 영업비밀에 보안 지켜야 하잖아요. 이건 공정위 아니라 그 누가 와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계열 IT회사’의 지분율을 살펴보면… 오너 일가의 지분이 쪼큼 높습니다. 다른 계열사에 비해 많이 높아요. 40% 넘는 건 기본이고 100% 달성하거나 그 근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계열 IT회사에 전산 물량 몰아주면… 당연히 회사 가치 폭등하겠죠? 오너 일가 지분도 폭등하겠죠? 폭등한 상태로 다른 회사와 합병하면 지분비율 평가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해져 오너 일가가 그 다른 회사 장악하겠죠? 그렇게 몇 번 하면 지분 짱짱해지겠죠?
그래도 부당지원으로 엮기 어렵습니다. ‘보안성’이 있잖아요. 게임 끝.
5) 삼성 웰스토리 사례
위 4)까지의 사례를 보면, 계열사 간 거래 상당수가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허, CI, 독과점, 효율보안긴급 등 사유가 많고 / 그런 사유 없어도 ‘정상가격 산정 불분명’ 상태면 정당행위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21년에 공정위가 크게 한 방 터뜨렸죠. 삼성그룹의 사내 급식을 책임지는 ‘웰스토리’와 그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를 상대로 무려 23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역대 최고 과징금이라고 하네요.
여기서 공정위는 ‘정상적인 시장단가’를 산정했었습니다. 급식업계 회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수준인데 웰스토리는 15% 수준의 이익률을 보이므로, 돈 잘 버는 만큼 부당지원이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그런데 말입니다.
이 시장단가 산정방법이 적정한 걸까요? 중소기업 대기업 가리지 않고 ‘전체 평균 영업이익률’을 산정하고, 국내 최대 회사인 삼성전자에 급식 공급하는 웰스토리의 이익률과 비교해서 부당지원으로 판단한 게 합리적일까요?
뭐 아직 고등법원 판결도 안 나왔습니다. 처분 후 2년이 넘었지만 아직 법원에서 심리 중이에요. 대법원까지 가려면 한참 걸릴 겁니다.
그.러.나. 감히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이 사건 과징금 엄청 깎일 겁니다. 어쩌면 전면취소될 수도 있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건설공사 분야 규모의 경제’와 비교할 때, 공정위 처분 유지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급식업 분야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건설업보다 더 크게 작용할 겁니다. 몇만명의 고정 소비자를 두고 시작한다면 일단 식재료 수급 가격협상부터 압도적인 협상력을 갖게 되고, 식재료 생산자에게 ‘계획농업’을 시킬 수 있습니다. 많이 사면 할인. 당연한 거죠.
즉, 급식업 분야는 덩치 클수록 돈 남기기 유리합니다. 중소기업이 소매가로 식재료 사는 걸로 따라갈 수가 없어요. 잔반 발생비율을 비롯한 관리효율 측면에서도 상대가 안 되구요.
이런 시장에서, ‘업계 전체 평균 이익률’을 기준으로 정당가격 산정하고 그 평균이익률보다 많이 남긴다는 이유로 부당지원이라 판정했습니다. 그 판단 유지되기 어려울 것 같네요.
건설업 얘기하다가 좀 멀리 오긴 했습니다. 공정거래법 영역은 건설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 전반에 다 영향을 미치므로, 건설법무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산업도 살펴보게 되긴 합니다.
더 하면 계속 길어지므로,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